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7일 일요일. 맑음


1125일이 돈보스코의 모친 맘마 말가리타(Mamma Margherita) 기념일, 곧 내 '세례명' 축일이다. 구교우들은 이상하게 세례명을 '본명(本名)'이라 부르고 태어날 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은 '속명(俗名)'이라고도 하니 모조리 예수님께 법을 받으러 출가 기분을 내나보. 아무튼 맘마 말가리타는 성녀 모니카처럼, 아들 잘 둔 덕분에 성인(聖人)으로 꼽힐 시성(諡聖) 절차를 밟는 중이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89305

엽렵한 미루가 제일 먼저 축하를 해준다. 하기야 며칠 전 큰딸이 축하해주려 내려오기도 했다. 이웃 사는 체칠리아씨가 내 영명축일이라고 소담정도미니카랑 점심을 함께 먹자 해서 산청 '동의보감촌'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차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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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갖다 맡긴 아반떼 수리가 끝났다고 찾으러 오란다. 역시 '부지런한 나라' 한국에 산다는 실감이 든다. 이탈리아에서였다면 한 달도 더 걸릴 일이다. 감쪽같이 상흔을 안 남기고 새 차로 만들어 놓았다. , 사람이란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 새 차 망가진 것을 고쳐서 몰고 오는데 먼저처럼 '내 새 차 어찌 될까?' 하는 걱정이 싹 사라졌다. 액 땜을 하면서 사람이 초연해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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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전에는 줌으로 '이주여성인권센터' 이사회를 두 시간 가량 개최하고, 오후에는 2022년의 크리스마스 트리도 만들었다. 보스코가 3층 다락에서 트리와 장식물 상자들을 꺼내오고 정한 곳에 트리를 세우고 꽃전구를 감고 나면, 방울 달고 구유를 꾸미는 일은 내 몫이다. 우리가 결혼한 해부터 50여년간 해마다 거의 빠짐없이 만들어온 크리스마스 트리. 언젠가 손주들과 함께 하려니 꿈도 꿨지만 아직 늙은이 둘이서 축일을 꾸미고 있다. 명절은 물론 교회 축일을 경사롭게 지내는 일은 보스코가 살레시오 기숙사에서 배웠고 내가 주일 학교 선생 하면서 익힌 습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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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가 이탈리아에 갔을 때가 두 살이 조금 지난 나이였다. 그해 첫번 크리스마스에 장식물로 샀던 '산타 할아버지' 인형이 40년 넘게 트리를 지키고 있다. 색깔이 바래고 낡았지만 두 아들이 방울과 장식을 하나씩 달며 좋아하던 생생한 기억이 저 인형에 살아있어 매해 추억을 다는 행사다. 여자는, 특히 엄마는 많은 것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지난 9월에 보스코가 수술을 받았을 때는 '올해는 크리스마스고 김장이고 다 안 할 꺼다!' 라고 다짐했는데, 체칠리아씨 말이 '남편이 완치됐으니 무엇이나 다 해도 된다.'고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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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드물댁에게 김장에 쓸 파를 까달라 부탁하고서 나는 오후에 오는 손님들 대접할 케이크를 구웠다. 참 오랜만에 굽는 케이크였다. 드물댁은 내가 함께 일을 해야지, 자기한테 일을 시켜 놓고 내가 딴 일을 하면 싫은 얼굴을 한다. 아무개네 일손을 도우러 갔는데 자기만 시키기에, '내가 너네집 종이냐 싶어 그냥 와 버렸다'는 말도 한다. 친구로서 이웃으로서 돕는 거니까 집주인이 의당히 함께 해야 한다는 드물댁의 의연한 기개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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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아영의 '갈계교회' 강기원 목사 부부가 김판임 교수와 함께 휴천재에 왔다. 한신 후배 목사로 강목사는 민중교회 목회를 하다 '민중 중의 민중이 농민이더라'는 깨달음을 얻고 농사를 지어 의식주를 해결하며 농민과 함께 사는 삶을 택했단다. 그래도 먹고 살고 애들 교육도 시켜야 해서 택한 노동이 콩을 심어 된장과 청국장을 만들어서 팔고, 사과 농사도 천 평을 짓는데, '과수원 집에는 딸 안 준다'는 고된 노동에도 밝고 환한 미소의 목사사모가 고맙기만 하다. 올해도 추석에 홍로를 수확해서 팔았는데 너무나 인기가 좋아 완판했다는 자랑이다.


김판임 교수는 내 주변 인물들, 전규자 목사, 한국염 목사, 이문우 언니 모두를 아는데 나만 그미를 모르는 걸로 보아 내가 산속에서 꼭꼭 잘 숨어 살았다. 처음 만났는데도 부드럽고 따뜻함이 전해오는 좋은 분이다. 산속에서 심심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나한테들 묻지만 찾아오는 사람으로 서울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보스코의 주일복음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207

김장 주간에 돌입했다. 오늘 주일, 대림 첫주 공소예절이 끝나고 오전엔 김장거리 장만하러 함양장에 갔다. 생새우, 마른 새우, 미나리, 명태껍질, 굴 등을 사고, '참새 방앗간'이라고, 꽃전을 그냥 못 지나가고 칼란디바를 세 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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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보면 한마디 할까 봐 우선 아래층 포인세티아들 사이에 숨겨두었다. '그가 뭐라 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혼자서 소설을 쓰는데 내 답변은 늘 똑같다. "만원 밖에 안 한다. 내가 패물이나 옷을 사는 것도 아니니 잔소리 마시라. 돈 만원을 놓고 바라보면 이렇게 예쁘겠느냐?" 그 말도 안 통하면 "그래, 내 돈(?) 갖고 내가 샀다. 어쩔래?"로 나갈 판인데 그의 지청구는 기껏 '심을 자리도 없는데 또 어디다 심겠다고?' 정도로 끝난다. '심을 자리 없으면 내 머리에 이고 있을 테니 염려 마요.'라는 게 내 배짱이다.


오후에는 드디어 휴천재 텃밭의 무와 배추를 뽑았다. 모레부턴 겨울 추위가 엄습한다는 예보여서 오늘은 마을 아짐들 전부가 '무 빼고 배추 빼는' 행사를 치르고 있다. 주말이어서 대처나간 자손들이 와서 일손을 돕는 광경이다. 


우리 무가 너무 잘돼 이한기 교수, 유진국씨, 스선생네, 진이네도 와서 뽑아갔다. 드물댁은 나와 동업자의 자격으로 한 이랑 반을 차지했다. 비료와 촉진제를 안 쓰기 땜에 휴천재 무는 아이스박스에 잘 간직하면 내년 여름까지도 싱싱하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야무지다고들 한다. 배추 마흔 포기는 담가야 할 것 같다. 나눌 사람 많아서 좋은 게 농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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