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7일 목요일, 맑음, 기상청예보로 비올 확률 0%

 

어제 도정 가타리나씨가 대구에서만 상영하고 있는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를 보러가자는 전화를 해 왔다. 무슨 영화일까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수도원 안에서의 얘긴데 세 시간에 걸쳐 상영되는 영화에서 말소리도 없는 적막강산이라 어떤 사람은  "50%는 잠자고 50%는 졸았다."라는 평을 올려놓았다. 어떤 사람은 세 시간 동안 피정한 기분이었고 아주 좋은 영화였다는 평을 올려놓았다. 영화평이 양극을 달리고 있어 호기심을 끈다.

 

그런데 저녁에 가타리나씨가 전화해서 자기 집 차가 사고났으므로 약속을 취소한다는 것이었다. 택배온 물건을 가지러 김교수가 "서강가든"이 있는 큰 길까지 차로 내려왔고 물건을 받아서 집안의 비탈길을 쌩하니 올라오다가 눈이 언 바닥에 차가 미끌어져 뒤로 밀리다가 정원석에 받쳐 멈추었단다. 보스코가 위로 전화를 했는데 김교수는 별거 아니라는 대답을 해왔다.

 

김교수님의 비교적 경제적인 차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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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밤새 벼라별 상상을 했다.  그 집 차가 길에서 추락하여 절벽에 간당간당 매달려 있을까? 차를 떠받치고 있는 나무가 뚝 부러지지나 않을까? 돌이 조금씩 밀려나서 그 비탈길을 차가 뒤로 미끌어지며 대문밖 낭떨어지에 곤두박질하지나 않을까? 마음 약한 가카리나씨는 얼마나 놀랐을까?

 

도정에서 아직도 눈을 가리고 있는 스테파노씨 차량 

DSC09555.jpg   위로 차 아침에 도정에 올라가 보았더니 그 차는 얼음과 눈이 녹기만 하면 앞으로 씽하고 전진할 태세로 바위에 엉덩이만 걸치고 비스듬하게 서 있었다. 재작년 체칠리아씨 사고를 연상하고 있던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김교수는 경제학과 교수답게 사고도 아주 저렴하고 경제적인 손상이 제일 적은 방도로 낸 것 같았다. 그 집에서 떡과 차를 얻어 먹고 어제 사고의 주범이던 (택배온) 백김치도 얻어갖고 내려왔다. 시어머님이 고향에서 철 따라 김치와 반찬을 해서 보내신다고 한다. 참 복도 많은 며느리다.

 

 DSC09571.jpg 점심 후에는 함양에 나갔다. 작년 추석 때 찬성이 서방님이 자기 농장 감과 배나무 낙과로 인해서 추수할 것이 없었다길래 우리 친환경농업과 정문철씨가 하는 회사(함양 바이오텍 친환경농약상사)에 들러서 액상규산을 구했다. 하과장의 부친의 감 밭에 그것을 시비한 결과 좋은 수확이 있었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서 우리 배밭에도 줄 겸 서방님 농장에도 보내줄 겸 구입했는데 그 결과는 내년 이맘때나 알 것 같다. 농촌에서는 모든 것의 결과를 한참 기다려야 알게 되므로 참을성있게 기다려야 한다.                         

 

그 다음에는 호천네 보내 줄 호박고구마를 사러 지곡에 있는 상덕씨네 고구마 창고 겸 선별장엘 갔다. 거의 다 팔았다지만 아직 남은 게 산더미 같은 걸로 보아서 농사를 얼마나 많이 지었는지 알 만 했다. 10 킬로짜리 두 상자를 사고나니까 나한테도 DSC09569.jpg 호박고구마 한 상자, 자주 고구마 한 상자, 자주고구마즙 한 상자 이렇게 세 상자를 덤으로 주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장사를 해도 되는 걸까? 반갑게 가져 오면서도 속으로는 되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는 열심히 농사짓고 아홉 곳이나 되는 카페에 가입하여 그곳을 판로로 해서 생산품을  팔고 있단다. 저런 농사꾼을 만나면 나도 뭐 좀 해봐야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집에 오니 미자씨가 와 있어서 받아온 고구마를 나눠주고 진이엄마한테도 구워서 갖다줬다.

 

                                                                                              방방에 깔아 말리는 산자 밑판

DSC09576.jpg 함양읍에서 물건을 사다가 영숙씨와 통화가 되었는데 한과 산자를 만들고 있으니 구경오란다. 가보니까 경상남도의회 문의원댁이었다. 방방이 산자 밑판이 가득했다.  찹쌀가루를 한 말이나 빻아서 콩가루 닷되와 반죽해 풀처럼 쑤어서 썰어서 말 려서 기름에 튀겨서 고아 놓은 물엿을 발라 쌀튀밥을 뭍히는 공정이었다. 오늘은 튀기는 작업을 하는 공정인데 영숙씨 남편도 돕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경상도 남자는 가 부장적이어서 여자일을 내몰라라 한다고 했노? 하여튼 지리산 자락에 와서 여자보다 더 여자다운 남자를(이 낱말은 누구를 놀리는 말이 아니고, 심리학자 융의 말대로 거친 animus만 넘치는 것이 아니라 유화한 anima도 한데 갖춘 조화로운 사람을 가리킨다), 그것도 경상도 남자를 나는 오늘 두번째로 만났다. 저렇게 순하고 섬세하고 솜씨 좋은 남편을 거느린다는 것은 경상도여자에게  행운이다.  영숙씨가 평소에 그렇게 밝고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이유를 알 만했다. (내가 만난 첫번째 여자다운 경상도 남자는 칠선 사는 파비아노 선생이다.)

 

산자를 튀기는 데는 남편이 영숙씨보다 솜씨가 낫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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