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4일 성탄 전야, 목요일, 종일 흐림

 

 

오늘로 대림초를 켜고서 소성무일도를 바치는 마지막 날이다. 작년에 켜기시작한 대림초가 이번 주간으로 거의 탔다. 지리산 집에는 마리아 수녀님이 주신 커다란 대림초가 층계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대림초를 켜고서 둘이서 시편기도를 바치는 아침은 하루를 참 풍요하고 경건하게 열어준다. 사람이 인생의 고비고비에 기도하면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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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시가 다 되어 말남씨 한테 전화를 했다. 여전히 부시시 잠깨어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야. 해가 똥구멍을 찌르는데 아직도 자냐?" "나, 논문 마감하랴 새벽 4시에 잤어." 그니가 온몸으로 투신하여 논문을 썼으면 벌써 박사에다 박사를 더 받았을 게다. 워낙 지역사회를 돌보는 활동을 많이 하다보니까 공부할 틈이 없었을 게다. 집에 찾아가 보니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남편 신선생이 다 해주었는데 이제는 빨래도 널어주지 않고 청소도 안 해주고 설거지도 안 해주고 집안일 좀 도와달라 하면 "그건 여자가 할 일이야."라고 대꾸한단다.

 

10여년전 뇌졸중이 한번 오고서 회복은 되었지만 "신남성"(말남씨는 자기 남편 신선생을 이렇게 부르면서 자랑스러워하였다.)은 사라지고 전통 경주양반 구남성만 되살아났단다. "김말남, 전성시대는 갔어."라며 스스로 푸념하는 말남씨가 안쓰럽다. 그 모습이 가엾고 한 해 동안 환경운동과 지역사회를 위하여 열심히 살아온 모습이 갸륵하여 로마에서 사 왔던 진주 알 엮은 것 세 줄을 줬다.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힘내!" 그니는 몇 해 전부터 불교를 청산하고 교회에 다니고 있다. 송암교회를 다닌다.

 

 

그 길로 국민은행 강북지점에 안차장을 찾아가 성탄카드를 전했다. (사실은 가져갔다가 잊어먹고 돌아온 터라서 오후에 돈암지점에 들러 내부메일로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안차장에게는 모과차 한 병을 갖다 선물이라고 주었는데 그니는 선물을 바리바리 챙겨주면서 "창고 대매출이올시다."라고 한다. 오늘도 나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아니 홉으로 주고 말로 받는 장사를 하였다.

 

보스코에게 성탄선물로 소니 AS센터에 찾아가서 우리 디카의 바테리와 충전기를 하나씩 샀다. "자, 선물이에요. 당신의 예쁜 마누라 실컷 찍으셔요." 그러니 누구를 위한 선물인지 모르겠다. 사실 그의 카메라는 온통 내 사진으로 차 있다. 이 일지에 올리는 사진들도 대부분 그가 찍어서 올린다. 여행을 해도 도통 내 사진뿐이다. ("내가 그렇게 예뻐?") 돌아오는 길에 차에 기름을 넣고 세차를 했다. 내일 비가 온다는데도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세차를 했다.

 

 DSC09262.JPG 오늘 크리스마스 이븐데 오후 2시에는 돈암동 태극당에서 영애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점심을 먹고 시내 나가서 내 친구 영애를 만났다. 만나기전 그니가 어떻게 변했을까 요모조모로 얼굴을 그려보았는데 만나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걔는 옛날을 사진 찍어 둔 듯이 전혀 변함이 없었다. 조금은 털털하고 여유가 있어 내가 무엇을 해도 푸근하게 품어줄 둥지같은 느낌이었다. 옛날 이야기, 집안 이야기, 주변이야기, 골치 썩이는 아들 얘기까지 웃고 껄껄거리고 맞장구치고 하면서, 세월의 강이 실어다 놓았을 나루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표징을 갖고 있었다고나 할까? 자기가 한때 잘 나가던 일, 남편과의 아픈 사연, 야무진 딸 얘기, 착하고 엉뚱한 아들 얘기도 하면서 조금도 나와 다르지 않는 감정의 빛깔을 보여주어서 정말 기뻤다. 36년만의 이 만남은 2009년의 참 뿌듯한 성탄선물이다.

 

근 40년만에 영애와 돌이켜 본 "여고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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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에 있는 대림동수도원 미사에서 아들을 보겠다는 흥분을 안고서 6시에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아랫층 송총각도 함께 갔다. 삼양동, 정동, 북악스카이웨이, 삼청터널, 경복궁, 광화문, 소공동 입구까지는 신나게 달렸다. 보스코가 "너무 일찍 가서 시간이  많이 남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말을 하는 순간부터 동티가 났는지 차가 엉기기 시작했다. 남대문 앞에서부터 차가 밀리더니 용산전자상가 앞을 지나 원효대교를 건너는데 신호등 한번 바뀔 때마다 정확하게 1미터씩 가는 트래픽이었다. 서울에서 내 평생 처음겪는 트래픽이었다. 우이동에서 대방터널까지가 23.7킬로미터인데 4시간 걸렸다. 그야말로 "자동차 오체투지"였다.

 

운전하는 나도 다리에 쥐가 나고 화장실도 그립고 보통으로 힘들고 짜증나는게 아닌데 그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보스코의 짜증이었다. "그냥 돌아가자. 미사 끝났다. 파티도 끝날 시간이다. 그냥 차 돌려서 집으로 가자...." 그를 달래고 어르고 설득하고 협박해서 겨우 대림동 수도원에 도착하니 10시 15분이었다. 아직도 나를 기다리던 빵고 동기들의 어머니들과 막달레나 형님과 두상이 서방님 내외가 우리를 기다리다가 활짝 반기면서 성탄축하인사를 했다. 간식을 대충하고 줄껀주고 받을껀 받고 하면서 잔뜩 챙겼다. 예의 그 "홉으로 주고 말로 받는" 그대로였다. 특히 막달레나 형님이 얼마나 많이 챙겨주시는지 염치가 없었다. 나는 아무 선물도 준비를 못했기 때문이다.

 

지하실에서 소위 "보호관찰" 소년원생들의 엉터리 아카데미아를 보고나니 11시 반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는 송총각이 운전을 하였다.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 30분. 빵기랑 스카이프로 성탄인사를 나누고, 언제나처럼 송총각이랑 셋이서 파네토네와 핫쵸콜릿을 먹었다. 길고긴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빵기 빵고 두 아들은 멀리있고 송총각이 아들 대신해서 함께 해 준 하루였다.

 

오늘 여흥(아카데미아)에는 이태석신부님이 활동하는 수단의 학생 둘이 한국방문 중이어서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사랑해 당신을"라는 노래를 영어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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