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1일 일요일. 맑음


아침 7시면 뒷산 언덕에 근린공원을 새로 만들러 온 일꾼들의 두런거리는 소리와 굴착기의 굉음이 들린다. 미리들 왔는데도 7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시공업자의, 주민에 대한 배려가 보인다. 예전 같으면 관공서가, 국민이 세금으로 채용한 종복들이 국민의 돈으로 그런 일을 도급받아 시행하면서도 "리가 이런 시혜를 베푸는데 너희는 고마워나 하라"식의 오만함이 주민들의 새벽잠을 깨워놓곤 했는데 이제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그만큼 커졌음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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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스코가 구청공무원을 현장에 불러 이번 공사에서 근린공원을 조성하려면 어떤 공원이 만들어질지 조감도라도 비치하여 마을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라고, 공사장 산비탈에 동네사람들이 수십년 집에서 베내서 갖다버린 나뭇가지 무더기를 치우라고, 예전에 동네 아짐들이 앉아 놀도록 주민들이 만든 시멘트 데크를 함께 철거하라고 부탁 했다.


서울 쌍문동 이 마을(옛날엔 '양주골'이라 불렸다. 우이천 건너편은 경기도 양주군이었으므로)에서도 개인 주택들이 대부분 집장사들 손에 헐려 다세대주택으로 변했으므로 아직도 단독주택을 유지하고 사는 몇 채 안 남은 원주민가운데서도 남자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보스코와 대풍이아빠가 전부여서 그분도 나와서 구청직원과 함께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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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면 딸들과 한번쯤은 만나고 가는데 어제 토요일은 식당운영으로 제일 바쁜 둘째 '순둥이'가 살레시오 관구관에서 모임을 갖는다기에 신대림동 빵고신부 사무실에서 함께 만났다. 관구관 건물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수녀님이 하시는 카페에서 커피를 뽑아들고 빵고 신부 사무실로 올라와 '꼬맹이' 엄엘리가 준비한 과일과 함께 후식을 하며 즐거운 환담을 가졌다


서로 자기 삶에서 부딪치는 힘든 이야기, 기쁘고 즐거운 일, 자랑하고 싶은 일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자매들이 서로 끔찍하게 아끼는 게 느껴져 흐뭇하다. 한목사를 '이모님'으로 대접해주니 내 친구까지 챙겨주며 한목사의 사회활동을 존중하는 모습은 더없이 고맙다. 인연을 소중히 여겨 그걸 키워 나가는 변함없이 성숙한 여인상들은 그미들이 모두 가톨릭신자인데다 시국관이 같다는 데에 있는 듯하다.


평창성당 제대 십자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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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에는 원주교구 평창성당 주임으로 계시던 박홍표 신부님의 은퇴기념미사가 평창에서 있있다. 정의구현사제단에서 활약하시면서 인류의 공동주택인 지구를 지키느라 '반핵 탈핵 환경 운동'에 평생을 투신하고 가난하고 힘든 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시던, 어쩌면 사도 바울로처럼 살아온 정의로운 분이시기에 먼 곳에서나마 그 삶에 박수와 존경을 보내던 분이었다.

미루네를 통해서 알게 된 분이어서 미루네 부부는 새벽에 산청에서 떠나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달려 올라왔고 우리가 아침 822분에 청량리에서 KTX로 떠나 9시 반에 도착한 평창역으로 우리를 마중하여 평창읍내 성당까지 데려가 축하미사에 함께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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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부님의 대신학교 입학동기 신부로 40여년 신부님을 지켜보셨던 배달하신부님(집안 4형제가 사제)은 강론 중에, 박신부님의 삶을, 중세 시대 70여년을 프랑스 아비뇽에 안주하던 교황들에게 '당신들 있을 곳은 가톨릭교회의 본산 로마'라고 열심히 설득하여 데려오고, 부패한 교회를 혁신한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의 삶에 비유했다


현실에, 세속에 안주하거나 자신의 안락과 자기연민에 갇혀 있지 않고 신앙인들의 잘못과, 이 사회의 불의와 투쟁하고 일깨우는 자세가 참 사제의 길이라고 했다. 근본주의에 빠져 보수적인 교회와 교우들의 온갖 비난과 방해와 어려움 앞에서도 '사명자'의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것은 '하느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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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하신부님의 강론과 최기식신부님의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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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사회운동의 강원지방 대부 최기식신부님(서울지방은 함세웅신부님, 영남지방은 송기인신부님을 꼽는다)이 축사를 하셨다. 박신부님의 탈핵운동에 함께하는 변호사들과 사회운동가들도 멀리서 가까이서 온 참석자들도 대부분 보스코를 알아보고 반겼다. 보스코의 70년대 번역서 "해방신학"에 영향을 받아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이런 자리에 오면 내 남편 역시 어디로 방향을 잡고 80평생을 걸어왔나 한눈에 보인다. 그분들 전부가 하나같이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던 예수님 말씀을 구현해온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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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사목을 떠나시기 전 가까이 지냈던 손님들과 본당식구 전부에게 '따순밥 한 끼'를 대접하겠다며 박신부님이 차린 푸짐한 점심을 먹고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받아 들고 미루네 차를 타고서 일요일 오후 귀성차량으로 막힌 길을 달려 서울로 돌아왔다.


덮고 끈끈하고 간혹 모기가 무는 힘든 여름날도 얼마 안 남았다고 위로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가 가진 정치적 양심을 거스르는 현 정국에서도 나쁜 일 보다 좋은 일이 더 많고 나쁜 사람보다 선량한 사람들이 더 많음에 위안을 삼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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