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6일 목요일, 맑음


크기변환_IMG_3138.JPG


어제와 오늘 무려 이틀에 걸쳐 마늘과 생강을 깠다. 알타리무 김장을 하려는 참이다. 배추 김장은 다음 주말로 날짜를 잡았다. 다행히 드물댁이 동무를 해주며 우물가로, 정자 옆으로, 집안으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어제는 실파를 까고 마늘을 함께 깠고 오늘은 생강과 멸치를 깠다. 니약니약 이야기도 나누고 간식도 함께 하고 식사도 함께하니 지루하진 않지만 마늘이나 생강 알알이 건너뛰기를 하거나 적당히 깔 수가 없어 무엇을 해도 정성을 들여야 함은 어디에나 통용되는 삶의 이치다, 특히 여자들의 삶은  너무나 평범해서 그 평범한 정성은 하느님만 알아주시려니...


크기변환_20201125_142613(0).jpg


크기변환_20201126_173023.jpg


마스크도 안 쓰고 둘이 가까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더니 집배원 아저씨가 꼭 쓰세요.’ 라며 마스크를 하나씩 주고 간다. 마스크를 쓰니 보온도 되지만 뭔가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이번 코로나로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자영업을 하는 소상공인들인데, 우리 오드리 될뻔의 말을 빌리자면, 식당에서 음식 먹을 때 외에 마스크를 벗고 대화를 하다 발각되면, 손님은 범칙금이 10만원인데 반해 식당운영자는 1150만원, 2차엔 300만원 범칙금이란다.


크기변환_IMG_3219.JPG


크기변환_IMG_3223.JPG


"밥 먹다 술만 한잔 들어가면 기고만장해지는 우리나라 꼰대 남자들이 주인 말을 듣느냐고!" " ‘벌금 10만원 까짓것 낼께!’ 큰소리치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망가질 주인은 어쩌라고!" 생각만으로 내 머리꼭지도 뜨거워진다. 저녁이면 그 조그마한 체구에 주방일 만으로도 지쳐있을 우리 순둥이가 오늘은 또 어떤 못된 손님 때문에 상처 입지는 않는지 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나와 가까운 사이인 대학 후배의 어머님이 94세의 나이로 소천하셨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장으로 지내니 아무도 오시지 말라는 부고가 떴다. 요즘 나로서는 요양병원에 엄마를 두고 찾아뵙지도 못하고 전화로 간호사에게 엄마의 상황을 듣는 게 전부여서, 짙은 안개 속에 엄마를 버려 둔 듯 안타깝다. 두어 달 호스피스 병동에서 극심한 고통 속에 생을 마감해 가시면서도 후배의 어머님은 당신 형제간의 우애를 챙기시고, 자식들한테도 삶에서 거둘 것과 내려놓을 것을 자상히 일러주시더란다. 가신 어머님도 훌륭하셨겠지만 그분의 죽음을 통해 진정한 형제애와 참 인간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한 그 가족들이 돋보인다.


크기변환_IMG_3227.JPG


가까이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늘 마음이 쓰이는데 특히 정신과쪽 문제가 생긴 사람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일 게다. 요즘은 책을 읽어도 자꾸 그쪽 책을 찾아 읽게 된다. 마음속에 감추어진 깊은 상처와 두려움,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정신과의사의 의미 있는 여정, 프랑수아 를로르 저 정신과 의사의 콩트를 읽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세상엔 별별 종류의 마음 병이 다 있으며, 지금처럼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문제 없이 평범하게 산다는 게 더 힘든 것 같다.


크기변환_20201126_201932.jpg


우리 이웃동네에도 밤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한 여름에도 두껍고 긴 겨울 코트를 입고 다니는 이가 있다. 아마도 그에게는 밤에도 자기를 바라보는 남의 시선이 두렵고 한여름에도 인간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게 삭풍의 겨울처럼 추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 이해하고 내 일처럼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마음을 쓰다 보면, 그런 사람을 돌보는 가족의 고생도 내 아픔으로 느껴진다. 다정불심(多情佛心).


크기변환_20201125_082427.jpg

화초 따라 들어온 벌레도 집안 추위를 못 이겼는지...

크기변환_IMG_3215.JPG


크기변환_IMG_3207.JPG


날씨가 차가우니 별이나 달이 더 처연하게 빛난다. 산그림자가 아직 지기도 전에 일찍 떠오르는 반달이며, 별빛 아래 서성일 때 쓰린 가슴으로 희망도 없이 이 밤을 지키고 있는 내 친구를 떠올린다. 춥다. 많이 춥다. “하느님, 그미 곁에 계셔주세요. 내 친구의 손을 잡아주세요. 인류가 겪는 온갖 인생고를 직접 체험해 보시려고 아드님까지 보내셨잖아요?”


날싸가 더 차가워져 어제는 데크 밑에 그대로 두어 겨울을 나게 하려던 난초 화분들을 집안에 마저 들였다. 보스코가 세어보니 열다섯 개가 넘더란다. 감동옆에 쌓아둔 낙엽과 덤불도 마저 태우면서 가을이 다 갔음을 느낀다. 


크기변환_20201125_172222.jpg


어제는 맘마 말가리타’(Mamma Margarita) 축일. 내 가톨릭 영명축일(靈名祝日)이다. 돈보스코 성인의 엄마로서 아들의 불우청소년 사업 초기에 혼신을 다해 아들이 하는 일을 보살핀 공로로 시복시성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살레시안들은 성대하게 기념일을 지낸다.


은빛나래들을 비롯 여기저기서 축하 문자가 오는데 작은아들에게서 문자가 없어 엄마 축일인데 전화 안해?” 따졌더니만, “오늘 아침 수도원 미사를 제가 집전하면서 오늘 영명축일을 맞으신 전순란 여사님을 위해 특히 기도합시다라고 미사 지향을 발표했더니만 미사 후 사람들이 전순란 여사님이 누구야?‘ 묻더라구요. ’울 엄마!‘라고 대답했지요.“란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돈보스코 생가 앞에 세워진 맘마 말가리타 동상 

DSC0065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