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30일 수요일, 흐리고 눈발이 뿌림

 

어제밤 뉴수로는 밤새 10센티 안팎의 눈이 내린다고 하길래 지리산 내려갈 일이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눈이 온둥만둥하였다. 테라스의 보스코 낙서가 녹지 않고 아직도 그대로인 것을 보면 날씨는 엄청나게 추운가 보다. 엊그제 기상청의 예고도 없이(기상청의 허락 받고 눈이 내리나?) 갑자기 사락눈이 내려 서울 경기가 온통 교통지옥이 되었고 그 불편이 기상청에 언론의 돌팔매질로  나타나자 아예 과장예고라도 해서 비난을 면하고 싶었던가 보다. 안 오는 눈 온다고 공갈했다는 비난이 다시 쏟아질 게다. 그렇지만 적게 온 눈, 안 온 눈을 두고 기상청을 욕하는 것은 어긋나는 행동이다. 지금의 이상기온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므로 서구의 기상청도 제대로 예보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온난화의 가스를 펑펑 만들어내면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미국과 중국의 잘못을 왜 애꿎은 한국의 기상청에게 물어? 누구 말마따나 나한테는 딸도 없으니까 기상청 사람은 사위도 안 삼겠다는 욕을 안 해도 된다.

 

충청도를 지날 때까지는 구름새 햇살이 곱기만 했다  

DSC09389.jpg    서울에서 지리산 갈 때나 지리산에서 서울 올 때나 언제나 일단 부엌과 살림을 정리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기느라 한참 분주하다. 더구나 연말이면 욕심스레 집 안에 쌓아둔 물건도 어지간히 정리해야 마땅한데 놓아두면 쓸 데가 있다면서 남 주지 않고 아까와서 쌓아두는 욕심을 아직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방상복 신부님이 이메일에 퍼올려 보내준 정용철 시인의 시가 내 가슴을 뜨끔하게 만든다.

 

 

바라기와 버리기 - 정용철 시인

신발장에 신발이 늘어 갑니다.
옷장에 옷이 많아집니다.

부엌에 그릇이 쌓입니다.
사기만 하고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늘어 갑니다.
머리에 생각이 복잡해 집니다.

몸이 자꾸 무거워 집니다.
바라기만 하고 버리지 않기 때문! 입니다.

신발장에 먼지만 털어 낼 것이 아니라
신지 않는 신발은 버려야겠습니다.

옷장의 옷도 차곡차곡 쌓아 둘 것이 아니라
자주 입는 옷만 두고 정리해야겠습니다.

부엌에 그릇도 사용하는 것만 두고
모두 치워야겠습니다.

삶이란 이렇게 바라기와 버리기의
치열한 싸움입니다.

내 마음의 많은 생각들 가운데
내 생활의 많은 일들 가운데 정말 내 삶을

아름답게 하고 의미있게 하는 것들만
남겨두고 또 버려야겠습니다

 

송총각은 새벽에 일어나 골목의 눈을 쓸고 있었다. 우리가 나가는 길에 미끌어질까 걱정되었단다. 내 차위의 눈도 털어놓았다. 예전에는 빵기나 빵고가 하던 일인데 고맙기도 하고 아들들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짐을 싣는 일도 송총각이 다 해 주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죽암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싶어 시계를 보니 손목에 시계가 없다! 아침에 양말가게에 잠깐 들려서 송이버섯을 전해줄 적에 보스코가 나더러 "땅 바닥에 뭐 떨어지는 소리 났는데." 했지만 나는 슬쩍 한번 땅바닥을 내려다 보고 아무것도 없다면서 차를 탔던 일이 기억났다. 그곳에 전화해 보았지만 흔적이 없단다. 잠기운이 확 달아나 버려 휴식을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내달렸다. 내가 아끼던 금시계였는데 고리가 헐거워져 풀어졌나 했다. 속이 무척 상했지만 "내 것이 아니었나 보지. 주운 사람은 또 횡재라고 좋아했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속을 달랬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게 어디 시계뿐이랴? 잊고 사는 친구들, 은사님들, 친척들, 옛날의 이웃들...

 

그러다 덕유산 휴게소까지 왔는데 그곳은 고도가 높아선지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보스코는 그 설경이 좋아서 쉬어가자 했지만 그 눈이 도로에 얼어붙을까 걱정되어서 나는 그냥 달렸다. 함양이 가까워지면서 날씨도 풀렸고 눈발도 없어졌다. 지리산집 잔디밭은 눈송이 하나도 없이 말짱했다.

 

덕유산을 지나면서 휘날리던 눈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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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9399[1] 복사.jpg  짐을 한참 꺼내는데 보스코가 말없이 무엇을 내 코앞에 들이민다. 시계였다. 그 반가움이란! 시계가 다행히 자동차 바닥으로 떨어졌던가 보다. 평소에 손목에 차고 있을 때는 그저 그런 것이려니 했는데 잃었다가 다시 찾고보니 훨씬 귀하고 가치있어 보인다. 물건이고 사람이고 잘 챙긴 2009년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적어도 내년에는 사람도 물건도 잘 챙기고 싶다.                                                                                     하루 종일 걱정하다 되찾은 시계 

 

밀라노 인턴 근무를 나갔던 진이가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자기를 파견했던 회사가 자기를 정식직원으로 채용해 주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우리에게 알렸다. 진이는 참 운이 좋다. 요즘처럼 대학생들 취직이 힘든 때에 대학교 졸업반에서 당장 취직이 되었으니 부모에게도 반갑고 안도감을 주는 경사다. 내년 1월 2일부터 근무란다. "남은 일은 시집가서 애 낳아가지고 오는 일이네." 내가 좋아서 한 마디했다. 진이의 돐 때부터 진이를 우리가 알고 있지만, 아이가 엄마 아빠를 골고루 닮아서 사람 사귀는 품이나 일을 해치우는 솜씨가 뛰어나다. 그 회사로서도 좋은 일꾼을 찾아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