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16일 목요일. 맑음


몇 년 전 참나무 가지에 집을 지었으나 얼마나 엉성하게 지었는지 짓는 도중에 비바람이 심하게 불자 얽어놓은 잔가지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끝내 망가져 버렸다. 집 하나도 건사 못하는 상대에 대한 원망이 컸던지 신접살림을 시작했던 한 쌍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크기변환]IMG_3301.JPG


올해도 그 나무 그 자리에 집을 짓는 까치가 한 쌍 보였다. 이번에는 이웃 까치까지 울력을 나와 제법 튼튼하고 멋지게 집이 지어지는 중이다. 우리집 왼편담장 밖 은행나무에도 대저택을 지어 올린 까치가 나를 내려다보며 자랑스럽게 뽐을 낸다("집이란 이렇게 짓는 거야!"). 예전에 비해 아마 공법과 재료가 많이 발전했나 보다.

우리 집도 손을 봐야 할 처지이니 까치집 흉볼 입장이 못 된다. 92년도에 거창하게 집을 손봤는데 30년이 지나자 지붕의 아스팔트싱글 여기저기가 떨어지고, 작년에 비가 새는 것을 막는다고 실리콘을 다시 쏘았는데도 감당을 못해 아예 지붕에 방수매트를 전부 씌우고 다시 아스팔트 싱글을 하기로 했다. 재건축 바람이 불어 그대로 헐리나 했던 동네 ‘3080 주택계획이 무산되었으니 한번 더 손질해야 우리의 노후를 맘 놓고 점잖게 살겠다.


[크기변환]IMG_3334.JPG


1965년에 준공된 주택이니 그만하면 오래 썼다. 이번에 수리하면 얼마나 갈까 차사장에게 물으니 20년은 족히 쓸 수 있을 테고, ‘그 다음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나면 나머지는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크게 염려 마세요.’란다. 새 지붕이 다시 망가지기 전에 부지런히 생을 정리해야겠다.

오늘도 아침 일찍 눈을 뜨자 까치집부터 살핀다. ‘쟤들은 아침 기도나 했을까?’ ‘식사는 했을까?’ 새들이 목말라도 우이천까지 날아가려면 가다가 목말라 죽겠다고 우리 마당 비자나무밑 확독을 깨끗이 씼어내고 보스코가 새 물을 가득 담아 놓았다. 서재앞 산수유나무에는 뱁새나 비둘기가 꽃잎을 따먹으러 날아오곤 한다. 오늘 따라 비둘기 한 마리가 확독 위를 날아 내리고 비자나무 뒤로 숨곤 한다.


[크기변환]IMG_3343.JPG


오후에 앞집 담벼락 밑에서 시누대를 마저 쳐내던 보스코가 비둘기 한 마리가 죽어 있는데 목이 없어졌다고 한다. 냥이들 짓일까? 족제비 짓일까? 그래서 짝을 잃었는지 비둘기 한 마리가 오후 내내 그 주변을 돌았구나!


지리산 물까치라면 떼거지로 몰려와 가해자를 공격하며 온종일 쫓아다니고 성가시게 했을 텐데. 몇 해 전 휴천재 입구 아치에 기어올라 물까치 새끼를 잡아먹었던 고양이가 물까치 떼의 공격을 받아 이마가 찍히고 피를 흘리며 정자 밑으로 숨었는데도 떠나지 않고 짖어대던 물까치들의 공동체 의식은 시골 새여서 그리 당당할까? 지금도 휴천재 텃밭에선 물까치떼가 고양이들을 쫓아다닌다!


[크기변환]20230316_163700.jpg

큰딸 엘리가 인천에서 성북동까지 올라와 성체회 제3회 친구 요섭피나씨의 영명축일 축하 식사를 하고 '카페 빵기네집'으로 커피를 마시러 왔다. 우리 딸들은 누구나 보스코를 보면 뜨거운 허그를 해준다. 딸이 없던 보스코에게 그미들의 허그는 환상 그 자체! 오늘도 엘리의 허그에 뿅 가서 즐거워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신난다. 그미와 함께 온 사람들은 모두 착한표 엄마들’. 주부로서의 바쁜 시간을 쪼개어 남에게 나누는 그 심성을 하느님이 아시기에 함께 온 다섯의 얼굴이 모두 평화롭다.


[크기변환]20230316_132133.jpg


엘리는 큰언니답게 약식으로 생일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왔고 덕분에 우리의 입까지 호강했다. 짧은 시간이 아쉽게 헤어졌어도 서로의 마음을 나누니 위로가 된다. 소문난 우리 연애사를 듣고 싶어하는 눈치여서 우리 러브스토리를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50년전 사건을! 보스코는 낼모레 영명축일을 맞을 요세피나씨에게 자기가 번역한 "아버지 성요셉"이라는 소책자를 선물했다. 


[크기변환]1678991169380-2.jpg


일행이 떠나자 우리 둘은 어제 하던 정원 손질을 마저했다. 오늘 다시 도착한 각시 패랭이를 섬초롱을 좀 뽑아내고 작년에 있던 자리에 심어 주었다. ‘물 줄 사람이 없는데도 견뎌낼까?’ 걱정이 되지만 농부이시며 정원사이신 하느님께 이 집 열쇄를 맡겨드리니 걱정은 접으련다.


보스코는 사다리에 올라가 넝쿨장미 가지치기를 하고집 전체를 감고 오르는 담쟁이를 좀 쳐냈다그 척박한 곳을 정말 악착같이 기어올라 잘도 견뎌낸다윤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또다시 국치일을 맞는 기분으로 우리 국민들이 느낄 심경을 시인 도종환이 담쟁이로 비유했다.


큰아들은 터키 지진 구호활동 단체들과의 연석회의 사진을 보내왔다

[크기변환]1678978697385.jpg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담쟁이”)


[크기변환]IMG_332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