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8일 일요일. 맑음


아침에 일어나보니 서리가 흠뻑 내렸다. 어제까지 텃밭에서 싱싱하던 고추, 상추, 쑥갓, 아욱, 근대, 루꼴라, 파슬리 잎푸른 채소들은 형체를 잃고 무너내렸다. 그 참담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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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만난 가톨릭농민회 정한길 회장이 우리밀살리기 운동 30년사를 펴내는데 한번 읽고 교정을 해달라고 원고를 보내 주었다. 나 역시 젊은 날 20여년 심혈을 기울인 운동으로 소비자들에게 우리밀 소비를 격려하려고 제빵사, 제과사, 양식조리사,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서 우리밀 요리를 홍보하는 방송에 출연하고 요청이 오면 전국을 돌며 우리밀요리 강연에 정성을 쏟았다.


그때 함께했던 분들, 열정을 쏟았던 만큼 그 사업에서 경제적인 피해를 입거나 정신적 피해를 입고 돌아선 이들, 그 세월 동안 돌아가신 고영구, 박재일, 백남기. 박우갑, 남중현 님 등을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너무 귀한 기억이어서 한 자 한 자 정성껏 읽고 마음으로 다시 쓰는 중이다.


어느 핸가 '광나루 밀밭 밟기': 그리운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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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밀 살리기 운동본부가 창립한 지 꼭 30년 된 날이다. 19911128일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김수환 추기경님과 1549명의 발기인 중 400여명이 참석하여 '우리밀 살리기 운동 창립 대회'가 열렸다. 창립대회에서 김승오(종교계) 박재일 (협동조합) 이응주(생산자) 김동희(학계) 전순란(소비자) 5명의 공동대표와 실무책임자로 정성헌이 선출되었다. “주름살 깊은 농촌에 새로운 희망을!” “공해 식탁을 생명의 밥상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이 날 행사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은 벼랑 끝에 몰려있는 농업을 살려내기 위한 이 운동의 의미를 일깨워주셨다.


모두 힘들었지만 나름 열과 성을 다 했다. 그러나 생산 조절 실패,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못 따라간 상품과 유통의 미숙, 자금 부족으로 허덕이다 그만 19971MF를 맞아 부도 위기를 맞았다. 결국 농협중앙회에 유통을 넘기고 단지 운동단체로 내려앉고 말았다. 지난 30년을 뒤돌아보니 좋은 뜻과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후회와 실수도 많았다.


제일 열정적으로 회원을 모집하려 전국을 돌며 고생하셨고 참여하고 투자한 분들에게 약속을 못 지킨 아픔이 컸기에 그 실패에서 오는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가장 무겁게 입으신 분이 전국농민회 지도사제 소임을 맡은 김승오 신부님이었다. 깊이 고개 숙여 김신부님께 사과드린다. 독립된 사업체라도 우리와 함께 했던 제분 공장, 가공 공장, 지역의 사업자들이 금융 구제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상황도 크나큰 아픔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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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운동 시작부터 우리를 믿어 주시고, 이 일을 위해 세계 최초로, 아마 유일한 사례로 고위 성직자 광고 모델’로 나서주셨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화하여 우리밀부도를 막고 구제하도록 요청하셨고, 우리밀 운동을 아예 폐지 시킬 작정으로 당신을 찾아온 농림부 장관에게 “나는 숫자에 관한 것은 잘 모르겠고 우리밀이 살면 그만큼 우리땅이 살지 않겠습니까?”라고 설득하여 우리밀최종 부도를 막으려 끝까지 힘써 주신 김수환 추기경님께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그분은 정말 우리 추기경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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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심순화 화백이 내가 김치를 해보낸 일을 패북에 올렸다. 참 순수하고 계산을 모르는 예술가다. 내력은 이렇다. 2006년 보스코가 로마에 공직으로 있을 때 한국 교회에 (교황 선출권도 있는)추기경 한 분을 모시느라 무던히 외교적 노력을 하였고 그 결과 추기경이 한 분이 더 나왔다. 추기경 서임이 있을 적에 대사관과 로마 교민들은 로마한인신학원에서 한국에서 온 하객 700여 명에게 큰 잔치를 차려드렸다


대사관 직원들은 공무원이 교회 일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볼멘 소리도 나오기에, 그 잔치 일로 고맙다고 치하 하시는 추기경님에게, 대사관 관저에 걸린 모든 그림이 프린트물이고 주재국 고위성직자들이 부단히 방문하는 관저식당에 놓인 병풍이 찢어져 있어 품위에 안 맞으니 (도처에서 기증 받는) 그림 한 점을 마련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내가 부탁했다. 그러나 그분은 쓰고 있던 주케토(빵모자) 하나를 벗어주고 가는 것으로 답례를 마쳤다. (교황이나 주교의 직무 수행을 두고 교회의 사회복음을 펴느냐 침묵하느냐로 성직자의 업적을 평가하는 보스코는, 공직을 퇴임하고 귀국한 뒤 이 추기경을 두 번이나 일간지 지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2015년에 우리가 방문한 대사관저에 심순화 화백의 '성가정'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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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심순화 화백을 만난 기회에 대사관저 식당에 예술작품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선선히 대답하고 150호짜리 한국의 성가정을 그려 기증해주었다. 그때 동시에 교황께 드린 그림과 이 주교황청 한국대사관저에 걸린 그림 두 폭을 그리느라 심화백은 일년을 다 보냈다고 한다. 그림의 운송도 독지가 교우가 감당해주었다. 화가의 일년을 이렇게 희생해준 심화백에게 내가 하는 답례라곤 고작 김치를 담가 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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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로마에서 가까이 지낸 요안나를 만나 대구에 가서 황수녀님 병문안을 했다. 수녀님도 대사관 행사마다 대규모 꽃꽂이를 도와주신 은인이시다. 내가 겪은 두 추기경의 생판 다른 사례에서 깨달았지만, 수도자나 성직자, 교우까지도 너그러움과 넉넉함이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는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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