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26일 일요일. 흐림


빵고신부가 지도하는 살레시오회 청신연청년들과 휴천재에 온다는데 숫자가 열 명이나 되니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했다. 부추김치,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양파김치... 김치만 네 가지. 빵고야 어려서 이탈리아에서 컸으니 김치와 안 친하지만 청년들의 입맛은 토종이려니 하여 나름 신경 썼다


첫날 저녁엔 바비큐를 한다니 상추가 필요한데 우리 텃밭 상추의 상태가 안 좋아 드물댁에게 얘기했다. 누구네 얻어올 데가 있는지 물었더니 원기댁네서 한 줌 얻어다 주는데 상태가 별로다. 체칠리아한테 부탁했더니 오후에 상추 잎을 따 놓았으니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내가 상추 얻으러 온 줄 안, 그 앞집 아저씨도 한 봉지 뜯어서 내준다. 금요일 캄캄한 밤에 문두드리는 소리에 내다보니 동호댁이 드물댁한테 들었다며, 우리 집에 손님이 오시는데 상추가 필요하다 해서 쓰나다나 있는 건 싹 뽑아 왔다고 가져왔다. 참 대단한 손님 접대를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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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떡이 두레반이라고 상추를 씻으니 큰 소쿠리로 하나 가득! 그러나 아뿔싸! 요즘 젊은이들의 식성이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토요일 저녁에 바비큐에서 청년들은 상추에 고기를 싸서 된장에 먹는 게 아니고, 상추는 거의 안 먹고 된장이나 김치도 별 흥미가 없이 고기만 먹는 게 외국 아이들이 스테이크 먹는 식성 그대로였다. 동네의 절반이 우리 손님 먹을 상추 조달에 애썼는데... 보스코가 내 아픈 손으로 네 가지 김치를 담근 나를 가장 안쓰러워 했다.


그래도 자기 끼리의 화합이 남달라 누구도 소외됨 없이 자발적으로 모든 일을 해나가는 모습은 바람직했다. 지혜가 미국 여행에서 만난 애들이 해리포터도 읽지 않았을 정도로 다른 문화에 살아서 외계인과 함께 지내고 온 기분이었다던데, 이번 청년들과의 만남에서 확실히 아날로그 시절은 우리로서 끝나는 것을 체감하였다.


테라스에서 저녁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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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교수 보스코가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끼어들려고 무척 신경을 썼으나 (요즘 그들은 보스코가 번역한 "홀리 에로스"를 학습삼아 읽고 토론하는 중이었단다) 그들의 단편적이고 수시로 주제가 바뀌는 어법에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20대와 30대 젊은 여자들인데도 말이다. 누가 옳고 틀린지를 떠나서 자기가 살아온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를 접했는데 그에 적응할 세월이 별로 없어 아쉽다이런 얘기를 큰아들에게 들려주었더니 우리 집에서 하는 식으로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가정은 1%도 안 된다며 내 생각을 바로 잡아준다


아침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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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실상사에서 6.25 발발 73주년, 정전 69년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정전의 한반도와 지나간 좌우 남북대립에 스러져간 영령들을 기억하며,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한 지리산 생명평화기도회를 가졌다. 단순 소박하고 작고 느리지만 이 갈라진 사회를 위하여 부단히 움직이는 도반들이 있어 보람을 찾고 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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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천주교팀들은 오후에 각기 다른 모임이 또 있어 기도회 후에 실상사에서 마련한 밥모임에서 실상사 여신도들이 마련한 정성 어린 밥상을 받고 즉시 떠나와 눈치가 보였다. 그래도 늘 부처님처럼 대자대비한 실상사 스님들을 보면 늘 고맙다. 미루가 주선하는 은빛나래단은 돌아오다 휴천재에서 커피를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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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작은아들이 굽는 고기를 얻어먹고 열 명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는 테라스에서 밤을 맞으니 옛날에는 보통 한 가족이 여나믄 명이었을 텐데 어찌 지냈는지, 그 숫자를 다 건사하던 아낙들의 삶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째지게 가난해 매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아낙들의 고생에 생각이 미치니 그저 모든 게 풍족한 지금이 고마울 뿐이었다.


일요일 아침. 아들이 젊은이들과 주례하는 미사를 보는 행복. 예수님의 부르심과 젊은이들의 응답을 주제로 설득력 있는 아들의 설교가 흐뭇했다. 아들의 설교를 듣고 아들의 손에서 영성체하는 기분은 소수 엄마들만 알려니...  그제는 '예수성심' 축일, 어제는 '성모성심' 축일로 부활절 뒷축제(삼위일체 대축일, 성체성혈 대축일)가 이어지다 오늘은 진짜진짜 평범한 연중주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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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피자 점심을 준비했다. 반죽기가 망가져서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빵고신부가 어제부터 반죽을 맡았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기운이 좋아 어찌나 반죽을 잘 쳐대는지 어느 때보다 더 맛있게 됐다(이래서 '아들은 낳고 보는 기라!'). 더구나 세 명의 아랫것’(청신연의 큰 언니 셋)을 부리며 피자를 장만하고 굽고 했으니 내 손이 아프다고 전혀 불편할 게 없었다. 젊은이들은 점심을 마치고 설거지와 집안청소를 깔끔히 끝내고 서울로 떠났다. 


점심의 피자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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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도 상차림 하랴 뒷정리 하랴 나름 한몫을 하느라 힘이 들었는지 저녁 9시도 못 되어 잠들었다. 나는 10명이 자고 간 침구류를 세탁하느라 벌써 세 번째 세탁기를 돌리며 일기를 쓰고 있다. 3년만에 온 친구들이지만 담에 걔들이 또 온다면 집을 통째로 내어주고 둘만의 세계로 떠날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내가 '맘마 말가리타'니 그 이름이 어디 가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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