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일 토요일, 맑음

 

"에, 마이크시험, 마이크시험 중입니다. 오늘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준비하니 동민여러분은 한 분도 빠짐 없이 오셔서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일찍 마을 스피커가 켜지는 소리와 함께 고이 잠든 주민들을 깨우는 문하마을 이장님의 새마을 방송이다. 다른 날은 "에, 누구네 자손들이 와서 어른 생신을 준비했으니 아침 잡숫지 마시고 마을회관에 와서 드시기 바랍니다." "에, 어제 저녁은 아무게네 제삿날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마을회관으로 오셔서 그 집에서 마련하는 아침식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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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기 조정 마법사-1 복사.jpg 오늘 점심은 문하마을의 신년하례식을 거행하는 자리여서 우리 부부도 오랫만에 마을회관으로 내려갔다. 동태찌게, 돼지고기 두루치기, 배추쌈, 콩나물 무침, 김치와 깍 두기로 장만된 소박한 신년하례식이었다. 남자들은 상당수가 외지에 나가서 7,8 명이 식사를 했고, 여자들은 그래도 여나믄 명이 되었다. 신년을 맞아 집에 온 젊은 세대들은 얼굴을 내밀지 않고 소위 "어르신" 나이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모인다. 특히 "바깥어른"을 먼저 보낸 할머니들은 긴긴 겨울에 눈 뜨면 마을 회관으로 모여서 살다시피 한다. 거기서 함께 밥을 지어먹고 10원짜리 고스톱도 치고 하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마을 몫의 논이 있어서 그 소출로 양식을 삼고 반찬은 각자가 집에서 가져온단다.

 

오후에는 가타리나씨가 내려와서 함께 차를 마셨다. 아주 좋은 차와 찻보를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우리는 참 좋은 새해 선물을 받았다. 딸에 대한 엄마의 걱정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이런 경우 누구의 조언이나 참견은 도움이 되지 않고 속사정을 조용히 귀기울여 들으면서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큰 도움은 엄마를 위해서, 딸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일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갈아앉히고 움직이는 능력은 하느님께만 있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조금 뒤 미자씨와 용식씨가 휴천재에 들렀다. 지난 망년회 밤에 눈이 얼어서 참석 못한 사람들이라 더 반가웠다. 그날 남은 빵과 과자를 들면서 함께 차를 마시고 담소하였다. 뒷집은 스님의 토굴 짓는 일로 조언을 구하는데, 스님의 소원과 이 자리에서 조언하는 사람들의 말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는 듯하다. 달아내기의 고수 스테파노씨가 있다면 즉각 대안을 내놓았을 테지만 여기 모인 아낙들은 스님의 깊은 속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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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가 다 되어 "운림원" 영숙씨가 남편과 함께 친정에 왔다가 친정어머니와 딸을 데리고 휴천재를 방문했다. 35년전 시집을 간 영숙씨가 새해를 맞아 문하마을에서 사는 친정어머니(돌아가신 조합장님 댁)에게 인사를 드리러 온 참이었다. 레슬링 시합장에서 터치메치를 하고 선수를 바꾸듯이 먼저 온 손님들이 일제히 일어서고 그 자리에 영숙씨네 가족이 앉았다. 조합장님댁은 작은 아들이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버려 충격이 컸는데 조합장님마저 자리에 누웠다 돌아가서 일년 안에 들이닥친 두 초상으로 한꺼번에 늙어버렸다. 그렇지만 여전히 경우가 밝고 정신도 명석하여 시골할머니 같지가 않았다.

 

DSC09465.jpg 손녀딸이 옆에 앉아서 할머니에게 얼마나 곰살스럽게 하는지 영숙씨가 딸을 잘 키웠구나 칭찬해 주고 싶었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그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영숙씨 남편의 시선도 남보기에 참 좋았다. 이 부부 역시 우리네 용식-미자 부부처럼 함양의 "닭살부부"로 명명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자식을 이기적으로 키우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서로 아끼고 남을 배려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법을 자식들에게 가르치다 보면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부부에게는 인내와 희생을 베풀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 내 짧은 인생에서 깨우친 바다. 정말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주면서도 "남에게 베푸는 마음" 하나만은 절대로 안 가르치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스스로 남에게 베풀며 살고 또 자식들을 그렇게 가르치기는 또 얼마나 힘든가! 세상에는 절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참 소중한 당신"(교회에서 나오는 어떤 월간지 이름이다.)이 되기 위해서는 나부터 타인을 참 소중하게 모시는 법을 배워야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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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노체라 수녀원(이탈리아 살레르노 가까운 도시에 있는 봉쇄수녀원)에서  원장수녀님의 새해인사 전화가 왔다. 원장님은 보스코와 오누이처럼 영성을 나누DSC07800[1].jpg 고 의논도 한다. 그곳 베르나데타 수녀님은 빵고 부제의 영적 누이로 기도를 아끼지 않고 그의 수도성소와 사제직 준비를 돕고 있다. 정말 수도자와 사제의 길을 걷는 젊은이들에게는 기도만큼, 오로지 주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봉쇄수녀님들의 기도만큼 절실한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겠지만 가장들도, 주부들도, 사제도, 심지어 주교님들도 어려운 문제에 부디칠 때마다 봉쇄수녀원을 찾아와서 수녀님들의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서구 가톨릭교회의 풍속도다.

 

여기서 한 가지가 기억난다. 서울 명동성당 계단에는 수십년간 구걸하는 "요셉 할아버지"라는 걸인이 있었다.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님은 교회를 위해서나 정치사회문제로 중요한 결단을 내리셔야 하거나 난관에 봉착하시면 밤중에 이 걸인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의논을 하고 기도를 부탁하셨다고 전해온다. 성당가는 신자들의 푼돈 자선으로 살아가는 노인이지만 그만큼 깊은 영성을 생활하는 분이었던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