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5일 목요일, 맑은 가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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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와 버림받은 이를 기억하시고, 새날이 그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위로와 기쁨이 되게 하소서.” 오늘 성무일도 아침기도(청원기도)에 나오는 한 구절. 누구에게는 하루를 버티는 일이 너무 버거워 저녁에 눈을 감으며 이 눈을 다시는 뜨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바치는 사람도 있으려니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코로나 사태의 물질적 가난과 더불어 병고로 외로움으로 맘고생하는 이들의 하루하루를 생각한다.


드물댁이 추석 연휴부터 면에서 시행하는 공공근로를 쉬자, '언제 다시 시작하는가' 내게 자주 물었다. '다음달, 105일 화요일이 다시 일 가는 날'이라고 그 집 달력에 표시까지 해 주었지만 글자도 날짜개념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그 날을 꼭 일러줄 께 걱정 말라며 매일 저녁 산보에서 돌아오며 그미 집에 들러 들여다보고(불을 환히 밝혀 놓고 기다린다) 손가락으로 날짜를 짚어주며 '세 밤 더 자고 일 가!'라고 했다. 매일 손가락을 펴서 접으면서 일러주어도 어제도 모르겠는지 '몇 밤 더 자야 해?' 물었다. '하룻밤 더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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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05! 오늘부터 일을 하러 갔다. 그 일을 하며 주는 돈이 한 달에 40여 만원이 되는데, 그 일을 하러 나가는 노인들 대부분이 그것으로 생활을 하니 거기에 노인연금을 보태면, 이재명 후보가 말하는 '기본소득'이 준비되는 중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지구상의 모든 근로자가 '비정규직'으로 전환될 터이므로, 성인 전부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자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경제정의다. 


12시에 호천이에게 택배를 보내러 마천에 가려고 마을길을 빠져나가는데, 일터에서 돌아오는 드물댁을 만났다. 더위에 얼굴은 빨갛고 지치고 허기진 모습. 마천 가는 길이니 타라 하고, 마천 가서는 짜장면 먹겠느냐 물으니 '사주면 먹제' 한다. 지난번엔 볶음밥을 먹더니 왜 짜장면을 먹냐니까 양은 적고 비싸서 돈이 아깝더란다. 그럴 줄 알았으면 곱빼기를 시켜줄 걸. 내 짜장면 그릇에서 반을 덜어 주자 허기를 면한 듯하다시골 할매들은 짜장면 한 그릇도 귀하고 맛나게 생각한다. 우리 초등학교 때 수준이다. 요즘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아이들은 우리가 졸업식 때나 한 그릇 얻어먹던 짜장면 한 그릇의 귀함과 고마움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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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차 안에서 본 그미의 염색한 머리가 끝만 검고 너무 희다. 지난번 응급실을 다녀온 후 갑자기 더 늙고 쇠잔해 보여 막일을 가도 딴 사람들 눈에 띌 것 같아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해서 염색을 해 주었다. 나랑 앉아서 부추를 다듬고 마늘을 까는 그미의 얼굴은 염색 하나로 할머니에서 아짐으로 바뀌었다. 더 건강해 보여 내 기분도 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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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송기인 신부님이 전화를 하셔서 “12시에 간다. 밥해라!” 하셨다. 보스코보다 여섯 살 많지만 아직도 건강하고 기품 있는 모습이 유럽의 신사같아 보기에 좋았다. 평소처럼 좋아하시는 파스타, 민어에 감자 화이트 소스를 넣은 오븐 구이, 휴천재산 야채 샐러드를 해 드렸다


나도 누구에게 나 간다. 밥해라!’ 할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가장 확실하게 두 명이 있다. 우리 순둥이와 집밥의 대명사 우리 큰 딸 이엘리. 밥하는 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존경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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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휴천재 텃밭 호박 덩굴 밑에 숨어서 커가는 호박을 찾아내는 재미가 솔솔하다. 잎으로 가려져 숨어서 크니까 보스코랑 둘이서 찾아다녀야 안 놓친다. 높다란 매실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애는 감채로 따야 한다. 감나무에서도 감은 다 꼭지 채 빠져 단 한 개도 안 남기고 떨어지고 호박이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열려 집주인에게 효도하는 중이다스위스의 빵기는 손주들 사진을 보내 우리를 기쁘게 하는 효도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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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작은 손주 시우가 애들과 캠핑 가서 오징어게임비슷한 놀이를 하는 사진들을 보내왔다. 과외 공부로 성적 타령으로 쫓기지 않고 자유롭게 학교를 다니고 선생님들도 옹야옹야아이들을 대하며 교육에서도 여유있는 사회에서 자라는 두 손주의 삶의 질이 고맙다. 빵기와 빵고도 어린 시절 6년을 이탈리아에서 그렇게 지냈으니 그것도 행운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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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맞는 급우에게는 축하케이크도 마련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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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도 로사리오 산보를 하고 돌아와 테라스에 나가 가을 별자리를 한참이나 보았다. 핸폰을 별에 맞추면 별자리의 신화가 그림으로 그려지는 앱이 있어 좋다. 캄캄한 밤, 하늘에 별, 네가 있어 밤이 기다려지듯, 대선을 앞두고 정책은 없이 보수언론의 인신공격으로만 지새는 나날이 힘들고 시끄러운 세상에도,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별처럼 가슴에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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