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5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보스크가 4일간 아스피린 복용을 중단하고 임플란트 시술 중 뼛가루를 심는 일을 했다. 좀 무리다 싶었지만 휴천재에 빨리 내려가고 싶은 욕심에 그 작업을 했는데 지혈에 좀 문제가 있는 듯하다. 저렇게 나흘 아스피린 복용을 중단하고도 지혈이 어렵다면, 거꾸로 고지혈증에 피를 묽게 하는 데는 아스피린이 일조하는 게 틀림없다.


금요일 저녁 530분에 문섐과 김원장님이 4.19민주공원 앞 식당으로 우리를 초대했는데 약속에 맞추느라 마음은 바쁘고 길은 막히고 거의 한 시간이나 늦으면서서울의 불금을 톡톡히 맛보았다. 5일 근무에 기진하고 녹초된 이들만이 누릴 오늘인데, 하릴없이 빈둥대며 병원나들이나 다니는 틀딱 늙은이라고 눈총 받을까 몹시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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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섐이 숱한 지인들의 애를 태우고(본인은 하도 심려를 쏟아 애가 아예 닳아 없어졌단다!) 탄생한 책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출판을 경축하는 자리이자 보스코의 학술상 수상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매사에 진지한 문섐이라 메뉴도 각별히 챙겨 당일 치과를 다녀온 보스코도 어려움 없이 식사를 했고 식후에는 우리 집으로 올라와서 샴페인을 터뜨렸다.


저 훌륭한 책을 써내고도 아쉬움이 많은 문섐은 이탈리아에서 얻은 체험과 그곳 사람들의 예술적인 상상력이 의술에도 기여하는데 경탄하였음이 역력했다. 그 책은 '상상력'과 '가정의'라는 일차의료가 키워드다. 밤늦도록 할 말도 많고 추억도 많았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떠나는 두 분은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의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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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서둘러 마당에서 여름을 지낸 화분들을 일층 집안으로 들여놓아 마루를 겨울모드로 바꾸고서 낙성대에 있는 치과병원으로 떠났다. 사람들이 이 가을이 가기 전 세상구경을 한번 더하려고 모두 길로 나섰는지 32Km 거리를 2시간 반 걸려 치과에 도착하여 보스코 수술받은 치아를 소독하고 한 바늘 더 꿰매고, 거기서 엄마 면회를 하러 미리내로 출발했다.


엄마가 기다리는 양로원 유무상통20여년 보아온 이름도, 놓아라!‘던 가훈도 온데간데 없고 마을 입구의 간판도 싹 변했다. 마당에 있던 안중근 의사 석상도 구석으로 쫒겨났고, 성당입구의 한국의 성모도 가녀린 서양 모자상으로 바뀌었다. 성당 안의 상량에 써올린 글도 유명한 예수의 수난좌상도 치워졌다. 수십년 걸쳐 오로지 복지법인아홉 군데 시설을 혼자서 일구어 고스란히 교구에 봉납하고 물러나신 방신부님의 공적이 흔적도 남지 않게 지워낸 젊은 후임사제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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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에서는 사제도 수도자도 자기가 무슨 대업을 이루어내든 아무런 애착을 남기지 않고 그분(그리스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뇌이면서 초연히 떠나는 모습들이 참 아름답다. 방상복 신부님은 교구의 아무런 지원도 없이 혼자서 저런 복지사업들을 이루어내고서도 홀연히 은퇴함으로써 각별히 훌륭한 본보기를 남겼다.


세번째 후임자를 맞은 지 두 해 되는 실버타운은 건물 입장부터 범상치 않다. 이탈리아에서 은행에 가면 강도방지용 입장절차를 거치는데 비슷한 비대면 코로나 체크박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우선 첫 칸에서 옆으로 서면 이마를 향해 열감지 피스톨을 쏘아 체온을 알려준다. 그 다음 문이 열리고 그 박스에 들어서니 네 군데서 쏴아~’하며 분무기를 쏘고, 10여초쯤 소독을 한 후 드디어 안쪽 문이 열린다. 노인들을 보호하려는 철저한 조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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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에서는 즉각 방문신고서에 기록을 하고, 어제 미리 예약을 했지만 다시 면회절차를 문서와 전화로 밟고서 5분간 대기하다 엄마가 기다리시는 요양병동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일곱달 만에 뵙는 엄마는 핑크색 세타를 입고 마스크를 쓰고 얌전히 기다리고 계셨다. 두꺼운 유리창 안쪽으로 귀도 안 들리는 엄마에게 손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기엔 역부족이어서 미리 준비한, 여남은 장의 글을 차례로 보여드리고 엄마의 표정을 관찰했다. 때론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고, 내 글을 읽고는 고개를 끄떡이기도 하신다. 그 몇초 사이에도 걸핏하면 깜빡 졸기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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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넘게 못뵙다 3분 정도로 그친 유리창 건너 면회! 그 다음 뵌 이모님의 말마따나 울 엄만 몸은 여기 땅에 있고 혼은 이미 하느님 나라에 가 계시다.’ 토요일인데도 우리 외에는 면회 온 사람이 안 보였고, 우리 엄마의 면회장면을 구경 나온 십여 명, 요양하는 노인들의 얼굴에서 부러움과 기다림, 그리움과 외로움이 역력하여 가슴이 저렸다. 이모도 가끔 들리는 우리 남매(호천이와 나) 외에는 못 보셨는지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쓸쓸해 하신다.


코로나로 노부모를 시설에 안심하고 맡겨둔 젊은 세대들이 마지막 단풍놀이에 나온 길은 아니었겠지만, 밀리고 밀리는 고속도로를 10시간 가까이 운전한 끝에 휴천재에 도착했다. 어둔 하늘에 반달이 서늘한 밤을 지키는 지리산 산골이 천국이고 평화와 안식이었다. 반달에 엄마의 반쪽으로 시든 옆얼굴이 보인다


오늘 주일에는 .선생님 부부의 차로 함양본당에 낮미사를 갔다. 미사후 공지시간에 주임신부님은 성교수님의 학술상 수상도 교우들에게 공지하여 보스코를 인사시켰다. 고마운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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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지역 교우들과 식당에 가서 점심을 하고 돌아와 마당 데크밑에서 여름을 난 50여개 화분을 손질하고 물로 닦고 들어올려 이층마루와 벽돌방, 그리고 식당채 남쪽 창앞에 들여놓았다. 이렇게 휴천재 마루도 겨울모드로 바뀌었다. 해마다 집안으로 들어와 아름다운 꽃을 피워올리며 겨울을 보내는 화분들이어서 정이 깊이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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