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28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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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고치다 보니 내가 생각한 것 보다 집 골격이 훨씬 튼튼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은 지은 지 몇 년 되었다고 집을 저렇게 쉽사리 때려 부수고 새 집을 짓는 것일까? 우리가 46년간 살아온 빵기네집이 헐리지 않고, 저 괴물 같은 아파트 상자 속으로 편입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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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를 마쳐 예쁘게 화장한 '빵기네집' 일층 마루와 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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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도착한 최권사님(차사장네 도우미 아저씨)은 집안 곳곳을 돌며 행여 바람구멍이 난 곳을 모조리 찾아 때운다. 그분은 작은아들이 어렵게 마련해준, 20평도 안 되는 작은 하꼬방’(본인이 부르는 대로)에서 아줌마랑 살며 게임 중독인 큰아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돌본단다. 귀가 안 들려 좀 어눌한 행동에 속이 터져도, 차사창은 그의 선한 심성과 성실한 태도에 말없이 그를 거두고 일자리에 데려온다


차사장도 40여년 전 부모님 대에서부터 함께 살아온 우이동 단독주택(4,19탑 근처)에 산다. "사모님댁이나 우리나 돈하고는 인연이 머네요."라며 그래도 인연을 귀히 여기는 면면은 서울에서도 '우이동 사는 촌사람들'만 갖는 귀한 가치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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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을 걷어내고 콘크리트 한 다음 일곱번 칠하는 테라스 방수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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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보완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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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엔가 고쳐주러 갔더니, 먼 옛날 친정 어머니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면서 만든 졸업작품 가구를 궁상맞다고 버리느라 다리부터 때려부수고 있는 거예요. 깜짝 놀라 얼른 얻어다 집에다 고가구로 모셔 두었어요. 그런데 제 아내가 '남 쓰던 것 구질스럽다.'며 호시탐탐 내버릴 궁릴 해요전통을 익힌 목수가 얼마나 정성스런 손길로 만들었는지 보기에도 귀해 보이는데, 주부를 눈에는 그게 안 보이나 봐요." 라며 한탄한다.


우리집 3층 다락에 놓여 있는 '정리장'도 차사장이 수리하던 집에서 주워다 준 것이고, 2층 서재 천정에서 30년 간 매달려 우릴 비춰준 전등(이번에 새것으로 갈았다)도 차사장이 공사하던 집에서 내버리는 것을 얻어다 달아준 거다. 어쩌면 우리도 차사장도 이처럼 가치관이 같아 긴긴 세월 인연을 이어오는 것 같다.


이층 테라스를 방수처리 하는데 차사장 손으로 일곱 번의 공정을 거쳐야 한단다. 어제 여섯 번째로 고무 같은 회색 페인트를 집둘레 테라스에 앞 뒤 옆으로 두껍게 펴 바른다. 그게 마르는데 3일은 걸린다며, '잠자리처럼 페인트에 달라 붙지 않으려면 절대 우리 방에서 테라스로 나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떠났다.


이렇게 힘든 일이면 사장이 나서서 직접 하니 절대 돈은 못 벌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긍지는 쌓여간다. 그를 지켜보면 남의 집 수리도 '내 집 고치듯' 하고, '이건 내 작품이에요.'라고 자긍심을 보인. 저런 장인을 만났으니 우린 참 운수 좋다. 최권사님은 손을 갈퀴 삼아 집 전체를 긁어가며 깔끔하게 청소해서 뒷처리한다. 정신이 좀 희미한들 어떠랴, 마음이 그 자리를 채우는데?


어제 오후에 한신대 김교수님이 방문했다. 7월에 빵기네 가족이 올 때까지 비어 있을 아래층을 석달 간 자기가 사용하겠다고 부탁한 터였다. 아파트에 살다보면 산과 숲이 보이고 숨통이 트이는 낡은 집에 둥지처럼 힘든 몸을 누이고도 싶을 게다. 우리 집이 영혼을 위로할 땅과 풀과 꽃으로 되어 있고, 필요한 사람이 함께 나눌 수 있어 좋다. 세상에 '오롯이 내 것'이라는 건 없다, 잠시 빌려 쓰다 가는 것이지...


지호아빠는 오늘부터 자기가 남쪽으로 3박4일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마지막 페인트는 30, 31일에 페인트 공이 올 테니 나더러 일을 시키란다. 예전에도 우리집을 칠한 사람이란다. 그런데 페인트공이 나한테 전화해서 '차사장이 없어서' 자기도 담 주 초에나 오겠다고 통보해 왔다. 나로서는 3층 다락도 정리해야 하니 차라리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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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머나먼 '강남'에서 귀한 친구가 우리집까지 찾아왔다. 4.19탑 앞에서 밥을 먹고 4.19 국립묘지를 산책하려는 생각에 해마다 이때면 함께한 친구 한목사도 초대했다. 방스텔라는 아마 내가 아니면 강북엘 올 일이 없는 사람이라, 4 19탑도 처음이란다. 짧은 시간이었어도 반가웠고 다시 만날 마음의 약속을 하고 헤어져 각자는 떠나온 자리로 돌아가 더욱더 열심히 살리라. 그곳에 누운 영령들을 생각할수록, 친일파가 아니라 아예 일본인 행세를 하는 정치가들과 그런 짓을 '통 큰 외교'라고 칭송하는 언론 때문에 그곳에 핏빛으로 핀 진달래가 유난히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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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우이동에서 나무공방을 하는 바오로씨가 왔다. 일층 마루에 있는 식탁과 의자, 겉으로는 말짱하지만 속병이 깊은 기역자 의자를 해체해서 고치겠다면서 실어갔다.  똑같은 모양의 의자를 주문했더니 옛날, 세상을 떠난 내 친구의 유물이라니 가능한 한 손을 보아 그 느낌을 간직하게 해 주겠단다


웃는 소리가 은방울처럼 울리고 남편에게도 손님들에게도 더없이 친절하던 '은호엄마'가 주고 간 식탁, 그렇게 우리가 20년 넘게 사용해온 가구다. 그 여인에게 사랑 받았 듯이 우리에게도 사랑 받아온 가구다. 집에도 가구에도 집기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이 '빵기네집' 사는 사람들의 신조다.


바오로씨는 더구나 지리산 휴천재 산 너머 '미천마을'이 고향이고, 휴천초등학교(폐교되어 버려져 있다) 졸업생이라니 한결 더 가깝고 고마운 마음이다. 세상에는 평생 한 번도 만나고 싶지 않은 종락도 있지만, 대부분 만나서 반갑고 알수록 좋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세상은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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