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4일 성목요일. 맑음


목요일에 제네바에서 며느리와 두 손주가 온다니 준비하는 마음이 앞서 더 바빴다. 3년 전만 해도 이층 서재에 소파로 쓰는 접이식 침대를 펴서 두 손주를 재웠는데, 이제는 키가 170도 넘는 어엿한 총각이니 각자가 침대와 기거할 공간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좀 미안했지만 아래층 집사 레아에게 이틀간만 방을 좀 빌리자고 했다. 다행히 사진작가는 요즘 설악산으로 사진을 찍으러 가서 방을 비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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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주들이 얼마나 컸으며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고 기대가 컸다. 이엘리처럼 하루 종일 손녀 손주를 끼고 살다 보면 내가 손주인지 손주가 난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이 하나가 되어 있겠지만, 중딩 3, 초딩 6의 사내놈들이란 럭비공 같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해외동포라는 이중의 수식이 붙어 나 역시 손주들을 만나는 게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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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신부가  어제 부고를 알려 왔다. 보스코 중1때  한국에 오셔서 지도수사’(아시스텐테: 아이들과 24시간 항상 함께 지내는교육자)로 시작하여 평생 그의 스승이셨던 노숭피(Robert Falk)신부님이 91세로 소천하셨단다. 1956년부터 무려 66년을 한국에서 선교사로 살아오셨다


노신부님 팔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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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네 온가족을 맞아주시던 노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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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 신부님들 모두와 마산교구 지인들이 부제 서품을 앞둔 보스코가 사제의 길로 가기를 바랐을 때, 노신부님만은 너에게는 우리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결혼하라고 충고하셨고, 지난 50년간 나를 보실 적마다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나니야, 고맙다. 보스코를 저렇게나 행복하게 해주어서.”라고 하셨다. 당신 형님도 예수회 신학생이었다가 결혼하여 의사가 되었는데 우리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늘 그 형님 생각이 난다는 말씀도 자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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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특별한 혜안을 갖고 만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시는 분이었고, 당신 어머니를 극진히 사랑하셨는데, 때때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자리보전하고 누우시는 날은 이역만리 미국에 계신 어머니가 집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는 천리안도 갖고 계셨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신 만큼 마음 아프거나 슬픈 사람은 지나쳐 가질 못하셨다. 그러다 보니 그분 계시는 곳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그분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고 희망을 안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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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셨던 그 따뜻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이승에서는 다시 못 보리라는 생각에 많이 슬프지만 치매를 지고 인생 마지막 언덕을 힘들게 오르던 처지가 보는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던 터였으므로 성주간 성수요일에 하느님 품으로 가셔서 우리를 내려다 보시며 나니, 여기 아주 좋아요. 내가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 놓고 기쁘게 만나요.”라고 하시는 말씀이 귓전에 돌아 연도를 바치며 나도 기쁘게 보내드린다. 보스코가 낙성대 우정치과에 가서 앞니를 씌우고 그 길로 살레시오 관구관에 가서 문상과 연도를 드리고 왔다. 성주간에는 장례미사를 못 드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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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저녁 630분이면 줌으로 이여인터 독서모임을 갖곤 한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토론을 하고 거기서 모아진 결과를 줌 상으로 서로 이야기하며 결론을 내린다. 젊은 사람들은 대학 리포트 쓰듯이 요약본을 올리고 사회를 진행하는데 나는 책을 읽고 난 후의 내 결론만 얘기하다 보니 뭔가 나도 부담스러운 것 같고 그들에게도 짐이 되지 않나 싶어 차라리 혼자 읽는 게 낫지 않나 싶지만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를 포기해서는 안될 듯해서 망설이는 중이다.

오늘 오전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한 며느리와 두 손주 시아 시우가 공항버스로 노원까지 와서 그리로 마중 나갔다. 11시에 귀국 코로나 검사를 받기로 도봉구민회관으로 찾아갔다. 키가 훌쩍 큰 시아는 음성도 변하고 수염도 듬성듬성 나서 총각 티가 완연하고, 아직도 엄마 품을 자꾸 파고드는 작은 놈은 어렸을 적 빵고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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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손주에게 '한국에서의 첫 점심'을 사주겠다고 나온 '천주의 모친' 옥련씨는 소울메이트인 아들이 군대에 가자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는 하소연. 군대 월급으로는 적금을 들고 엄마한테 가져간 카드로 필요한 걸 긁고 있는데, 아이가 어디서 무엇으로 돈을 썼구나! 감시할 수 있어서 좋단다! 아아, 배꼽으로 이어진 모자간 인연이 얼마나 간절한지는 아비된 남성은 절대절대 모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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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나도 오늘 하루를 구민회관으로, 중국집으로, 손주들과 며느리 안경 맞추러 덕성여대 구내안경점으로, 발뒷꿈치 아프다는 시우 땜에 광산사거리 정형외과로, 물건 사러 시장으로 애들과 헤매고 다녔지만 몸이 곤하기보다 잘 자라준 모습 하나하나에 감탄만 연발이다. 저녁식탁에서 등갈비 김치찜에 잘 익은 깎두기로 밥 두 그릇을 비우는 큰 손주가 어쩔 수 없이 한국 놈으로 자란 게 대견하고 의사 선생님에게 우리말 잘 한다고 칭찬 받는 작은 손주가 자랑스럽기만 했다


우리 집에 와서 손주를 둘씩이나 낳아주고 저렇게 의젓이 키워주는 며느리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저녁기도를 해주고 두 사내놈에게서 굿나잇 뽀뽀를 받고 이층 계단을 오르는 행복이 천국으로 직행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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