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29일 목요일, 맑음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정말 재미없고 무뚝뚝한 남자라면 단연 경상도 남자를 꼽고 싶다. 특히 그 중에서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이 남자다. "나다." "뭐하노?" "28일 수요일에 간다." "밥해라!" 통화 끝! 그와 보스코의 인연은 60년 넘고 나와의 인연도 50년인데 여일한 그런 모습에 내가 오히려 적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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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바로 위에는 감자밭이 있고 바로 동쪽으로는 논이 있다. 감자밭에서 일하는 부부는 새소리 같은 음성의 남자가 시종일관 짜그락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반면 여자의 소리는 대답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 여자라면 차라리 아는?”(퇴근해서), “묵자!”(저녁상을 받고서), “자자!”(밤이 됐으니) 하루 세 마디로 그친다는 경상도 남자가 로망이려니.... 그 대신 옆 논에서 일하는 부부는 내내 마치 다정한 비둘기 구구거리는 소리처럼 도란거려 귀에 거슬리는 일이 없다. 그런데 그 사람 역시 갱상도 남자.


어제 점심에 그 '밥해라!님'이 오셨다. 차려드린 음식을 늘 맛있게 드시기에 여느 때처럼 조개 스파게티를 했다. 말 없이 식사를 하시다 성염이가 쓴 책을 쌓아 놓으면 제 키보다 크제?” “, 아마 그럴 꺼에요. 다 합치면 150권도 넘을 테니까요.” “잘해라!”(보스코에게). 보스코가 10대 고딩3 시절에 그분을 만났으니 올해 팔순의 보스코가 아직도 그분에게는 고딩3처럼 대견해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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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끝내자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며 얼굴 봤으니 됐다. 나 간다!” 어찌 보면 저렇게 멋없는 사람이 다 있나 싶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분의 무미건조함에 담긴 속정에 나도 익숙해졌다. 물이 맛이 없기에 맛이 있듯이 그분이 떠난 자리가 오래 동안 가득 찬 느낌을 주는 건 보스코에게 한결같이 쏟는 그분 우정의 무게다. 송기인 신부님 정말 특별한 분이다.

(보스코의 친구 예찬”)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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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옆에 있는 유영감님 위아래 논이 작년에 방천이 난 채 버려져 있어 올해 논농사는 포기했나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굴삭기 소리가 나기에 내려가 보았다. 작년에도 그 논에서 축대공사를 했던 송기사가 다시 축대를 쌓고 논두렁을 다지고 있다. 논두렁이 너무 넓다고 유영감이 하도 긁어 판 탓에 논에 물이 차자 뚝이 터져나가 작년 벼농사는 걸렀다


논을 손질하고 있으니 못자리는 어찌 됐나 걱정되어 내려가 보았다뜨거운 햇살에 흰 부직포 밑에서 볍씨가 고맙게도 싹을 틔우고 있다. 걸음이 비칠거려 걷기도 힘든 노인이 못자리는 어찌 만드셨나 알아보니 드물댁의 전언이 흥미롭다. ‘아들손자며느리 죄다 모여서, 며느린 모판에 흙을 깔고, 아들과 유영감은 볍씨를 펴고, 손주는 모판을 못자리에 날라다 놓더라.’


보스코가 며칠 전 유영감을 만나 나눴다는 대화.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벼농사는 지을꺼요?' '으응, 짓제. 그런데 그게 힘들어져. 나도 나이가 84. 교수님은 몇이나 됐제?' '80이요.' '아직 어리구먼. 나도 그땐 팔팔했어.' 80이나 84나 내 보기엔 도긴개긴인데... 아이들이 감기 한번 앓고 나서 새로 하는 짓 하나 늘 듯, 노인들은 한 철 한 철 지나면서 기가 갑자기 팍 꺾이거나 돌연 세상을 등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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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만도 한길가 동네 끝집에 혼자 사는 아저씨가 기척이 없어 동네 사람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쓰러져 있어 119에 실려 갔는데 아직도 인사불성이란다. ‘학교앞 개키우는집오토바이 아저씨도 동네 할매들한테 오늘도 안녕!’을 외치며 읍내 간다고 질주했는데 그 길로 천국행을 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고 엊그제 낯선 친척들이 그가 쓰던 물건을 모조리 담밖으로 꺼내서 내버림으로써 그가 살아온 흔적을 지웠다


정추기경의 서거로 한국가톨릭교회가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적에는 가톨릭신문에 추도문도 쓰던 보스코가 이번에는 어느 교회 언론의 취재를 고사하고 응하지 않았다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4017 


공직생활을 하면서 그분의 추기경 서임에 한 몫을 했으면서도 보스코로서는, 김추기경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활동에서처럼 교회의 사회교리를 펴는 역할에 평가의 비중을 두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정추기경의 언행을 두고 몇 해 전에 그가 언론을 통해 비판을 가한 일도 있었다. 그분의 가정사를 배경으로 하면 그분의 보수적 입장을 이해 못할 일도 아니어서 저녁기도에서 고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조문을 대신했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67708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17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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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늦은 오후야생 치커리가 나왔나 보러 강가에 갔다가 치커리는 못 보고 찔레꽃만 만났다어렵던 시절 찔레순을 한 웅큼 꺾어 벗겨 먹던 생각이 났는데 내가 하나 까서 보스코에게 건네주니 자기는 어려서도 매뿌리도 '삐비'도 이런 순도 꺾어 먹을 욕심이 없어 그저 남이 주면 몇 개 얻어먹곤 했단다이런 A와 저런 B가 만나 50년을 살고 있다니 그것도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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