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일 일요일. 종일 가랑비


겨울비가 지치지도 않고 내린다. 도정마을 스.선생네 '솔바우촌'(울타리 안에 집 네 채가 서 있다) 마당엔 눈에 펄펄 내린다기에 앞산 와불산과 지리산 하봉을 올려다보니 온통 하얀 설산이다.  


아침에 일어나 안개 속에 벌거벗은 차림으로 손을 흔들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면 왠지 환상 속에 남겨진 기분이 든다. 모처럼 한가하게 책도 보고 밀린 신문도 보고 네플릭스를 보는 등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산속 생활에 짜릿한 만족감이 온몸을 나른하게 만든다.


[크기변환]20240121_075828.jpg


가야산 사는 정한길 회장이 부인과 휴천재 다니러 오는 길이라고 전화했다. 우리가 그래도 가까운 사이인데 코로나 사태로 몇 해 만에 만나는 셈. 밖에서 점심을 먹고 오겠다기에 간만이니까 '집밥'을 먹자고 했다. 우리도 그 집에 갈 적마다 부인 율리에타가 걸게 마련한 밥상을 받던 품앗이로라도.


가정에 누가 아픈 우환이 생기면 집안 돌아가는 쳇바퀴가 엉망으로 꼬이는 건 우리 집이나 그 집이나 마찬가지여서, 따님의 병환으로 그 부부가 요 몇 년 마음 고생 몸 고생으로 어지간히 애를 태웠으리라. 그래도 그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온 기쁨으로 우리 두 부부는 스스로 대견하여 건배를 나누었다.


[크기변환]20240120_135139.jpg


정회장은 가톨릭농민회 회장으로, 또 80년대부터 우리밀살리기운동에 투신하여 가정과 농토를 내놓다시피한 용기 있는 사회활동가다. 식사 후 모처럼 이야기를 나누려는 차에 부산에서 그를 만나러 온 동지가 정회장네 가야산 집에 도착해 있다는 소리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필요로 하니 우리가 양보해야 된다.


어제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드물댁이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니만 집에 있단다. “왜 마을회관 점심 안 가고?”라는 내 물음에 그미의 대답: 회관에 누가 안 나오면 전화 한통만 돌리면 될 걸 늘 나더러 가서 데려오라 시키고, 상 안 들고 온다, 설거지 않는다며 날 시켜 먹는데 내가 지들 종이가? '기분 나빠 나 밥 안 먹겠다' 소리치고 집으로 와뿌럿어예.”


[크기변환]20240120_160814.jpg


어디나 그렇겠지만 이 산골 마을에도 일진 할메들이 있다. 남 무시하고 남 시켜 먹고 표적을 골라 왕따시키고 주눅들게 하는 할메들이다. '싸나운 순서대로' 일진 1, 2, 3으로 꼽힌. 동네나 이웃마을에서 시집들 오자마자 텃세를 장악한 일진들이라 4, 50년 다져진 '나와바리'다. 내가 보건데 일진들의 행패가 발생할 적에 간혹이라도 나서서 말리는 유일한 이가 아랫집 가밀라 아줌마다. 


평소보다 드물댁 어조가 좀 쎈 것 같아, 무슨 일인가 싶어 드물댁한테 내려가 보았다. '내일이 아버지 제사'라고 딸 셋이 와 젯상에 올릴 음식 장만을 하고 있었고 콤비 절친 검은굴댁도 와 있었다. 자식이나 친구가 바람막이가 되어주면 '난 일진들 앞에서도 빳빳이 고개를 들 수 있다구!'라는 자존심을 딸들 앞에서 다짐하느라 내 전화에 대고 기염을 토했던가 보다. 갈수록 당당해져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본다. 


[크기변환]20240121_151620.jpg


오늘도 종일 흐리고 간간이 빗방울이 지지만 그래도 날씨는 푹했다. 저녁부터는 다시 진눈깨비가 내리고 내일부터는 기온이 급강하한다는 예보. 보스코에게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며 산보에 나섰다


윗동네에 오르다 보니 강영감네 헌 집이 이젠 지붕까지 내려앉고 벽을 발랐던 수수단과 진흙벽이 다 무너져 앉았다. 아래동네 논에 물꼬 보러 오르내리는 집주인의 구부정한 허리를 연상시킨다. 강영감도 부인이 자리에 누운지 여러 해여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닐 게다. 모처럼 돼지막 쪽으로 걸어가는데 빗줄기가 심상치 않아 우린 로사리오를 하며 걷던 산보길을 되돌아오고 말았다.


보스코의 주일복음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38

[크기변환]20240121_191436.jpg


매달 셋째 주일은 함양 본당 주임신부님이 문정 공소에 미사를 드리러 오신다. 비내리는 밤 여나믄 공소 식구들을 위해 본당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신부님을 차로 모시고 오가는 사목위원이 읍에서 오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다. 주임신부님은 미사 후 다과회 자리에서 우리 공소신자들이 본당과 더 가까이 지냈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털어놓으셨다. 우리도 본당 교우들에게서 간간이 듣던 얘기다. 10여년 전에는 주변 신자 30명 가까이 나오던 공소가 미사 없는 날은 서너명으로까지 줄어 '공소 보는' 모습도 좀 죄스럽다.


저녁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 가랑비가 어느새 진눈깨비로 변했다.'대한(大寒)이'가 '소한(小寒)이' 앞에서 구긴 체면("대한이가 소한이네 집에 놀러 갔다 얼어죽었대요")을 뒤늦게 살리려나 보다. 역시 우리나라 겨울은 34온이라야 제격이다. 벽돌방에 놓여 있던 게발선인장 화분을 마루로 옮겼더니 그새 어렵사리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크기변환]20240121_10505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