2022113일 목요일. 맑음


113일은 광주 학생 항일운동 기념일이다. 욱일기에 대한민국 정부가, 군부가 머리를 조아리러 간다는 속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의 젊은 학생들이 어떤 정신과 마음으로 이 나라를 지켜왔나 그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다. 집권하자마자 "일제시대가 어때서? 이조가 정치 잘못하다 일본에게 먹혔는데? 일본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개화시켰는데?" 라며 친일파 속성을 드러낸 이 집단의 정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크기변환]20221102_163641.jpg


어제 112일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었다. 보스코는 구교우여서 '추사이망(追思已)'이라는 구식 이름도 기억하고 있다. 지난번 보스코의 은사이시자 우리 부부의 오랜 벗인 살레시오회 노신부님(Robert Falk)의 화장한 유해를 담양 묘지에 안장 하는 날 보스코가 수술 후 입원 중이어서 참석을 못해 이번에는 찾아뵙고 성묘하기로 해서 아침부터 서둘렀다


'담양 천주교 공원묘지'는 우리 집으로부터 100Km 정도 거리로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우리 결혼 주례(1973년) 사제 김성용 신부님도 미사 집전에 늘 참석하시기에 오늘은 모시고 점심 대접을 하기로 했다.


[크기변환]IMG_1786.JPG


야외라 두툼한 복장을 하고 갔는데 날이 너무 맑고 따뜻했다. 살레시안 묘지는 정중앙 성직자 묘지 옆에 있어 그분들과 가까이 앉아 미사를 올렸다. 마신부님, 기신부님, 모신부님, 도신부님, 노신부님, 구신부님, 박신부님, 이태석신부님, 신현문신부님, 오수사님, 김모세수사님... 살아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분들이 다 거기 묻혀 계시다. 가족애, 형제애를 쌓았던 기억으로 인해서 저렇게 돌아가셨어도 늘 우리 곁에 가까이 계심을 느낀다광주 교구 본당들에서도 버스를 대절하여 미사에 왔고 특히 연령회 회원들이나 가족을 그곳에 모신 분들이 많이 오셨다


[크기변환]IMG_1800.JPG


나는 어려서부터 개인적으로 묘지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아버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들은 대부분 공동묘지 터에 학교를 지었거나 가까운 곳에 무덤이 많았다. 교장 사택은 학교 관내에 있었고 특히 공도에서의 중학교 시절 학생들이 빠져나간 텅 빈 학교에 혼자 남겨지면 대부분을 도서실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학교 근처 무덤가에서 염소한테 풀을 뜯기며 책을 읽었다


노신부님은 보스코가 중학교 다닐 때 선교사로 한국에 오셨다(1958)

[크기변환]IMG_1793.JPG

이태석 신부님은 우리 안식년(1997~1998) 때 로마에서 함께 지냈다

[크기변환]IMG_1789.JPG


죽은 이들은 평화로이 푸른 잔디를 덮고 소리 없이 누워 나와 함께 한가한 시간을 보냈지 나에게 무섬을 주는 분은 아무도 없었다. 그분들이 살아 생전에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지도 않았다잘 살다가 떠난 이웃 아저씨나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니죽은 사람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체득했다


그래선지 결혼 후에도 지금 살고 있는 서울집이 조선시대 내시(內侍)들의 묘지 터였다고 들었고, 집을 고치는 공사 때마다 부엌 바닥이나 안방 밑에서 석관이 나와도 뼈를 추려 창호지에 싸서 뒷산에 묻어 드리고 물려 주신 터에서 잘 살고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막걸리를 뿌려드리곤 했었다


[크기변환]IMG_1818.jpg


[크기변환]IMG_1808.jpg


보스코의,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 (영광의 신비 5)

11월이 위령성월(慰靈聖月)을 보스코는 죽은 이들을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보스코와 로사리오를 바치면 자주 죽은 이들을 한 사람씩 기억하며 묵주알을 굴리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분들과 더욱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그분들의 영혼도 천국에서 "어? 보스코네가 면회 왔어?"라며 반기실 듯하다. 


미사를 마치고 김성용 신부님과 성삼의 딸들 수녀님들을 모시고 점심을 하러 갔다. 대통밥집엘 가려는데 신부님이 장어를 먹자신다. 나도 수녀님들도 "어? 장어를 먹으면 꽤 비쌀 텐데요?"라며 걱정을 하니까 신부님이 "어떤 착한 사람이 수녀님들과 맛나게 먹으라고 금일봉을 주었다. 걱정 마." 하신다. 그렇다고 늙으신 은퇴 신부님께 점심을 얻어먹을 염치는 없어 맘이 무거운 참에 미사에 참석하고 같은 식당에 들어온 어느 여교우(노대동 본당 강스텔라라고 자기 소개를 했다)가 다가와 자기가 '김성용 신부님의 팬'이라며 천사처럼 불쌍한 우리가 먹는 장어 값을 싹 내고 말았다.


[크기변환]20221102_130405.jpg


[크기변환]20221102_130400.jpg


그 얘기를 전화로 들은 우리 큰딸 왈, "하느님은 쓰리쿠션을 치셔서 우리를 행복하게도 하고 놀래키기도 하셔요." 미사를 집전하신 옥주교님 강론대로, "사람이 재물을 비우면 그 자리에 하느님은 은총으로 채워주신다"는 신비를 행동으로 옮긴 그 여교우가 고마웠다.


내일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다니 여태 휴천재 데크 밑에서 여름을 보낸 제라늄을 손질하여 집안에 들여놓았다보스코는 수술로 힘을 못 쓰고, 나는 다리가 아프니 올해는 화분 절반만 집안으로 들이고 반은 밖에서 얼어 죽어도 어쩔 수 없지 했는데, 그렇게 매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둘 다 몸이 회복되어 오늘 이층 마루에 열댓 개 화분이 겨울을 함께 나러 비집고 들어앉았다. 내일은 텃밭에 새싹을 올린 상추와 루콜라 이랑에도 간이비닐하우스를 설치해야겠다.


[크기변환]20221103_12191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