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19일 화요일. 맑던 하늘에 소나기 한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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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찾아온 손주들과 하루 종일 바쁘다. 왜 나는 늘 부엌을 못 떠나고 먹이는 일에만 열중할까? 지난 주일 얘기에 의하면 나는 타고난 '마르타 팔자'라지만 그래도 마리아처럼 폼나게 그분 무릎 앞에 턱 고이고 퍼져 앉아 좋은 말씀이나 듣고 싶은 마음 없지 않다. 본당 신부님도 강론 중에 '무엇이 중요한가를 잘 아는' 마리아가 탁월한 선택을 했단다. 예수님이나 신부님이나 내 남자까지 남자들은 하나같이 뜬구름 잡는 소릴 한다.


쏜살같이 방방 뛰어 걸게 차린 식탁 앞에서 실컷 먹고서는 "밥과 김치면 되지 뭘. 적당히 하지 누가 이렇게까지 차리랬나?"라는 천연덕스럽고 순진한 반응이라니! 저 가난한 시절 갑자기 들이닥친 장정 열세 명 치다꺼리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나도 냉수나 한 사발 씩 돌리고(냉수 먹고 속차리시라고) 뿅 간 눈으로 예수님 얼굴이나 말똥말똥 쳐다보는 '마리아의 염치'가 왜 안 부럽겠어(보스코의 성경 풀이에 의하면, 예수님도 '마르타 네 팔자도 내 참. 허나 봐라 봐! 마리아 저 승질에 내가 시킨다고 하겠냐?' 하셨으리라고.)


어제 동사무소에 들를 일이 있어 쌍문초등학교 옆 떡볶이 집에서 튀김과 김밥을 사들고 들어왔다. 생각 같아서는 조금만 움직이면 금방 해낼 튀김인데, 내가 무슨 일을 하면 얼른 부엌에 따라 들어와 무언가 하려고 애쓰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그냥 사왔다.


피자도 하고 싶은데 (내 손가락 사정으로) 반죽해줄 아들도 없고, 제네바에서 두 아이 키우느라 고생하는 며느리가 여기서라도 내가 해준 밥 먹고 쉬다 가면 좋으련만... 시집에서는 친정에서처럼 마음 편히 굴기가 참 힘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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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린 어려서부터 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삼촌들과 함께 대가족으로 살아온 데다 제사도 많고 많아 대학 다닐 때도 제사음식 중 전 부치는 건 외동딸 몫이었다(위로 오빠만 둘)는 말을 사부인에게 들었다. "저희 집에서는 연중 제사들 없으니 전은 안 부칠 테니 안심하세요"라고 사부인을 안심시켜야 했다. 이역만리 멀리 나가 살아 시어미 밑에 들볶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딸을 위한 사부인의 기도가 주효했으리라, 결혼식부터 로마에서 두 집 가족만으로 치렀으니까. 


내 주변엔 손주들을 봐주는 지인들이 여럿 있다. 마음으로부터 손주를 사랑하여 올인하는 큰딸이엘리가 있는가 하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손주를 봐주는 친구들은 하도 힘들어 손주네가 멀리 사는 나를 되레 부러워한다


이기주의가 극단적으로 팽배하다 보니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배우고 익히는 세태에서도 이엘리처럼 할머니가 입안의 혀처럼 손주들을 돌보는 집에서는 할머니가 집에 가신다며 차 타러 나가는 뒷모습을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며 함미가 벌써 보고 싶어!”라며 통곡하는 손녀 윤서도 있지 않던가?


우리 손주들더러 한국 와서 제일 좋은 게 뭐냐고 물으면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일이란다. 가족이 서로 끌리고 서로 귀하게 여기는 것도 평생 가는 심성의 문제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이고 서로 흉보며 으르렁거리면 마치 독사떼가 엉긴 모습을 보는 듯해서, 그 분위기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장래가 제일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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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네 형제들은 드물게 사이기 좋다. 맏이인 보스코가 중딩1 나이에 홀로 남겨진 네 사내가 비비고 기댈 언덕이 형제간 뿐이요, 나눠야 할 재산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으니 사람이 재산이었던 셈이었다. 부모의 재산을 놓고 형제간에도 불화하는 광경을 하도 많이 봐서 무재산상속이라는 점에서는 시댁에 감사한다(거지가 불날 집 없는 게 다 애비덕이다했다는 농담처럼).


그제는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졌다. 보스코는 아범과 작은손주를 데리고 동네이발소에 다녀오며 한껏 기분이 들떴다. 우리 동네에서 30년 넘게 부부가 함께하는 이발소인데다 그집 큰아들이 빵기와 중학교 동창이어서 우리집 남자 3대가 들이닥치자 참 반가워하더란다. 시장통을 걸어도 모두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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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시차 적응을 못해 고생들 하는데, TV를 보게 하니 우리말 연예프로에 빠져 낮에는 그걸 보고 밤에는 자느라 쉽게 시차 적응을 한다. 아래층 큰방에 어멈, 작은방에 아범, 두 손주는 이층 마루에 쇼파를 펴서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는데 새벽녘 보니 둘 다 어멈 옆에 가서들 자고 있다. 저녁 산보길에서도 두 아이가 번갈아 엄마와 뭔가 속닥속닥 거리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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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일요일 저녁에는 성당에서 사온 뽕잎 냉면을 해주니 잘 먹는다. 서양 아이들이 제일 먹기 힘들어하는 게 우리 냉면이란다(두번째는 팥빵). 들척지근한 찬물에, 질기고 질긴 찬 국수를 말아놓은 요리를 좋아하는 걸 보니 완죤 조선놈들 입맛 맞다오늘 점심엔 북어콩나물국, 저녁엔 미트볼 스파게티를 해주었다. 형제가 뛰어노는 것먹는 것하나하나가 기특하고 이쁘기만 하다. 모처럼 한가하게 지내다가 손주들 덕분에 움직이다 보니 내 몸을 다시 보링하는 기분이다


남호리 무성한 풀밭을 경무씨가 예초기로 깔끔히 베어내고 사진을 찍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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