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일 일요일 새해.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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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 아침 제일 먼저 인사를 해 온 사람은 큰아들네 부자. 스위스는 아직도 2023년까지 두어 시간 남았는데 이미 새해 아침을 맞는 지리산 할매 할배에게 새해 인사를 올린단다. 큰 손주 시아는 170cm가 훌쩍넘은(며느리가 들어와 성씨가문에 종자개량을 한 셈) 17세 총각이고 목소리도 베이스로 굵어 사춘기 언덕을 한창 오르는 중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무슨 공부가 제일 재미있더냐고 할아버지가 물으시니 라틴어란다! 라틴어에서 불어로(versio), 불어에서 라틴어로(thema) 번역하는 작업이 제일 흥미롭단다. 그 말을 듣고 한국 최초의 라틴어문학 박사 할아버지의 '뭇흐한' 표정이라니! 손주가 준 새해에 제일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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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오늘 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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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730분 공소에서 임신부님을 모시고 새해 미사를 드렸다.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까지 모시는 축일이니 천주교에서 마리아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다. 그런데 왜 그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여인들 위상은 그리스도교파들 중 천주교가 제일 바닥일까? 개신교에 여목사가 나오고 루터교나 성공회에서는 여사제와 여주교까지 나오는데, 왜 구교에서는 사제는커녕 부제도 없는가? 마리아를 대표로 저만치 올려놓았으니 그밖의 여인들은 그냥 대리만족으로 그치라는 얘기일까?


미사 후에는 참석자들이 휴천재로 올라와 떡국을 먹었다. 떡만두국 한 그릇에 다들 한 살씩 더 먹었으니 나이값을 할 새해다. 우리에게는 설날이 따로 있지만 서양에서는 엄연히 오늘이 새해다. 큰아들과 큰손주의 새해 인사에 그집 강아지 겨울이도 멍멍멍 세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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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다. 보스코와 나, 그리고 빵기 빵고가 너무 생각나서 샅샅이 뒤져 봤더니 네이버에 내 전화번호가 나오더란다. 혹시 자기를 기억 못할까 주저하며 전화를 했단다. '마리아!' 너무나 생생한 기억 속의 이름이다. 언니는 세레나’, 남동생은 재홍이였다. 1970년대에, 서울집 골목 세 채 나란한 집 가운데 첫집에서 살던 초등학생 세 오누이. 부모님이 멀리 계셔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마리아는 얼마나 밝고 맹랑한 왈가닥이었는지 잊을 수가 없다. 매일 빵기를 데리고 뒷산을 뛰어다녔고, 곧잘 빵고도 업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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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도 거침이 없어갓 태어난 2.5킬로의 갓난 아기 빵고를 보고서는 "아줌마, 우리 토끼를 키우다 잡았는데요껍질 벗긴 그 토끼랑 이 애기가 똑같아요."라고 해서 우리 부부들 크게 웃겼다그런데 그 마리아가 어언 60고개를 바라보고 27, 23세의 두 아들을 둔 목사 사모라니! '아버지가 없어 허허했던 시절언제 찾아가도 귀찮아 않고 저흴 따뜻이 맞아주셨어요.'라는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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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어린이날'에는 열두 가지 크레용밖에 없던 자기한테 56색 '왕자크레파스'를 선물을 해주셨는데, 그걸 받고 감격 먹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단다. 아이는 크고 어른이 되어 늙어가면서도 아름다운 기억은 그때 그대로 영롱한 빛깔로 새겨져 있다.


어제 토요일. 태평씨네 부부와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으러 갔다. 곶감 네 (4만 개)을 깎아서, 그늘에 말려서, 일일이 손으로 주물러서, 손질해 담으려면 손가락과 손바닥이 다 망가지고 쥐가 나서 뻣뻣하단다. 누군가의 저렇게 힘든 노동이 말랑하고 달콤한 곶감을 탄생시킨다니 비싸다는 말 말고 그 노동의 열매를 사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이 근방 많은 사람이 초겨울을 곶감 농사로 보낸다.


바티칸 공식기관지의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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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요한바오로 2세 장례식에서 상주로서 외교단을 영접하던 라칭거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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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직후 베네딕토16세 교황으로 뵙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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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16세 교황님이 어제 95세로 선종하셨다"는 부고를 여러 지인이 내게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그분의 교황선출과 취임, 교황직 처음 3년간 보스코가 주교황청 한국대사로 있었고, 20079월 보스코의 이임 인사에는 온 가족이 함께 찾아뵌 교황님이기에 그분의 영원한 안식을 빌게 된다. 빵고 신부 서품 때는 친필로 축하 메모를 보내오셨다.


2007년 부활절 미사에 빵기 부부가 예물봉헌을 하고 시아는 아범의 품에서 축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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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직은 종신제인데, 당신 건강으로 감당 못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서 독일인답게 사임하고서 바티칸 안에 있는 '교회의 어머니'라는 수도원에 은거하여 지내셨다. 영화 두 교황에서 본대로,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등장하시게 자리를 내주신 공적은 참으로 존경할 만하다. 우리 가족의 이임 인사 때 그분이 안아주신 아기 시아가 이제 17세의 청년이 되었으니 영원이라는 블랙홀로 빨려드는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빠른지 체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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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우리 가족의 이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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