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1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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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일은 친정아버지 기일이다. 36년전 몇 해의 병상을 거둬 들고 아버지는 남루한 육신을 벗고서 하얀 천사 옷을 입고 훨훨 날듯 춤추며 하늘나라로 가셨다. 장지에서 하관식을 하던 자리에서 내 여동생과 큰올케가 같은 환영을 보았다고 증언해주었다


가난한 유학생의 아내였던 내가 장례식 땜에 로마에서 귀국할 엄두도 못 내고 애만 태울까 봐 서울 친정에서는 아버지 장례가 끝난 뒤에야 연락을 했다. 멀리서 기도와 미사로 추모하면서도 하늘나라에 춤추며 오르셨다는 이야기는, 착하게 살아 언젠가 그곳에 가면 아버지를 뵐 수 있겠다는 희망이 되었다.


두 분의 약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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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버지 안 계신 세월을 35년간이나 더 살다 올봄에 떠나셨으니 지금은 두 분이 다정한 모습으로 하늘나라 저녁상에 앉으셨겠지. “여보, 오늘이 9월 보름이니 낼모레 열이레면 당신은 꼭 백 살 생일이네! 고생하다 먼 길 왔으니 이번엔 먼저 온 내가 애들 대신 당신한테 생일상을 차려주지.” 두 분이 이렇게 오손도손 지내시기를 지리산 자락에 훤히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 빌었다. 거기서 두 분은 어떤 모습일까? 엄마가 처음 아버지를 만났던 꽃다운 자태 그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아침에 '위령성무일도'를 바치며 두 분과의 소통을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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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송전으로 산보길을 갔다 어둠이 내리면 와불산 자락에 깜빡이는 전깃불을 올려다 보면서 궁금했다. 토굴인지 비각인지 서너 채의 집에 누가 사는지 궁금했던 터라 어제는 점심 후 산보에 나서서 아예 문수사길로 올라갔다. 절로 오르다 왼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걸으니 그곳 농민들은 타고난 예술가들인지 엉성한 허수아비 대신 허수어미들이 우아한 옷차림으로 새를 쫓고 있다. 언덕을 휘돌아 화관처럼 피어있는 가을꽃들, 인심 좋게 물까치 수십 마리를 거두어 먹이는 감나무 밑에서는 우리도 물까치가 남겨준 홍시로 마른 목을 적셨다.


송전 돼지막을 지나 한참 가니 제각이 나오고 그 위로 서너 채 집인지 컨테이너인지 모를 집채들이 보였다. 용감한 보스코의 호출에 제각에서 스님 한 분이 나와 인사를 한다. 당신의 '토굴(土窟)'이라는데, 어느 가문이 조상들 혼령을 모시던 제각이었다니 그 스님처럼 빵빵한 기()가 있어야 조상 혼령들과 맞장을 뜨며 사이좋게 지내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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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거의 십여년만에 와불산 함양독바위 아래 문수사(文殊寺)로 올라갔. 문수사는 해인사의 말사로 한때는 비구니 스님들이 우릴 반갑게 맞으며 차 대접을 해주었는데... 인가 하나 없던 오르막길엔 십 수 채의 별장이 들어섰고, 막상 절 앞에는 금줄이 쳐져 있고 전화로 예약을 하고 방문하시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전화도 안 받고 엄청 무서운 개들이 우굴거리니 목숨이 아까우면 절을 멀리 하시오!’라는 투의 엄중 경고문이었다. 아랫마을 아짐들 말로는 송아지만한 개가 너댓 마리여서 우리도 얼씬거리지 못한다는 탄식이다. 저러다 사하촌 측은한 중생들은 언제 누가 구제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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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늘병원’ 1층에 자리잡은 보스코 젤라또에서 전번에 내가 가져다준 홍시로 홍시 샤벳을 했는데, 인기가 있었다며, 홍시를 다시 한번 구해 달라는 빵고신부의 전화. 우리 동네 유광수 노인은 가고 없어도 그 집 마당 감나무는 맛나게 가을꽃을 피워 우리를 유혹한다. 유영감님 아들 도형씨에게 감이 그냥 떨어지는 게 아까운데 좀 따자고 하니 얼마든지 따가시라는 허락이 내렸다.


토마스가 강원도로 휴가 떠나기 전에 트럭을 유영감님네 마당에 세워주고 가서 작업에 도움이 되었다. 보스코랑 둘이서 열심히 감을 따고 홍시가 된 대봉감을 대여섯 개 먹고나니 내 배도 감처럼 부풀어 올랐다. 생각 같아서는 오늘 점심은 홍시로 퉁칩시다하고 싶은데 보스코에게는 안 통하는 말이다. 대봉감 두 상자를 포장해서 택배로 부치고 나니 피로와 긴장이 풀려선지 젓가락 든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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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녁에 건너 마을 산청에서 미루가 저녁을 먹으러 오란다. 배에서 막 잡아 올린 1m나 되는 참치가 보름달빛 아래 길게 누워 미루의 회칼에 온몸을 맡기고 있다. 우리야 이 산속에서 모처럼 맞이하는 바닷맛 만찬이어서 즐겁기 그지없다. 왕산을 넘어 돌아오는 밤길, 날씨가 차지자 보름달마저 서늘한 빛으로 떠올라 이야기 속의 한 폭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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