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일 목요일, 흐림
휴천재 거실 벽난로 위에 걸린, 루오 풍으로 조각된 조광호 신부님의 '예수 성면(聖面)'(그분의 첫 조각 작품으로 1973년 작)을 눈여겨 봐두었던 김경일 선생님이 보스코라면 틀림없이 조르주 루오(Goeorges Rouault: 1871~1958)를 좋아할 것이라면서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에 전시중인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 전"을 보러 가자고 초대했다.
보스코는 옛날부터 루오의 판화집 "미세레레(Miserere)"를 소장하고 있었으며 그가 쓴 『철학적 인간학: 인간이라는 심연』(철학과현실사 1998)이란 책에도 루오의 그림(De profundis)이 실려 있고 그의 단문에도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는 루오의 그림 제목을 인용한 적 있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36
1, 2차 세계대전의 인류 대환란 속에서 훼손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예술로 승화시킨 루오의 작품은 인간의 비참, 곧 '고(苦)'의 문제를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로 파악하여 그림이라는 예술로 인류의 양심에 호소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진정한 사회주의자로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노동자, 서커스 광대, 접대부들은 사회의 밑바닥에서도 자유와 꿈을 지닌 사랑스런 사람으로 표현했고 반면에 지식인, 정치인, 재판관 등은 위선과 기만과 탐욕으로 천박해진 오만하고 무감각한 기득권 세력으로 묘사했으니 '미세레레' 연작을 비롯한 수많은 그림에 '수난 받는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만한 화가였다.
루오의 판화집 MISERERE 앞에 선 보스코
우리나라에서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시대 정신에 가장 앞선 호남지역(광양)에서 루오의 전시회를 연 것은 매우 뜻 깊었다. 특히 '루오전'을 유치한 분으로서 우리 셋을 반갑게 맞아준 이지호 관장님과의 만남은 퍽 기분 좋은 자리였다.
또 서울집에서, 산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작가 강레아와 함께 살다 보니 나도 사진에 관심이 많아져 광양의 사진작가 이경모(1926~2001)의 "역사가 된 찰나"라는 사진전도 둘러보고 그의 사진접을 한 권 샀다.
그 중에서도 '여순사건'을 종군 취재한(어떤 시각에서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들은 특히 뼈아프게 소름 끼치는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동학운동', '제주 4.3'(전라남도 제주군), '여순사건', 심지어 '보도연맹'까지도, 외세를 업은 기득권의 민중 학살은 거의 언제나 '전라도'에서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새삼 집힌다. '5.18'도 '세월호 비극'의 해역도...
날씨가 차진다고 일기 예보가 너무 엄포를 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늘 아침 백김치 담을 배추를 마저 뽑으러 밭에 나갔다. '배춧잎은 잎사귀 한 장이 옷 한 벌'이라더니 몇 잎 벗겨내면 속은 멀쩡하다. 꽁꽁 언 겉잎이 속잎을 감싸 안은 배추 포기에서마저 갑자기 산청 '외공리 학살'에서처럼, 군경의 총질에 아기를 부등켜안고 죽어가는 모성이 가슴 서늘하게 떠오르는 것은 꼭 어제 본 이경모의 흑백사진들 때문이었을까?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72862
나치의 유대인 모녀 총살 사진, 초토화 작전으로 얼어 죽은 제주 "변병생 모녀" 동상
김장이 끝나고서 뒷정리에 오늘 하루가 꼬박 걸렸다. 일년에 한번 쓰는 그릇이라도 꼭 필요해서 있어야 하고 필요할 것 같아 산 물건이 그냥 남겨지면 부엌 공간을 차지하는 게 부담스럽다. 김치통들이 그렇다. 지인들에게 택배로 김치를 부치러 농협에 가서 보니 20킬로 가까운 김치통을 허리가 기역자로 꺾인 할매들이 힘껏 들어 농협 저울에 올려놓는 괴력을 내보인다. 대처에 사는 자식들을 향하는 모정의 기운이리라. 도회지 사는 자손들, 김치 한 가닥 먹을 때마다 시골 어매를 꼭 기억할 일이다.
저렇게 논도 비워지고 무 배추 뽑혀나가 텅빈 초겨울의 채마밭은 새댁 적 자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초라한 껍질만 남은 어미들의 빈 가슴 마냥 훵하니 쓸쓸하다.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 쯤 겨울 들녁에 가 볼 일이다.
빈공간의 충만.
아낌없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낱알 몇 개...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 번 쯤 겨울 들녁에 가 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빈 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오세영 “겨울 들녁에 서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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