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2일 화요일, 흐림

 

날씨가 다시 을씨년스럽다. 기온이 상당히 내려갔다. 진이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곶감과 종일 씨름한다. 밖에 나가도 마당 가득히 곶감 채반들이어서 마당이 온통 바알갛고 노오란 색칠을 하고 있다. 만지면서 주무르고 내다 말리고 다시 따숩게 집안에 들여놓았다가 다시 마당으로 내가기를 하루 종일 되풀이한다. "진호야, 감동에서 곶감 따 와라!" 그가 감박스 가득 안고 들어온다. 덜 말랐는지 마당으로 다시 내보낸다. 이토록 몇 날 며칠을 감에 치이다 보면 나 같아서는 절대로 감과 친해지지 않을 성 싶다.  

 

올해는 판로도 만만치 않다는 표정들이다. 집집이 감동을 짓고 집집이 곶감을 만드니 경쟁이 붙겠고, 경제사정 때문에도 판로가 자연히 문제될 게다. 진이네도 당장은 판로가 걱정되는 듯하다, 작년에는 없어서 못 팔았는데. 나라도 좀 팔아줄까 해서 여기 저기로 전화를 돌리는 중인데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미자씨네도 자꾸만 감박스를 들고 와서 진이네 내냉고에 쌓아두고 간다. 집집이 주부와 일손들이 곶감과 전쟁하고, 시장판에서는 주머니가 얄팍해진 소비자들과 엄청나게 늘어난 생산자들이 곶감 판매를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구정이 오면 사정은 훨씬 나아질 테지만 말이다.

 

진이네가 보기 딱해서, 나는 손가락 관절염 때문에 작업은 돕지 못하고. 밥이라도 해 주어야겠다 싶어 오늘은 점심과 저녁을 해 주었다. 점심에는 도마도 소스 비빔, 저녁에는 짜장면이었다.

 

시골에서는 누가 뭘 한다면 너도나도 하다가 너도나도 망하고 결국은 너도나도 그만두는 광경을 이곳에서만도 몇 차례 목격하였다. 90년대 중반에 토마스네를 보러 서울에서 내려오면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은 이집 저집으로 서로 몰려다니면서 재밌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문정초등학교에 모여 축구나 족구를 하는데 여나므 명은 실히 되었다. 동네에 젊은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운동장 주변 나무 그늘에서는 젊은 아낙들이 담소를 나누고 어린 아이들은 소박한 놀이기구를 타면서 까르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표고버섯 재배의 바람이 불었다. 너도나도 재배하겠다면서 비닐하우스를 짓고 너도나도 자금을 얻어쓰려고 농협에 맞보증을 섰다. 운서로 올라가자면 지금도 누가 그 때에 지어놓고 시작도 못한 채 내버려 둔 표고버섯 비닐하우스가 철골만 드러낸 채 바람에 비닐을 날리고 있다. 거기서 둥지를 틀겠다고 지은 흙집이 보기 흉한 폐가를 이루고 있어서 그 당시 젊은이들의 부풀었던 꿈과 실패의 아픔을 한 눈에 보여준다. 그 주인은 그 때 진 빚으로 인해서 부모님의 남은 땅을 작년에 마저 처분하게 했다는 소문이다. 시세를 잘못 판단한 댓가치고는 그 파장이 너무 큰 셈이다.

 

무작정 대출해서 그런 꿈을 부풀려 돈장사만 일 삼던 농협과 정부의 무분별한 정책, 다 날아가 버린 부모의 재산과 퇴직금이 지금의 곤궁한 모습을 초래하였다. 경제학자 김교수 말대로,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연대보증, 은행이 직접 나서서 대부인의 신용을 평가하고 나서 대출을 해야 하는데 자기들은 가만히 앉아서 연대보증만으로 대출을 해 주고, 그래서 그들을 몽땅 한꺼번에 망하게 하는 금융계의 해악이 나같은 사람에게도 한 눈에 보인다. 그런데도 농협은 여전히 대한민국 최대 금융기관으로 행세하고 있고 지금의 대통령도 농협을 손대지 못하고 넘어가는 중이다. .

 

그  표고버섯 터에서 좀 더 올라가면 재호씨네가 짓고 살던  집이 있다. 지금은 "지리산 청정낙원"을 하는 형사장네가 산다. 소를 키우던 커다란 외양간도 비어 있다. 그때만 해도 수십 마리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제주에서 시집온 아내와 도현이, 송현이 귀여운 두 딸과 무남독녀를 지리산으로 시집보내고 여기까지 따라오셔서 딸네 뒷 수발을 해 주며 보람을 느끼시던 장모님까지 계셔서 그 집은 활기와 생명으로 가득 찼었다. 그 사람 역시 연대보증을 책임지느라 다 접고 도시로 돌아갔다. 아내가  힘겨운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는데 그때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던지 남편 없이 외동딸 바라보며 키우고 시집보내신 도현이 외할머니가 지금 암으로 생의 마지막을 병상에서 보내고 계시단다.

 

그 외에도 송전, 고향터, 백연마을, 용유담... 이 골짜기 어디를 가든지 귀농의 꿈을 안고 고향이나 시골로 내려왔던 그 많은 젊은이들이 실패하고 산산히 부서진 꿈을 뒤로 남기고 다시 도시라는 정글로 돌아간 서글픈 자취가 남아 있다. 내가 아는 것만도 이런데 이 나라 농촌 곳곳에 얼마나 많은 아픔이 서려 있을까? 오늘은 그간에 떠난 이들의 안부가 유난히 궁금해진다.

 

오후에는 토마스2가 오랫만에 찾아왔다.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궁금해서 들여다 보려고들 왔단다. 다들 감 만지느라 바쁜 계절, 이 계절이 가야만 산도 보이고 눈길을 걷는 산행도 할만큼 마음이 한가해지겠지. 또 힘겨운 노동을 하고 난 연후라야 놀이도 즐거운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