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7일 일요일, 맑음

 

우리 본당 우이 성당 11시 미사에 갔다. 제대 위에서 빵고가 부제복사를 섰다. 얼마나 기분이 으쓱하고 좋은지.... 하필 오늘 복음이 가나촌 혼인잔치 얘기였다. 잔칫집에서 포도주가 동나자  성모님의 강요로 예수님이 항아리에다 맹물을 가득히 부어넣고서는 포도주로 변화시켰다는 기적 얘기가 나온다. 예수님이 "제 때가 아직 안 왔습니다."라면서 슬쩍 뽐내는 품이 보스코가 무슨 부탁을 할라치면 빵고가 한참이나 재다가 해 주는 것과 비슷하다. "무슨 일이든 걔가 시키는대로 해요." 하인들에게 한 마디 하고서  부엌으로 들어가는 마리아의 말씀에는 자식에 대한 자신만만함이 가득히 배어 있다. 겨우 부제로 제단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서도 옆 자리에 앉은 교우에게 "쟤가 바로 우리 아들이라구요!" 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인데 아들이 누군 줄 알고  아들 능력을 120% 믿고도 남는 어머니로서 어찌 그 아들이 자랑스럽지 않았으랴!

 

그러던 아들이 빌라도 재판을 받고 혐의가 없다면서도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는 꼴을 자기 눈으로 목격해야만 했으니 그 어머니의 심경이 오죽이나 했을까? 빵고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겠다고 나서고부터는 어미인 내 마음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십자가 밑에서 까무러치지 않고 버티신 성모님의 강단을 나도 흉내낼 수 있을지 영 자신이 없다. 지금의 자랑이 가시가 되어 아플 적에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텐데....

 

며칠 전부터 배가 몹시 아프고 허리까지 아픈데 오늘  미사에 유독 통증이 심하길래  미사후 선내과에 갔다. 원장님이 안식교 신자라서 토요일 휴진하고 일요일에 근무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주 편리하다. 더구나 우리 가족에게는 언제나 무료로 처방해 주는 박경선 선생님의 맑고 밝은 미소가 참 고맙다. 그는 쉼터의 식구들도 무료로 진찰하고 치료하고 의약분업 이전에는 약까지 공짜로 주었다. 내 경우 만성 맹장염일 수도 있겠고 창자가 꼬여 있을 수도 있다면서 약을 처방해 주며 사흘 후에 다시 보잔다.

 

                                                                         은퇴한 장로님답게 89세의 나이에도 엄마의 기도는 여전하다 

DSC096531.jpg 오후 3시에 호천이네 집에 갔다. 엄마를 모셔온 참이어서 오빠네를 빼고 우리 네 형제가 다 모였다. 순행이랑 그 아들 현덕이까지 와 있었다. 라사냐를 만들었다. 손이 많이 가는 일임에도 정분이는 열심히 준비하고 부지런히 거들었다. 반죽이 부족해서 현덕이를 시켜서 반죽을 더 했다. 정분이는 케익도 사과케익과 아몬드케익 두 가지를 구웠다. 열한 명의 식구가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은 올케가 바리바리 싸 주었다. 언제나 기쁘게 잔치음식을 장만하고 넉넉히 마련해서 모두에게 싸 주는 정분이의 마음씨가 늘 고맙다.

 

호천이가 준비한 동영상들을 보았는데 10여년전 얘기들이 녹화되어 있었다. 우리 집안이 설날이나 추석에 예배드리는 장면들인데 모두가 적어도 10년은 젊어 있었다. 엄마의 설교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였다. 오늘 온 손주들, 빵고, 비또리, 진이와 원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엄마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구나! 보스코를 보노라면 늙었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그의 동창들을 보면 다들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할아버지들이다.

 

군대가는 손자(진)의 입대인사를 받는 엄마.  강현덕, 엄마, 전진, 성하윤, 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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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손자 시아 나이였던 원인가 1000원을 준다는 큰아빠의 꾐에 넘어가서 고추와 엉덩이를 보여준 장면이 찍혀 있어서 이제는 인터넷에 올리지 않게 원판을 가져가려면 5억은 가져와야 한다면서 호천이가 원이를 을러댔다. 이렇게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실없는 얘기와 농담을 실컷 지껄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오니까 10시가 넘었는데 아침보다 몸이 더 안 좋다. 빵고와 셋이서 끝기도를 올리고 나니 정신이 아찔하다. 오늘밤을 잘 넘겨야 할 텐데 걱정이다. 보스코는 옆에서 세상 편하게 코를 골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