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5일 화요일. 종일 부슬비


앞산이 안 보이게 뿌옇던 날씨에 송화가루까지 겹쳐 자주 눈을 비벼야 한다. 그래도 모처럼 비가 내린 터라 빗물이 모인 물줄기로 노랑 송화가루가 띠를 이루면서 영역을 표시한다. “여기는 휴천재 앞마당. 내 나와바리!”


한 달 만에 서울서 내려와 일주일을 번갯불에 콩볶듯이 부지런히 뛰었다. 감동에 설치한 저온냉장고 덕택에 부엉이굴 같던 창고와 감동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오래된 냉장고 둘을 어떻게 처분하나 맘을 썼으나 잉구씨가 실어가 버려 간단히 해결되었다. 어제는 면사무소에서 젊은 공무원이 방문하여 저온냉장고 설치와 농가용 용도를 확인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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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보다 잡초가 승하던 잔디밭은 잡초를 다 뽑아내자 버짐 난 초등학생의 머리같이 희끗희끗 빈 곳이 많다. 버짐투성이도 키크고 살오르면 기름기 도는 머리칼에 떡 벌어진 어깨의 총각이 되듯이 몇 해 전의 푸른 잔디밭으로 돌아오겠지


빗속이지만 축대 위에 불두화와 연산홍이 참 곱다. 아무리 윤달이 끼어서라지만 요즈음 낮기온이 너무 낮고 나무와 풀을 막론하고 꽃에 벌 나비가 안 보인다. 도정에서 벌을 치는 토마스2는 봄이 다 가도록 벌집들이 꿀도 벌도 없이 텅텅 비어간단다. 올 과일 값 크게 오를 것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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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빗속에 텃밭 축대를 기어오르던 덩굴들을 낫으로 쳐내고 드물댁이 여기저기 빈 터에 박아 놓아 두 잎 새싹을 틔워 올린 호박 모종을 여기저기 옮겨 심었다. 축대를 씩씩하게 기어올라 애호박과 호박잎을 무성히 매달아 주인에게 충성을 다 하겠지. 이젠 나도 호박을 늙히지 않는다. 어느 핸가 대여섯 덩이가 작은 절구만큼 커서 노랗게 늙었는데, 톱으로 박을 타던 흥부 마누라의 기분을 내서 반으로 가르자 찾던 보물은 안 나오고 애벌레가 오글오글 가득했다.


동네 아짐들 말로는, 애호박 때 벌이 침을 주어 구멍을 뚫고 그리로 알을 슬어 놓으면 호박 속에서 부화하여 속을 파먹으며 구더기로 자란단다. 시국을 걱정하는 보스코라면 저런 호박 속을 보면, 왜인들이 30여년 한반도에 쉬쓸어놓고 간 무리들이 학계에도, 정계에도, 특히 언론과 검경에 구더기처럼 득시글거린다고 한탄할 게다


http://jirisan-in.net/m/page/view.php?no=1122

설악산 케블카 허가로 요즘 한창 속앓이하는 지리산 사람들을 상대로 보스코가 격려의 글을 써 보냈다. 환경운동가들에게 "여러분은 사회적 시인(社會的詩人)!"이라고 격려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을 인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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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월요일은 더 이상 일하기 싫어 내 지인 정보영 목사가 보내 준 에세이집 알록달록 조각보』(청맥. 2023)를 읽었다. 가난하고 힘든 목회자의 부인으로, 또 그미가 목사가 되어 평생을 공부와 가르치는 일로, 기독교 여성단체에서 생명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을 해온 진솔한 이야기에 취하여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제 은퇴 목사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상담과 원예치료를 하고 시니어 중창단에서 노래도 한단다. 그미의 고된 독일 유학생활, 속 없는 남편의 오지랖을 가려주느라 고생한 이야기는 비슷한 부류의 남편과 로마 유학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줄거리였다. 안타깝게도 그토록 고생하고 돌아온 남편 신목사님은 불과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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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월요일 오후. 모처럼 일손을 놓고 산보를 했다. 우리가 서울 간 사이에 한길가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전동차를 몰고 다닐 수 있게 인도가 마련되었다. 집집이 평상마다 봄을 가져온 고사리가 말라가고 있었다. 폐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휠체어를 타던 '이아빠'도 건강한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동네로 들어오다 보니 검은굴댁이 자기 집 마당 토방에서 드물댁과 상추를 다듬고 있었다. 친구는 단 둘! 마을 아짐들이 둘을 어지간히 무시해도 두 사람의 우정이 애틋하여 일손을 놀리는 두 사람을 보스코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밤이면 보스코가 쓰고 자는 양압기에 물을 갈아넣는다. 내가 안 보면 얼른 수도물을 넣는다. 정수기에서 거른 물을 써야 한다는 의사 말이 있음에도 내가 잠깐만 눈을 떼도 사고를 친다. 오늘 아침엔 내가 데워다 준 한약을 먹다 꽤 남겨서는 얼른 물을 섞어 창가 꽃화분에 주려다 나한테 들켰다. "아까운 것 마저 먹지." 하니까 화들짝 놀라며 "나는 왜 사고를 칠 때마다 꼭 들키지?" 스스로 탄식한다. 워낙 뭘 숨길 줄도 모르고 거짓말도 모르고 변명할 줄도 모르는 그를 보면 80대 노인이라기보다 8살 짜리 사내아이다. 어느 새 비는 잦아 들고 산청 왕산 쪽으로 걸린 구름이 골골이 아름답다. 둘만 살지만 우리의 저녁도 저렇게 아름답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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