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6일 금요일, 맑음


55일은 어린이날, 5월 8일은 어버이날. 두 날 사이에 낀 우리 아들들은 고달프겠다. 다행히 멀리들 살아 매스컴 영향을 안 받고 신경을 덜 써도 되니 그 점은 좋다. 하기야 코로나로 세상이 하도 많이 바뀌어 전처럼 무슨 날이라고 찾아다니고 몰려 다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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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어버이날이 가까워지니 내 가슴을 커다란 돌덩이로 짓누르는 이 아릿한 아픔. 올해 101세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늘 누워있거나, 요양원 간호사들이 식사하실 때 잠깐 앉혀드리는 게 전부다


실버타운에서 20년을 지낸 엄마의 살림을 마지막 정리하고 같은 건물 안 요양병원으로 옮겨드리던 던 날! 엄마가 선물 받은 그 많은 양말은 내가 챙겨오면서 여름 것 하나, 겨울 것 하나 딱 두 켤레만 엄마에게 놓아두고 왔다 그것마저 신을 시간이 없는 엄마는 늘 맨발이시다.


오늘 그 새 양말을 신으며 살펴 보니 내 왼발 가운데 발톱이 유난히 오른쪽으로 삐뚤어져 있다. ‘어라? 엄마와 똑같네!’ “엄마, 왜 가운데 발톱은 휘었어?”라고 내가 물으면 니 외할머니도 똑같으셔!”라고 대답하셨는데... 말하자면 외할머니, 엄마 그리고 맏딸인 나까지 3대 여자가 왼발 가운데 발톱이 휘어져 닮았다! 이렇게 발가락까지 여인으로서의 무슨 숙명처럼 닮게 만드시는 생명의 섭리가 참으로 오묘하고 섬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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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자식들 얼굴도 못 보고 하루에 '뉴캐어' 깡통 하나도 못다 드시고 링거로 연명하는 엄마의 여생을 생각한다. 고맙게도 엄마에겐 여러 해 전부터 착한 치매가 와서 당신이 비참하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하시고 누구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표정이나 말이 전혀 없다. 하기야 20여년 실버타운 생활에서 엄마의 말씀은 언제나 그저 됐다!” “고맙다!”로 마무리해오셨다. (같은 시설에 계시는 친척이 매사에, 모든 직원에게, 모든 서비스에 불만을 표하고 항의하던 것과 퍽 대조적이었다, 요즘은 기운이 쇠하여 그분도 그마저도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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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가 옛적에 간호과장으로 근무하던 병원에서 청소하던 아줌마를 신앙을 갖도록 이끌어드린 일이 있었단다. 초등학교도 못 나와 문맹이던 아줌마에게 성경 필사를 시켜 한글을 깨우치게 하고 가톨릭에 입교를 시키고 가르멜 제3회에 가입하여 20년 넘게 활동하도록 도와드렸다. 그런데 바로 그분에게 최근 치매가 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아이처럼 되었다


도미니카 얼굴은 알아보기에 두 사람이 함께 했던 곳들을 돌며 옛날을 일깨워 줬는데 더러는 기억하지만 많은 사건, 많은 장소는 기억에서 사라졌다다만 '착한 치매'여서 옆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신통하게도 자기한테 잘해 준 사람은 기억하는데 예컨데 근무처에서 자기를 엄청 괴롭혔던 병원장은 기억도 못하더란다. 그일 또한 그미의 영혼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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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같이 다니던 성당에 들어서자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손을 하고서 얼마나 정성껏 기도를 하던지! 곁에 오신 수녀님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성체 앞에서 예쁜 노래 좀 주님께 들려드려요!”라는 수녀님 말에 서슴없이 아이처럼 춤을 추며 곱디고운 목소리로 자기가 부르던 유행가 1번지를 부르더란다산너울 두둥실 홀로 가는 저 구름아/ 너는 알리라 내 마음을/ 부평초 같은 마음을...”


그 모습을 보던 도메니카, 눈물이 왈칵 나오며 저 모습이 하느님 앞에 완성된 사람 모습이려니!” 했단다.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하시던 주님 말씀이 떠오르고, '그러고 보니 치매가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어쩌면 하느님의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인생 최후의 고비에, 남 보기에 가장 무능력하고 가장 초라하고, 자기로선 가장 허탈하고 가장 부끄러울 시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타인들의 보살핌에 자기를 맡기는 천진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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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요일. 바람은 조용하고 일주일 넘게 우중충하고 찬바람 불던 날씨와 달리 오랜만에 하늘이 쾌청하다. 산에 가기 딱 좋은 날! 도미니카가 지난주에 황매산엘 다녀왔는데 금주가 절정일 듯하다며 도정 체칠리아 부부와 우리 부부더러 황매산엘 가자고 제안했다


얼마 동안 산행을 안 해서 일행이 모두 보스코의 심장을 걱정했는데 정작 본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선뜻 나선다. 주중이고 목요일인데도 주차장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줄지어 산을 오른다. 코로나로 너무 스트레스 받은 사람들이 더는 못 견디고 산으로 몰려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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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황매산을 갔다왔노라는 귀요미는 전화로 "대사님은 데크 있는 산밑에서 혼자 놀라고 하세요, 정상은 무리니 말리세요." 라고 당부한다. 두 해 전(2019.5.9) 미루가 '황매산 철쭉축제' 기간에 산청군의 위촉을 받아 산청 한방 약초 축제를 미리 홍보하는 꽃차부스를 책임지고 있어서 남해 형부네랑 이 꽃구경을 온 적 있었다.


황매산 철쭉도 절정이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을 비롯 사방이 산, 산 산.... 우리 국토의 70%가 산이라는 게 실감 난다. 가파른 정상을 오르내리고 황매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집에 와서 보니 오늘 15,000 보를 걸었다. 귀가하자마자 씻고서 단잠에 빠진 보스코를 보고선 걸을 수 있을 때 걸리고, 살아 있는 한 걸리고, 살리려면 걸려야겠다는 마음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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