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날씨 흐림

 

보스코가 아침 밥상에 앉더니 구운 가래떡 제일 큰 것 한 개를 자기 접시로 가져간다. 평소에 가래떡을 저렇게 많이 먹지 않는데 않는데 웬 일일까? 그는 칼로 쓰윽 잘라보고서는 "소시지가 아니쟎아?" 한다. 현미찹쌀로 뽑은 가래떡이라서 독일 소시지 색깔과 모양을 하고 있어서 아래층 부엌에서 떡을 구우면서 접시를 이층으로 들고가는 송총각에게 "우리 남편이 이걸 보면 소시지인 줄 알 걸."이라고 했는데 내 말 그대로였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해(1972년)에 보스코는 160센티 키에 45킬로 정도의 몸무게였다. 이제는 64킬로를 넘나들고 있으니 50퍼센트는 불어난 몸매다.

 

그를 보는 사람마다 그를 나무라지 않고 나를 나무란다. 몸무게 조절시키라고, 비만은 만병의 근원라고, 교회에도 아까운(그는 지금 아우구스티누스의 방대한 라틴어 저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을 여생의 과제로 삼고서 몰두하고  있다.)  저 머리 오래 쓰게 하려면 체중을 빼라고 한다. 하지만 아침식탁을 상대로 그의 소박한 꿈은 베이컨 기름을 지글지글 구워서 그 기름에 계란 후라이를 하고 버터에 바싹 구운 빵 위에 올려놓아 먹는 것이다. 그러니 식사 때마다 그에게 잔소리를 해대면서 단것과 기름진 것을 못 막게 말리는 내 심정, 마치 밥상에서 그만 먹으라면서 아이 밥그릇을 뺐는 엄마의 애절한 마음을 누가 알까?

 

DSC09352.jpg    아침 10시에 김용애(우리는 옛날부터 "용팔이 수녀님"이라고 부르는데 스스로 이런 이름으로 자기를 소개할만큼 유모어가 대단하다.) 체칠리아 수녀님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보스코에게 포토샵을 가르쳤다. 30년 넘게 우리와 사귀는 바오로딸 수녀님이다. 로마에서나 지리산에서나 우리가 있는 곳은 꼭 한 번 방문하여 친분을 나누며, 당신은 자칫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수줍은 성격이면서도 남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노래자랑과 원맨쇼와 갖가지 재롱을 마다하지 않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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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에서 워낙 오래 산 분이라서 이탈리아 요리로 점심 대접을 하였다. 보스코에게는 지나치게 높은 칼로리지만 손님 모신 식탁에서 그를 다이어트 시킬 수도 없지 않은가? 그가 접시마다 다 챙겨먹고 후식으로 카푸치노와 케익까지 맛있게 먹는 모습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지만 정작 접시를 내가는 나는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일 때마다 아주 나쁜 짓을 한 죄스러운 마음이 먼저 드니 그게 탈이다. 체칠리아 수녀님은 점심 후에도 4시 반까지 포토샵을 특강해 주고나서 버스를 타고 갔다.

 

나는 동네 일로 다시 구청에 들어가야 했다. 우리 골목길 통행로 확보 문제로 민원상 구청을 찾아갔더니 우이천 천변도로 확보문제가 다시 터져서 주민들이 나를 떠밀어 진정서를 쓰게 하였다. 써주면 정작 주민들 사인을 받아 제출하는 것은 말남씨 몫이다. 구청 공무원들마저 불법건축을 준공해 달라고 들이대는 유지들의 압력을 받으면 정면으로 거부하지 못하고 겨우 주민들의 진정서를 내보이면서 그 불법, 탈법에 맞서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홈플러스에 들러 망년회 음식을 준비하고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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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우이성당 두 분 수녀님이 찾아오기로 되어 있어서 저녁을 준비했다. "여보, 나는 아마 전생에서 매일 먹고 놀고 배 두드리고 살았나봐. 그래서 이렇게 날마다 밥만하지."라고 푸념을 하지만 음식을 만들고 기쁘게 나눠먹고 손님들과 환담하는 것이 나는 즐겁다. 저녁도 이탈리아식으로 성탄만찬 겸 송년회 회식으로 준비했다. 문제는 이렇게 손님대접을 하는 옆에서 보스코의 체중이 늘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만 좀 달게 먹어욧." (문정주 선생의 남편 김경일 선생은, 나이가 들수록 단 것을 좋아한다는 보스코의 식성을 두고 보스코가 하루종일 집필을 하느라 높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만한 에너지가 필요해서 섭취하는 것이니 그냥 두라고 말한 적 있지만, 당장 내 눈 앞에서 불어가는 그의 몸무게와 튀어나오는 배를 보노라면 그 의사의 말도 무책임하게 들릴 정도다.) 수녀님과 즐겁게 식사하고나서도 다시 한번 보스코의 배를 눈여겨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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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오늘은 나도 몸이 무겁다. 마리아 수녀님도 오늘 관구본원에 가서 하루종일 강의를 듣고 온 길이라서 피곤하여 8시 반에 자리를 떴다. 마침 집에 찾아온 이웃 영심씨랑 함께 집을 나서서 우이동까지 함께 걸었다.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연말과 신정 구정에 할 일도 많고 찾아올 손님도 많은 데 그때마다 남편을 쳐다보면서 "당신 배 좀 봐요, 배 좀 봐!"라고 구박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그가 좋아할 음식만 자꾸자꾸 마련해서 식탁에 내 놓는 나는 악처인가, 바보일까? 하여튼 저녁산보를 하고서 늦게 들어오니 그는 체칠리아 수녀님의 개인교습을 받아가면서 처음 작성한 포토샵 작품을 내 블로그 첫 페이지에 올려놓고 보여주면서 내게 대단한 칭찬을 기다리는 눈치다. 내가 아무리 구박을 해도 구박하는 내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저런 남편을 어찌할까나, 어찌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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