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0일 일요일,


금요일. 7월에 서울에 왔을 때 침대에 깔아놓고 간 여름 누비이불이 선뜻하여 밤새 웅크리고 잤다. 춥고 불안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공주택개발을 외치고 추진하는 곳인데 현수막 하나도 없이 동네는 아주 평화로울 정도로 고요하다. 납작한 땅집들을 겹쳐 쌓아 올리면 떼돈을 버는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줄 아는 동네사람들은 왜 찬성을 해서 빨리 집을 짓게 하지 미적거리느냐?’고 구체적으로 나를 원망한다. 나는 사람은 무릇 땅을 밟고 살아야 되고 납작한 단독주택이 좋지 하늘에 비싼 집에  대롱대롱 매달려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대꾸했다. 대다수 주민이 찬성한다면야 따라는 가겠지만, 40년 넘게 정 들인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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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좀 다르지만 서울에서도 지리산에서 만큼 바쁜 하루하루다. 며칠 안에 그동안 밀린 일이나 만남을 한꺼번에 끝마치려는 욕심 때문이리라. 8일 오전에는 이주여성인권센터이사회에 갔다멀리 살거나 사정이 있는 이사들은 비대면 줌 영상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펜데믹 상황에서도 이주여성들은 있고 그들이 당면하는 어려움은 더 커지고, 그로 인해 센터의 할 일은 더 많아지는데, 박봉을 받으면서도 변함없이 열심히 일하는 담당자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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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오전에 도봉면허시험장에 가서 80세 노인답게 안전교육을 2시간 받고 3년짜리 운전면허증을 받아왔다. 전날 나에게도 5년밖에 연장해 주지 않았다. 남해 형부 말대로, 첨엔 사람 멀쩡한데 괜히들 귀찮게 구는군.'하고 화가 났지만, 막상 교육장에 걸음도 힘겨워 보이는 사람들이 면허증을 연장하겠다는 욕심을 보니 정부 조처에 수긍이 가더라는데....


이탈리아 트렌토의 로세타 아줌마가 92세까지 운전하는 걸 보고 100세까지 하시라고 추켜드린 적 있는데, 몇 달 후에 갑장 친구가 인사 사고 내는 걸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서 70년 넘게 잡아온 운전대를 접었노라고 알려온 적도 있다(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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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에는 도올 선생의 부탁으로 보스코는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 대행진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농촌살리기 운동 발대식에 참석하였다. 도올 선생이 뭘 하면 늘 거창한 제목이 붙곤 한다. '천지개벽'에는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야 할 텐데 백낙청 선생이나 보스코 같은 어르신들보다 행사장에는 정우성 같은 젊은이들이 더 많더라니 무슨 일인가 되긴 될 성싶다. 가톨릭 측에서도 농촌살리기운동 책임 사제, 정한길 가톨릭농민회 회장, 그리고 내가 10여년 공동대표로 활동하던 '우리밀살리기운동' 책임자도 발기인으로 참석했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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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에는 캐나다에서 3년 만에 귀국한 문교수님이 우리를 방문했다. 종신부제로서의 사목활동에서도 은퇴했다니 이제 자유로운 삶과 활동만 남은 듯하다. ‘심심한 천국캐나다보다 재밌는 지옥한국이 더 좋더라는 얘기도 들려준다. 나 같으면 '재밌는 지옥'을 선호하겠지만 보스코 같으면 '심심한 천당'을 택할 게다. 우리 서울집의 커다란 냉장고와 커다란 세탁기도 그분이 교수직을 정년퇴직하고 캐나다로 귀국하면서 우리에게 물려준 선물이다.


손님이 가고 5시에는 일산 백석동을 찾아갔다. 내 일기 팬 한 분이 엊그제 일기 사진에서 '가냘픈 아녀자'(? 동네에서는 '철의 여인'이라고도 불리는) 전순란이 20리터들이 소독약통을 메고 채마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해서 바퀴가 달리고 모터를 충전시켜 돌리는 '현대식' 소독약통을 선물하겠다 해서 서둘러 달려간 길이다. 이젠 보스코나 나나 어깨가 무너내릴 무거운 소득약통을 멜 일은 사라졌으니 그분에게 고맙다. 가까이에 보스코의 동창 종수씨가 살고 있어 그 부부를 만나 저녁을 먹고 환담을 나누다 하루를 꽉 채우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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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9. 석 달 만에 본당미사(어린이 미사)에 갔다. 차례가 늦어 대교리실로 들어가 스크린 미사를 드렸다. 어린이들도 학생들도 안 보이는 어린이 미사에 서로 거리를 둔 어른들만 뭔가 마음에 안 차는 미사였다. 스위스의 빵기는 위드-코로나가 시행되어 경기장 가서 마스크를 벗고 고함 지르는 사진을 보내왔는데, ‘이래도 돼나?’ 확신이 안 서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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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엔 옥련씨가 찾아와서 함께 식사를 했고, 오후에는 바오로 수도회 디모테오 수사님이 내년 관구 피정에 보스코의 강연을 부탁하러 오셨다. 아직도 보스코가 필요한 역할이 있다니 다행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는 뉴스가 반갑다. 되지도 않을 일에 나서서 전혀 신사 답지 않은 면모를 보인 이낙연 후보는 깨끗이 승복하고 같은 진보세력을 제발 그만 좀 흔들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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