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7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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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풀렸다. 먼 산은 여전하지만 겨울이 다 가기 전까지는 절대 녹지 않겠다고 이를 앙다물었던 테라스 눈도 한낮의 부드러운 태양의 다독임에 하는 수 없이 이불을 걷기 시작했다. 텃밭 미니비닐하우스위의 덮인 눈을 털어주며 안을 들여다보니 상추와 루콜라가 그 추위에도 옹기종기 몸을 비비며 예쁘게도 자라고 있다


점심에 먹으려고 한 줌 뜯어오는데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워 좀 미안했다. 텃새들이 이 강추위에 대나무밭에서 얼어 떨어지진 않았나 걱정도 했는데(고양이가 쥐 생각?), 오늘 구장 네 감나무 마저 감 한 톨도 안 남기고 도리를 해 먹고선 이 나무 저 나무를 기웃거린다. 창조주 하느님 말고 지리산 계곡의 텃새 철새 끼니 걱정을 해 줄 존재가 누굴까? 우리 텃밭에서 아직도 유일하게 파릇한 채소가 겨울초(유채)인데 머지않아 저들의 표적이 되어 흔적없이 사라질 게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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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순화화백이 새 그림을 화면으로 선보였다. 재작년 사순절 어느 금요일 바티칸 광장을 빗속에 절룩거리며 걸어가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 보스코가 그 역사적 장면을 화폭에 옮겨보시라 권한 바 있었다. 21세기 인류가 간직한 종교 신앙, 가톨릭교회의 현주소가 담긴 그림일지 모른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456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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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호 신부님이 띄우신 아가 2022 성탄절이라는 시를 읽었다. 그분이 동감도 채플에서 찍었을 개펄(우리가 갔을 적에는 눈 덮인 설원이었다)은 하느님이 그리신 한 폭의 추상화다. 그 갯펄을 바라보며 지어 올린 사진과 글이 무척이나 절묘하여 한 시인 사제의 시세계와 영성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퇴로 없는 삶의 역정과 그 서정을 한도 원도 없이 쏟아부은 그림.

살아생전, 언젠가 꼭 그려보고 싶은 그림을

동토의 갯벌 바다가 미리 다 그려놓았다....

수천수만 유랑민의 슬픈 눈빛을 닮은

유빙을 싣고 선연한 빛으로 갯벌에 물이 흘러들고 있다.

슬픔과 분노, 고통과 절망의 울음 머금은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아픔은 모두가

저 얼굴 없는 얼음덩어리가 되었는가?

둥 둥 물위에 떠가는 슬픈 군무의 비창이 잿빛 하늘에 닿아도

세상에서는 아무도 저 소리를 귀로 들을 수가 없구나

그렇구나 소리 너머의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구나....” 

(조광호, 아가. 2022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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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사제의 이 시에서도, 심화백의 그림에도, 엊그제 성심원 성당의 말구유 옆에 붙여진 신문스크랩에도 무너져가는 사회정의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조바심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래도 신앙인들에게는 지구상에 약자들이 비명지르는 '소리 너머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귀가 있구나. 


모든 정치를 복수로만 몰아가고, 그래도 약자를 위하던 경제정책을 모조리 뒤집는 일로만 몰아가는 요즘 한국 정치(그럴수록 보수층의 지지도가 올라가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미국의 보호무역과 중국에 대한 봉쇄는 노교황 프란치스코의 길고 깊은 한숨을 떠올린다. 2013년 한국을 다녀가던 비행기에서 기자들에게 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됐어요.” 하시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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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사는 아래쑻꾸지의 대동계(大同契) 하는 날. 며칠 전부터 계속 마을 방송이 나왔다. "1227일 오늘은 마을 대동계 하는 날입니다. 빠짐없이 10시까지 마을회관으로 나와 주십시요. 11시까지 회의를 하고 마을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했응께 다들 드시고 가십시오."


한 시간 한다던 대동계 회의는 이장이 4년간 마을 돈 계장과 자기 개인 통장을 섞어 썼다는 성토, 마을회관이 서 있는 땅의 등기를 아직도 이전 받지 않았느냐는 독촉으로 2시간도 더 걸렸다. 그런데 막상 이장 선출의 시간이 되자 지금까지는 잘못했지만 4년을 하고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2년만 더하게 해 달라.”는 발언과 이번엔 좀 똑똑한 사람이 이장 되어야 한다며 노인회장이 추천한 뉴페이스(귀농하여 이 마을에 산 지 30년 되는 남정)가 비밀투표에 부쳐졌고 결과는 88! 그 뉴페이스가 양보하겠다고 물리서자 현이장이 재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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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에서는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외지 것’으로 체감하기 십상이다. 심지어 이 동네로 시집와 50년을 산 여자도 아짐들의 입에서는 외지것으로 불리곤 한다. 이장 자리를 양보한 후보의 부인에게 기분이 묘하지 않아요?” 물었더니 그런 일에 휘둘리며 살고 싶지 않아요. 그냥 그러려니 해요. 그것 말고도 생각할 일이 너무 많아요.” 란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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