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28일 화요일. 맑음


우리집에는 화성에서 온 남자와 지구의 여인이 함께 산다. 침대에 누우면 나한테 시집을 읽어주거나 하는데 어제 아침에 일어나다 말고 내게 돌연 신학강좌를 시작했다. 그가 즐겨 본 시리즈물 루시퍼를 보고서 얻은 결론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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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하느님이 만드셔서 못된 놈들을 가둬 두는 데가 아니다(하느님이 지글지글 연탄화덕을 펴 놓고서 우릴 기다리실 것은 아니니까). 거기는 자물쇠가 있는 감방도 아니고, 죄 지은 사람이 너무너무 후회하여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처지.’ 그것이다!” 그가 언제 어디선가 강연 중에 지옥은 인간이 행사하는 자유의지를 하느님이 영구히 존중해 주시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라던 유식한 말이 생각난다


코로나로 대중강연을 못한지 3년이 되다보니 아내라는 가엾은 1인 청중을 두고 열강을 하는 걸까? 이탈리아 명랑소설 콰레스키의 돈까밀로를 보면 돈까밀로가 시골 아주아주 작은 성당으로 쫓겨났을 적, 도시에서 가출하여 전날 그 사제관에서 얻어 잔 소년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튿날 주일미사에 그 아이는(다른 교우라곤 식간에서 일하는 노파 하나가 전부) 전 세계의 어린이들의 잘못을 홀로 뒤집어쓰고, 화통을 삶아먹은 듯 쩌렁쩌렁 울리는 돈까밀로의 강론을 혼자 들어야 했다.


오늘 아침기도 전에도 갑자기 "여보! 내가 우주 얘기해줄까?" 하더니 천체물리학을 강의한다. "우주가 130억 광년 전 대폭팔을 해서 퍼져나가는 중인데, 옛날의 폭발로 시간이 갈수록 팽창 속도가 떨어져야 하는데, 되레 가속도가 붙어 더 속도가 빨라지는데, 그 수수께끼를 최근에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함께 찾아냈는데, 암흑 에너지라는 게 블랙홀과 은하들에서 분출되어 나오면서 그걸로 팽창속도가 빨라 진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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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으면 하느님께 부탁해서 (지금은 500억 광년의 폭으로 확대된) 우주를 싸악~ 관광시켜 주십사 부탁할 거야. 난 다시 태어나면 우주를 관찰하는 천문학자가 될 거야.' 어쩌다 고속도로 신설 토목공사나 고공 교량의 신축공사를 보면 한참이나 서서 구경하다가 '난 꼭 토목기사가 되어 복잡하고 멋진 길과 다리를 만들고 싶어.' 차에서 크라식 음악을 듣거나 미술(초딩 시절 그는 늘 수우미양가에서 ''를 받았다, '아름다울 미()'!)을 하는 사람을 보면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도 한다. 80이 되어도 저런 꿈을 꾼다는 게 환상이다. 오늘 빵고신부가 자료실에서 찾았다며 보내준 보스코의 고1 사진과 대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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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제 볼일이 있어 내가 진주에 가며 햇볕 쏘이라고 테라스에 널어둔 침구를 들여 놓으라고 했더니, 온들 방에 깔아 방을 덥혀야 하는데, 온돌방 문은 열어 젖히고 이불을 되는 대로 쌓아 놓았다. 먹으라고 마련해 놓고 간 간식은 잊고 못 먹었다 하고 서재가 컴컴한데도 커튼 치고 불 켤 생각을 못하고 모니터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씨름만 하고 있었다! 


내가 '입주가정교사'로서 무려 50년간 개인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켜 왔는데도(?) 그의 실생활 성적은 도무지 오르질 않는다! 그래서 '아내의 귀가'는 흔히 '계모의 귀가'처럼 여자의 잔소리로 시작하곤 한다. 말하자면, 한 사람은 구름 위에 살고 있고, 하나는 땅 위에 굳게 발을 닫고 구름 속 남자가 풍선처럼 날아가 버리지 않게 발을 꽉 붙들고 있다. 그래도 1인 청중을 상대로 신나게 열강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나는 가슴이 뛴다. , 사랑의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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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 후에 휴천강변을 걸었다. 마을길을 내려가다 검은굴댁을 만났다. 모처럼 웃으며 인사를 한다. 때로는 사람이 만나기 싫어 오던 길을 되돌아가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집안으로 신을 들여놓고 문을 잠가 아무도 없는 듯 숨기도 한다. 젊어서 시엄씨에게 엄청 구박을 받았단다. 그 시엄씨도 시집 식구도 모두 사라졌어도 숨도 못 쉬고 살았던 과거는 그미의 기억과 행동 속에 늘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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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산봇길에는 한길 아래 복숭아 밭에서 허리가 90도로 휜 할매가 아들이 가지치기 하여 던져 놓은 잔가지들을 울타리 밖으로 주워내고 있었다. '저 연세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하는 물음이 일지만, 할매는 그냥 할 일이 있으니까 생각 없이 하는 것이리라. 그렇다, 하루가 내게 왔으니까 묻지 않고 그냥 살아내는 거다. 그렇게 살아온 삶이어서 하느님도 맘편하게 거두어주실 게다, 당신한테 한 평생을 두고 따지지 않을 테니까. 


오늘 읍내에 나갔다 3월치 '매일미사' 책을 사러 성당에 들렀다. 몇 해 전 본당주임으로 왔던 목수가 성당 입구 마당을 모조리 데크로 깔았고 담도 방부목으로 둘러 외부인이 담밖에서 성모상 가까이 못 오게 했다. 오늘 보니 사람들이 그 데크를 뜯어내느라 고생하고 있었다그 사제는 교우들 사목보다 성당 여기저기를 손 보는 목공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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