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9일 화요일. 겨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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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 비가 온다 했지만 그제 무 배추를 뽑고 보스코가 손수레로 테라스 밑에 실어다 쌓아 주었기에 배추 절이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어제 오전에는 무를 씻고 배추를 반으로 가르는데 그야말로 얼마나 배춧속이 알차게 들었는지 도깨비 다리를 붙잡고 씨름하는 기분이다. 드물댁이 붙잡고 내가 칼질을 하는데 너무 커서 들기조차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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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텃밭농사를 시작한 이후 올해처럼 배추가 알차고 무가 크게 든 일이 없어 드물댁더러 우리 서울 가고 없을 때 무밭에 무슨 짓을 했기에 저렇게 크냐?”고 어깃장을 놓자 어데예. 늘 배잡게 심다가 널찌거니 심었더니 맘껏 큰 거라요.” 하며 억울해 한다. 하기야 그미는 농약이고 비료고 스스로 사러 가는 방법조차 모르는데.... 


너무 큰 배추는 여섯 쪽으로 갈랐는데 그 한쪽만으로도 우리 둘은 보름은 먹을 양이다어제 점심을 먹고서 배추를 절였다. 배추를 절이며 고생하지 말고 절임배추 하는 집에 가져다가 주고 절여 오라지만, 오가는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집에서 절이는 게 편하다. 도회지 아니라 시골 사는 지인들도 요즘은 배추를 사서 절이는 게 아니라 택배로 절임배추를 사서 양념을 하는 간이식 김장을 한단다. 젊은 세대는 아예 김장을 않고 사 먹는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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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도 배추 쓰레기를 치우고, 모레는 영하로 내려가는데 얼면 못쓴다고 밭에 남아있던 무까지 뽑아다 갈무리를 하며 김장을 돕는다. 너무 절면 짤 것 같아 걱정도 했지만 밤이 늦으면 때론 너무 안 절어 울 엄마 하시던 말대로 배추가 살아서 도로 밭으로 가려 할까밤중에도 몇 차례 내려가 소금물에 절인 배추 봉지를 뒤집었다.


배추 40여 포기를 하며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나야 드물댁도 돕고 보스코도 도와주는데, 울 엄마는 해마다 150포기, 어떤 해는 200포기나 되는 김장을 하며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아버지도 우리도 특히 큰딸인 나마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음을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다.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 그 많은 김장을 맨손으로 하시고 엄마는 손이 맵다며 손에 참기름도 발라보는 등 몇 날 밤을 고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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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울 엄마도 60이 넘고 막내며느리를 보자 선언을 하셨다. "이제까지 나는 평생 할 일을 다했다. 이제는 막내며느리도 보았으니 부엌에 안 들어가겠다." 그러고서 정말 부엌에 안 들어가셨는데 나는 이른이 넘어도 이 모양이니 가사에도 '노동 총량의 법칙'이 있어 젊어서 놀다 보면 못다 한 노동을 늙어서 채우는가 보다.


엊저녁에는 보스코가 무채를 썰어주어 내 일이 줄었고 나는 무 소박 김치를 담갔다. 지금까지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아직도 우물가에 두꺼비가 기어 다니고 있다. 영하로 갑자기 내려간다니 동면이라도 시작하라고 일렀지만, 배가 고파 겨울잠을 잘 수가 없단다. 기후변화로 온 지구가 몸살인데, 우리 정부, 이 정권만 너무 태평이어서 국민의 걱정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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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여덟 시에 드물댁이 배추 씻어주러 온다는데 빗방울이 굵어진다. 배추야 데크 밑에 플라스틱 깔판을 놓았으니 비를 피했지만, 우리 둘은 휴천재 아치 밑에서 월남모자 하나씩으로 비를 맞으며 일을 마치자 온몸이 비에 젖었다. 겨울비답지 않아 몸이 얼지는 않았다.


10시에 희정씨가 김장을 도우러 읍내에서 찾아와서 양념을 섞어주고 소를 넣었다. 그미는 손 힘이 센데다 눈썰미도 대단해 척척 일일 해치우는 모범주부다. 아래층 진이엄마도 와서 함께 소를 넣어주어 1시 반에 배추김치가 끝났다


새 김장김치로 점심을 먹으면서 김장은 아낙들의 축제임을 실감한다. 김장김치를 플라스틱 그릇에 가득가득 담아 놓으면 마음 뿌듯하게 겨울을 맞는다. 내 기운이 달리면서 김치를 선물 보낼 데 숫자가 해마다 줄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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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길을 내려가며 보니 동네 아짐들이 너도나도 무 배추를 뽑아 나르느라 부산하다. 도회지 자손들이 와서 도우려니 기다리다 추위가 닥치니 얼마나 속상할까! 휘어진 허리마다 근심이 묵직하게 얹혀있다. 더구나 아들이나 딸한테서 "엄마, 김장해서 보내지 마, 사서 먹을 테니까!" 라든가 심지어 "제발 사서 고생하고서 아프다 아프다 하지마! 아프단 소리 지겨워!"라는 매몰찬 말을 듣는다면 해마다 그동안 딸네랑 며느리네랑 함께 모여 축제처럼 맞이하던 김장도 우리 세대에서 끝나는 것 같아 마음 아플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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