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란 글방
지리산 휴천재 일기
2023년 3월 30일 목요일. 맑음
친구 한목사는 차를 타고 멀리 좀 나가 바람이라도 쏘이고 오면 숨통이 트이겠단다. 남편이 제주에 있으니 한 달에 한번 와도 볼일 보고 가기에 바쁘니, 운전을 못하는 한 목사를 바라보는 나는 친구로서 안쓰럽다. 집 고치던 차사장이 친구들과 해남 쪽으로 여행을 떠나고 잠깐 쉬는 시간에 내 친구더러 예전에 가려다 못 간 철원 ‘평화학교’에나 다녀오자 했다. 서울 집에서 75Km니까 별로 멀지도 않다.
철원엘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지명임에도. 고향이 평강인 친정 아버지 손위 누이 큰모고가 철원으로 시집을 가셨는데, 내가 꼭 그 고모를 닮았다고 하셨다. “성격이 똑 부러지고, 극성맞고, 똑똑한데, ‘한 승질까지 하는 게’ 철원 누님을 딱 닮았단 말야.” 그런 말을 들어온 터라 ‘내가 어때서?’ 하는 오기가 생겨, 친구들이 한탄강에 놀러 간다 해도 일부러 안 갔었는데....
그런데 친구가 철원 민통선 안에 남과 북의 평화를 꿈꾸며 남쪽 민통선 안에다 “국경선평화학교”를 차린 정지석 목사님을 만나보러 가자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한국 방문 시 그분의 비무장지대 방문을 추진하던 일로 보스코와 통화한 적 있었다지만 나는 초면이다. 보스코가 70년대에 번역한 해방신학서들을 읽고 투신한 투여서 보스코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같은 한국신학교 출신 전순란은 몰라도(안다면 여학생 후배들 사이에 '전설적인 연애 사건'이라며 알고 있거나) 가톨릭 인사 ‘성염’이라는 이름은 대개 다 알고 있어 심술 날 때도 있다.
정목사는 현재는 강원도 소유의 ‘DMZ 평화문화센터’를 빌려 운영하고 있다. 한반도와 전 세계 분쟁지역을 섬길 ‘평화일꾼’을 키워 낼 국경선 평화학교를 현재 짓고 있는 중이었다. 우선은 힘들겠지만 뜻이 간절하니 언젠가 꼭 이뤄지리라 믿는다. 내 주변에는 터무니 없는 일을 꾸미는 몽상가들이 많은데, 실은 그런 꿈쟁이들 덕택에 세상은 바뀌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좋아진 세상을 만나게 된다.
목사님네 아홉명의 스텝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소이산으로 갔다. 멀리 비무장지대 너머로 아버지 고향 평강이 미세먼지에 가려 까마득히 아련했고 가까이로는 전쟁 전 ‘노동당 당사’가 서 있었다. 서쪽으로는 ‘백마고지’가 보였는데 천백만 평이나 되는 철원평야를 차지하느라 얼마나 피나는 전투로 폭탄을 퍼부었던지 산봉우리가 '백마'의 허연 민둥산이 되었단다. 소이산 지하는 미군의 지하 벙커였다는데 미군이 철수한 후 지금은 모노레일을 타고 사람들이 올라와 철원평야와 멀리 비무장지대와 그 너머 북한까지 구경하고 있었다.
정지석 목사님 부부와 헤어져 우리 둘은 한탄강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고석정’을 보고 ‘승대소’를 거쳐 ‘직탕폭포’를 보았다. 한탄강 ‘주상절리’를 보러갔더니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문이 닫히고 인적 없는 주차장에 우리 둘만 서 있었다. 굳이 구경하자면 한 번 더 와야겠지만 그게 언제 일지는 모르겠다. 저녁 먹고 밤길을 달려 서울 집에 돌아오니 밤 아홉시.
보스코는 나없는 사이에 3층 다락에서 내다버릴 물건들을 2층으로 모두 끌어내렸다. 그 다음은 모두 내 몫이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서울집과 휴천재 짐은 차츰 줄여갈 때가 되었다.
바오로딸 수도회 도로테아 수녀님이 9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이봉하 수사님이 알려주셨다. 전날까지 성성하던 분이 새벽기도에 안 나오셔서 찾아가 보니 이승에서 영원으로 훌훌 떠나셨더란다. 오늘 9시에 수녀원 성당에 영결미사가 있어 정장을 하고 갔다.
70년 동안을 수녀원에서 사셨는데, 그 중 한국에서만 57년을 사셨으니 삶으로는 한국사람이시다. 요즘도 출판부에서 카드 접는 일, 식당에서 채소 다듬는 일을 도와주시고 모든 공동체 안에서 나이든 수도자의 마지막 모습이 저런 분이었으면 한다는 생각들이었다니 참 부러운 분이다. 수도생활이든 가정생활이든 ‘잘 산다’는 건 근본적으로 안 다르다.
장례미사 후 오랜만에 우리와 가까운 김마리아 수녀님, 표테클라 수녀님, 김체칠리아 수녀님, 파올라 수녀님, 정가타리나 수녀님, 정아우실리아 수녀님 등등을 뵈니 참으로 기뻤다. 이 땅에서 서로 볼 날들도 길지 않은 노인들이어서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간으로 이미 들어서서 함께 걷는 중이다.
바오로회 이봉하 수사님이 우리 도착을 기다려주시고, 영결 미사도 함께 드리더니 수도원에서 점심식사까지 대접해 주셨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베르나르도 이영춘 수사님도 만나 반가웠다. 80년대 로마 유학시절부터 우리 가족을 '바오로회 가족'으로 대해주신 분이다. 어디를 가도 우리를 따뜻이 맞아주시는 수도자들에 에워 싸여 우린 참 행복하게 살아왔다.
보스코의 오랜 벗 김동찬씨가 어제 운명했다는 부고를 오늘 저녁 받았다. 그분의 말년을 혼자서 지켜온 여인 현미씨가 참 고맙다. 내일 아침 장례라는데 밤늦어 내가 야간운전 하기도 두렵고 보스코의 건강도 그런지라 보스코의 위로 전화와 작은아들에게 위령미사를 부탁하는 일로 그쳤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96185
오랜 병상에서 하느님 품으로 떠나는 이들이 늘어난다. 우리 나이가 나이인지라 갈수록 이런 소식이 더 자주 들려올 게다, 우리 부고가 알려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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