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13일 일요일. 드디어 !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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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몇 달 만에 오는 빈가? 행여 곱게 핀 매화 꽃잎 떨어질세라, 갓 피어난 고 작고 예쁜 꽃잎을 쓰다듬듯이 얌전히도 내린다. 종일 내린다. 창문을 열고 비냄새를 맡으며 손을 뻗어 빗물을 받는다. 그 싱그럽고 거침없는 도닥임이 잠자던 꽃몽오리들의 늦잠을 흔들어 깨운다. 휴천재 마당 화단의 수선화 밭은 노란 꽃잎을 펼치려는 참이고 크로커스는 올해도 남몰래 숨어 피겠다. 무스카리도 때가 됐나 살피러 고개를 들어 올리는 중. 봄비는 모든 생명을 흙 속에서 깨워 올린다.


비가 오면 잉구씨가 곧바로 텃밭을 갈아 준다고 했는데 퇴비는 아직도 초록 비닐을 쓴 채로 밭에 널브러져 있었다. 20Kg짜리 30포를 밭 전체에 까는 일 쯤이야 평소라면 별것 아니지만 코르나와 동거 중인 지금은 좀 난감했다. 보스코가 해줬으면 좋으련만 불끈 힘을 쓰면 코피가 또 터질지 모르니 힘쓰는 일은 삼가라는 의사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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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거리식사: 자발적 격리로 부부간에 식탁 양끝에 띄어앉아 점심을 먹는 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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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3월 중순에는 감자를 심어야 한다. 내가 일하는 걸 알면 자기가 하겠다고 따라 나설게 뻔해 어제 오후 보스코 모르게 살금살금 식당채로 빠져나와 두어 시간 퇴비 까는 일을 했다. 어지럽고 지쳤지만 코로나균도 숙주 따라 그만큼 지치길 바랬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한 후의 기분은 후회할 게 없다는 후련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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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매해 음력 2월 초하루 당산나무 아래서 영등할매제사를 지낸다당산나무에 빨강 노랑 파랑 하양 색깔로 치장을 한다양지에서 먼저 큰 쑥을 뜯어 돌절구에 찹쌀 고두밥과 쿵덕쿵 빻아서 찰떡을 만들고시루떡도 하고우동댁네서 키운 돼지도 잡아 돼지 머리도 올리고 수육은 참석한 사람 모두가 나누는 동네 잔치다그런데 재작년 봄 코로나가 시작하며 그 잔치는 간 데 없고 동네 사람들의 마음은 서로 멀리멀리 떨어져 버렸다.


드물댁이 들려준 얘기로는, 제동댁과 산책길에 만나 도정에 사는 동무를 찾아갔다. 대문 앞에서 친구를 부르니 창문만 빼꼼히 열고 내다 보며 "울타리 안에도 들어오지 말고 어여 가!" 하더란다. 도정은 옛날에 닥나무가 많아 닥종이를 만들었단다. 좋은 한지를 팔아 경제적으로 유복하여 자식들 공부에도 공을 들였단다. 공부한 지식인들이어서 반일 민족의식이 강했고 그러다 보니 좌익도 간혹 있었단다그 때문에 인공 때 무서운 일을 많이 당하고 똑똑하고 성한 자식은 다 잡혀가 생사를 모르고, 그 좋던 집들은 모두 불살라져 동네가 거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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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코로나라는 극한 상황이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인공시대와 오버랩 되면서 인심은 몹시 흉흉해졌다. '동네 이장 마누래가 요양원에 일 다니느라 버스 타고 통근해서 코로나(오미크론) 걸렸다'고 확인되자 아짐들이 아예 그 집 앞으로도 안 다니고 빙 돌아 다니며, 드물댁한테도 '공공근로 나다니며 면사무소까지 버스타고 다닌다'고 타박하면서 '마을회관에 몬 오구로' 한단다


어느 새 이 나라에서 나병처럼 '천형(天刑)'으로 낙인되어 일단 그 병에 걸렸다 하면, 더구나 나처럼 '외지것'이라는 죄목까지 겹치면 한 일년쯤은 말도 못 섞을 형편이 될 게다. 과연 잘 넘어갈지 두고 봐야겠다. 셋째 딸 귀요미가 우리가 걱정되어 번개팅으로 다녀갔다. 자기들도 모조리 식구들이 앓았거나 앓고 있는데도 나를 염려해주는 네 딸의 극진한 정성 때문에라도 빨리 털고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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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인데 미사도 공소예절도 못 가 대구평화방송에서 'TV미사'를 드렸다. 대구 평리성당 보좌 김안토니오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했다. 젊은 사제인데 얼마나 정성스럽게 미사를 올리는지 우리도 따라 거룩해진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상처 입은 교우들을 다독이는 말씀은 내게도 필요한 메시지였다


선거에 졌다고 "나라가 망했다"는 한탄, 우크라 사태로 "전세계가 핵전쟁으로 다 죽는다"는 공포는 우리 삶에 도움이 안 된단다. 한탄 절망, 분열과 증오를 조장하는 말이나 심경은 악마가 우리 속에 스며드는 유혹이란다. 젊은 사제가 "우리나라 그렇게 쉽게 안 망해요."라든가 "이 세상 하느님의 허락 없이는 쉽게 끝나지 않아요."라고 확신을 갖고 매듭짓는 선포가 상처입은 우리의 마음에 치유의 손길이 된다.


보스코의 사순제2주일 묵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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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의 강론을 들을 때,  아무리 젊은 사제의 강론이라도, 심지어 우리 작은아들이 신학을 공부한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가정미사를 드리면서 들려주는 강론까지도, '주님의 말씀이 "직접" 선포되고 있다'는 권위를 우리가 느끼는 일은 크나큰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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