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일 화요일. 눈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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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에는 큰 눈이 왔다는데 눈구름이 지리산에 막혀선지 상봉들은 하얗게 눈이 덮혔는데 정작 우리 동네 문정리는 먼 산으로부터 흰 눈발이 날릴 뿐 쌓이지는 않았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안도현) 찾아 내려온 눈발은 내 창 앞까지 날아왔다 바람 땜에 내려앉을 자리를 찾지 못했는지 다시 나풀나풀 오던 곳으로, 더러는 모르는 곳으로 휘날려간다. 이층 데크에 매단 풍경을 한 번씩 흔들어 떠나는 마음을 전하면서....


인적이 끊기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두 노인이 한 방에 앉아 서로 책에 코 박고 있다. 보스코는 책상에 앉아 아우구스티누스를 번역하고 나는 이 책 저 책을 읽으면서 하나도 심심하지 않으니 하나가 아니고 둘이어서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함빡 웃는다. 더 늙으면 웃는 법을 잊을까 봐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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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바로 밑 기욱이네 논은 고사리 밭을 거쳐 사방에서 날아든 씨앗들과 나무 뿌리에 자리를 내어주고 이제는 모든 걸 비워낸 숲이 되었다. 억새가 하얀 꽃으로 피워낸 겨울은 눈송이와 함께 어울려 정겹다. 우리집에서 날아가 꽃피었던 가을 국화는 마른 꽃대에 겨울을 그대로 얹고 있다.


우리 텃밭에 남은 배추잎, 양배추, 브로콜리 잎을 직박구리떼가 알뜰하게도 먹어 치운다. '훠이훠이 ' 쫓으면 잠시 감나무로 피하는 시늉을 했다가 즉시 텃밭으로 내려온다. 이 겨울에 먹을 것도 없을 미물들인데 웬만하면 봐주라지만, 봄날에 봄동으로 먹겠다고 남겨둔 배추를 남김없이 먹어 치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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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마을 수달아빠최상두씨는 이 겨울에도 동네 앞 휴천강에 모습을 나타내는 수달이나 철새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올리는데 바쁘다. 강을 지키고 거기 서식하는 생명들을 지켜주는 환경운동가가 있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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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로 고양이들이 더 말랐다. 점심 먹고 남은 고기 국물에 오래 묵은 소시지를 섞어 따순 밥을 내어주니 뒤꼍에서 끼니를 기다리던 어미 고양이가 먹이를 보고는 어디로 간다. 새끼가 크면 '각자도생'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번 어미면 그 멍에를 평생 지고가는지 두 마리 새끼를 거느리고 밥그릇으로 돌아오는데 어느 새 어미나 새끼나 몸집이 같다.


나도 어미기에 늘 새끼들 생각이 머리에 가득하다. 전화라도 걸라치면 보스코가 '애들 바쁜데 신경쓰이게 하지 말라'며 참견한다. 그래서 미룬 게 일주일이어서 오늘은 못 참고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작은아들은 자칫 "엄마 지금은 바빠요. 나중에 전화 드릴께요." 하기에 몇 번 신호가 가도 안 받으면 얼른 끊는다. 얼마 후에 "엄마 전화하셨어요?" "바쁘셔?" "워낙 1~2월은 일년계획을 짜느라고 바빠요." "그래? 그럼 어서 일하셔, 신부님." 감기가 걸렸는지 목소리가 잠겨 있고 기침을 한다. 많이 힘들구나. 그래도 아들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오후에는 빵기에게서 보이스톡이 왔다. 손주 애들은 한국에 다녀온 달달한 기분으로 학교생활 적응하여 잘 다니고, 어멈은 제네바 한글학교 선생 퇴임하고 집안일에 전념한단다. 빵기가 워낙 긴 여행이 많다 보니 아범의 몫까지 챙겨야 해서 어멈이 힘들 꺼다.


전업주부로서 로마에서의 내 생활도 엄청 빡빡했던 기억이 난다. 보스코는 오로지 학위논문 준비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애들 등교와 하교, 과외 활동 동행, 두 아들의 우리말 익히기, 우리를 찾아오는 손님 대접과 로마 관광 안내, 관공서 일, 교포 사회 일,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그건 1980년대 일이고, 2003년부터의 대사 부인으로서의 5년은 그 긴장 속의 삶을 게임 하듯 얼마나 열심히 살았던가! 물론 보람은 있었지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설악산 설경(강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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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스코와 단 둘이 사는 산속의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다. 시골에 내려와 살다 보니 사회적인 문제에서도 한 발짝 뒤로 물러 서 있는 듯한 남모를 압박감이 없지 않다. 어제도 광주 임동성당에서 정의구현사제단 시국기도회가 있었지만 보스코의 건강과 내 목감기로 못 내려간 마음이 편치 만은 않았다. 다행히 우리 딸 미루와 이사야가 산청에서 광주까지 가서 미사에 참석하여 사진을 띄웠다. 고마웠다. 제발 좋은 세상이 어서 돌아와 휴천재 두 늙은이의 평화가 되레 불안하고 남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날이 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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