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8일 월요일, 날씨 흐림

 

새벽 한 시 반. 배가 너무 아파서 잠을 깼다. 구부리고 누워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고 일어서도 아프고. 허리도 끊어지게 아프다. 뱃속에서 탈이 나 몸 전체가 망가진 느낌이다. 거실로 침실로 오가다 응급실로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빵고를 깨우려다 말았다. 이태석 신부님의 초상을 치르면서 밤샘을 며칠이나 한 참이라 지쳐서 곤히 자고 있는 모습에 차마 깨우지 못했다. 그러고 날 새기만 기다렸다. 보스코는 갓난 아기처럼 새근새근 드르렁드르렁....  

 

아침 8시에 한일병원 수간호원으로 있는 친구 김옥련씨에게 전화를 했다(보스코가 그니의 결혼식을 주례했는데 그 결혼에서 태어난 "천주"가 벌써 첫영성체를 했단다). 보스코, 빵고, 송총각 셋이서 남자끼리 아침을 먹으라 하고는 내가 운전을 해서 병원엘 갔다. 다행히 옥련씨가 대신 접수를 해 두어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담당의를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만성맹장 아닌가 한다면서 CT 촬영을 시켰다. 나는 아파 죽을 지경인데 20일에나 결과가 나온다면서 진통제를 먹으면서 기다리란다.

 

허리가 계속 아파 견딜 수 없길래 정형외과에도 접수를 시켜 담당의를 만났다. 6번 등뼈가 튀어나와서 신경을 누르고 있고 고관절의 신경다발이 엉켜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눈 앞에서 설명을 해 줘도 뭐가뭔지 모르겠다. 내가 함양에서 왔다니까 자기 고향도 진주라면서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내 몸매도 앙상한 뼈대에 투명종이를 도배한 듯 정말 볼 품이 없다. 평상시에 옷을 걸치고 다닌다는 사실, 그 옷마저 투시해 보는 인간들이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눈이 좀 더 째진 사람이나 코가 좀 낮은 사람이나 엑스레이 사진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고 기존의 미의 기준을 사그리 무시해 버리는 게 그 사진이다. 모든 인간들이 엑스레이 눈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를 공평하게, 차별 않고 바라볼 텐데....

 

옥련씨의 도움으로 오전 중에 모든 진료를 마치고 병원 구내식당엘 가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곁에 같은 병동 간호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원내 직원들이 훌륭한 의사상을 뽑는 투표를 식사후에 한다는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옥련씨가 자기는 김은경 선생을 좋아한다면서 그이에게 투표하고 싶다고 하였다. 3년전 쉼터에서 살던 인성이 엄마가 골수암으로 죽어갈 적에 마지막까지 돌봐주던 여의사였다. 마지막에는 퇴근도 안 하고 그니의 병상을 지키면서 의사로서 해 줄 일이 없을 적에는 그니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던 여의사였다. 인성이 엄마(최나순)는 자기가 고아원에서 자란 불우한 처지여서 아들에게 고아의 운명을 대물림해주지 않으려고 무섭게 투병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은경 의사는 목사님의 딸로서 누구에게나 깊은 애정을 갖고 최선을 다 한단다. 더구나 얘기에 의하면 이번에 퇴임하여 아프리카 오지로 의료선교를 떠난단다. 이곳에서 착한 일 하는 것도 충분한데 더 어렵고 곤핍한 땅을 찾아가는 그니의 용기와 신앙심에 정말 고개가 숙여진다. 의사가 되면 쓰리 키니 파이브 키니 하면서 결혼을 흥정하고, 환자의 머릿수가 돈으로 보여 3분 이상 진료실에 머물면 환자를 쫓아내다 시피하는 게 병원이요 의사들인데, 그니는 정말 딴 세상에서 딴 눈을 갖고 사는 사람인가 보다. 

 

엊그제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이태석 신부님처럼 하느님이 그니에게도 "내 사람아,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람아" 하시는 말씀을 들을 만하겠다. 비록 이승에 살고 있지만 저승으로 영원한 삶을 찾아 떠나야 하는 인생들이라면 유한한 삶 한번을 통째로 걸고서 김은경 선생처럼 영원한 것을 얻어내려고 할 만하다. 참으로 사랑이 큰 여인이다.

 

집에 돌아오니 우리 남자들 하나는 짜장면과 탕수육, 다른 하나는 짜장밥과 탕수육을 시켜서 먹은 다음이었다. 내 몫으로 탕수육도 남겨 두었다. 함양에서는 둘이 같은 볶음밥을 시켜야 해 주는데 여기서는 일인분에도 두 가지를 동시에 해 주니 손님을 끌 만하다. 함양 중국집도 저런 판매전략을 꾸미면 좋으련만 워낙 친절과는 담싼 사람들 같아서 어려울 게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벌어서 뭐하지? 그걸 잘 모르겠다. 내가 아프다니 두 남자가 다 기운이 없어 하길래 저녁 참에는 안 아픈 척하면서 씩씩하게 움직였다. 엄마나 아내에게는 아플 시간과 여유도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