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4일, 목요일, 날씨 맑음

 

아침 식사를 하는데 하과장이 전화를 했다. 지난 2년간 내가 함양농업대학을 다니면서 그를 만난 것은 시골생활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농사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시골생활이라고 시작했는데 완전 백지에 가까운 무식한 귀촌인에게 땅 파는 법, 씨 뿌리는 법, 병충해 예방법, 거름 주는 법 등을 걸음마 단계부터 함께 해 준 사람이다. 그의 능력과 열성에 감복한 나는 그를 (본인은 계장이라고 누누이 말하지만) “하과장”이라고 불러왔다. 그의 직책에 알맞은 “대외직명”이라면서.... 그런데 그가 과장으로 승진했다는 기쁜 소식을 알려온 것이다.

 

그의 설득력있는 강의라든가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포용력, 그 문화를 우리 것으로 접목시키는 열정 어느 하나 뒤쳐진 데가 없었다. 워낙 농업기술 교육센터에 근무하고 있어서 승진할 자리가 좀처럼 나지 않는다고들 했는데 이번에 작물지원과를 신설하고 그곳에 첫 과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이었다. 시골이든 도시든 공무원들이 취하는 기본자세가 "대민봉사"가 아니고 "복지부동"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공무원을 보아서 그를 더 좋게 본 것이다. 그의 승진 소식에 정말 기분이 좋다. “그것 보세요. 말이 씨 된다고 하쟎아요?”

 

정말 말이라는 것은 씨가 된다. 생물과 같아서 좋은 말을 하면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기분이 좋고 나쁜 말을 하면 내가 하든 내가 듣든 마음이 많이 언짢아진다. 오늘 아침에 모처럼 누구한테 안부전화를 걸었다가 원망하고 악담하고 비웃고 어느 방향으로 얘기를 하더라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장광설을 들었다. 그런 사람과는 반시간만 얘기를 나눠도 내 몸에서 에너지가 모조리 고갈되는 느낌을 받는다. 보통 나와 통화를 하는 사람들은 나한테서 기(氣)를 받는다고들 하는데 말이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겠지만 운명이나 혈연으로 피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부부나 형제자매나 부모자식간이라면 말이다. 그런 사람한테서 깊은 상처를 받고 나면 “같이 사는 남편도 있는데 뭘.” “같이 사는 마누라도 있는데 뭘.”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찾기도 한다. 나는 그 사람과 한 다리 건너편에 있고 따라서 “한 지붕 밑에, 한 이불 속에 지옥을 차려놓고서 들볶이는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굳이 못 참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나 심리는 흡사 맑은 강물로 흘러들어오는 시꺼먼 오수처럼 주변의 모든 생명을 오염시키는 듯하다.  단테가 그리는 지옥 초입의 풍경은 증오와 원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여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저 지치고 벌거벗은 넋들은 오도독 이를 갈며

하느님과 저들의 조상이며 전 인류며

그리고 저들을 씨부리고 태어나게 한

곳과 때와 씨앗을 저주하더라. (단테, 신곡, 지옥편 3.100-105)

 

 

다행히 그런 사람들의 배우자나 자녀가 그들을 닮지 않고 정상적이고 더구나 덕스럽기까지 하면 두 배로 경탄스럽고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또 내 평생에 만난 그런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얼마나 밝고 사랑스럽고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사람들을 만나왔던가? 그들에게서 받는 에너지, 기(氣)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해지고 얼마나 부요해지는가! 내가 남들에게서 받은 행복한 기운의 10분의 1이라도 저 어두운 기운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

 

자신을 낮추고 아직 더 짓밟힐 자세가 되면 못 견딜 것도 없으리라. 분하고 노엽고 그런 사람들의 언행을 떠올리며 원망하는 심리를 들여다보면 거기 악마의 꼬리가 보인다. 증오만 가르치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마음을 다잡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노라면 마음이 어지간히 가라앉는다. 아아, 누가 원망스러울 적에, 마음이 괴로울 적에 기도드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점심을 먹다가 함평에 사는 둘째 동서에게 전화를 했다. 시골에서 닭을 키워 달걀을 내게 보내온 택배가 나 없는 사이에 도착해 있었다. 동서 얘기에 의하면, 중닭이 100여 마리였는데 두 마리는 너구리가 물어갔고, 나머지 98마리를 비닐하우스에 몰아넣고 광주에 갔다 왔더니 동네 개 두 마리가 들어와서 닭들을 한 마리 남김없이 모조리 물어죽이고 말았더란다. 개 주인에게 병아리 값으로 쳐서 15만원을 받고 말았단다. 동네사람들과 얼굴 붉힐 수도 없어 봄에 병아리를 사들이려니 하고 그냥 넘어간단다. 가엾은 동서, 병아리 사는 값에 보태라고, 또 이번에 보내준 달걀 값 하라고 다만 얼마라도 보내야 할 것 같다.

 

준이 서방님에게도 전화해서 엊그제 해영이네 식구를 만나고 그의 손녀 율진이를 보고 온 얘기를 들려줬다. 조카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벌써 전화를 했었다. 지금은 동서(첫째)랑 선을 긋고서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는 말인데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그 평화라도 오래갔으면 한다. 가정의 안온한 사랑을 모른 채 수십년을 떠돌며 살아오는 남자라 내게 가장 안쓰럽게 느껴지는 서방님이다.

 

아래층에는 “이엄마”와 그 옆집 할머니가 와서 진이네 곶감 손질을 하고 있었다.  진이네 곶감이 모조리 팔려나가서 다행이다. 연말연초에는 판로 걱정을 하면서 다음 해에는 두세 동만 하겠다고 다짐하던 진이아빠였지만, 다음 해에는 다섯, 여섯 동으로 늘어나리라는 것이 보스코의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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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엄마"는 진이네가 20여년전, 지리산으로 귀농하여 이 마을을 찾았을 적에 이웃에서 그들에게 첫 정을 베풀어준 사람이다. 남편 이름이 박씨인데 진호가 어려서 자기 아빠와 구분해서 그를 “이아빠”라고 불러서 그의 부인은 “이엄마”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우리는 그 부부를 “이아빠”, “이엄마” 하고 부른다. 이엄마는 나더러는 형님이라고 부른다. 정말 착하고 수더분하고 전형적인 시골아줌마다.

 

오후에는 김교수 내외가 함양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들렀다. 무슨 작목반엔가 들어두려고 절차를 모색하는 중이며 진이엄마가 “회장”으로 있는 “블루베리 작목반”에 들 작정이란다. 옆에서 어지간히 훈수들을 해 주었다. 내일은 우리 중의 일부라도 법화산 임도를 걷기로 하였다. 모처럼의 산행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