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8일 목요일. 맑음


엄마와 20년 전에 미리내 실버타운 유무상통(有無相通)’에 함께 들어가셨던 큰이모님이 오늘 아침 9시에 돌아가셨다. 엄마가 올 69일에 떠나셨으니 4개월 반을 더 지내시고 언니 따라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9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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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달리 이모는 실버타운 생활에서도 훨씬 적극적이셨다. 엄마는 좀 게을러선지 노래 모임이나 운동, 게이트볼 등에 도무지 관심 없이 오로지 가까운 교회(노곡교회)에만 열심히 다니시고 그밖에는 모든 일에 관심이 없었다. 이모는 6층 그 통로에서도 주도권을 쥐었고, 노래교실도 열심하셨고 게이트볼 모임 회장도 하셨다. 더는 늙지도 병들지도 않을 것 같던 이모가 1년 안에 무너지고 병들어 엄마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셨다니, 인생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듯하다.


몇 해 전 겨울 함께 찍은 이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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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매는 이화여전(梨花女專) 선후배로 엄마가 국가대표 농구선수를 할 때 이모는 정구선수를 했다. 두 분은 신세대 교육을 받은 '신여성'으로 조판사의 딸로 당당히 한 세기를 살고 가셨다. 두 분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시면서 우리에게 남기시는 말씀은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였다. 95년의 세월 속에 행복했던 일, 가슴 아팠던 일모든 것을 지상에 묻고  실버타운을 세우신 방상복 신부님의 가르침대로 유무(有無)'가 상통(相通)하는 곳으로 사뿐히 떠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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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좋은 소식을 보내오는 친구가 오늘은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록을 보냈다
여행이 즐거우려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첫째, 짐이 가벼워야 한다/ 둘째, 동행자가 좋아야 한다/ 셋째,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없는 게 세 가지 있는데 1. 정답이 없다/ 2. 비밀이 없다/ 3. 공짜가 없다.”
죽음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것 세 가지1. 사람은 분명히 죽는다/ 2. 나 혼자서 죽는다/ 3.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 세 가지1. 언제 죽을지 모른다/ 2.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3.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내가 세상에 올 땐 나는 울었고, 내 주위에 모든 이들은 웃었다. 그리고 내가 세상을 떠나갈 땐 모든 사람이 아쉬워 우는 가운데 나는 웃으며 홀홀히 떠나가자.”


정확히 그분이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지만 한 성직자의 지혜를 풍기는 격언들이고 특히 내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 내게 그물망처럼 좁혀 오는 지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구절들이다.


보통 가을은 산꼭대기에서부터 물가로 물들며 내려오는데, 오늘 로사리오 산보길에 보니 산정의 나뭇잎은 때이른 추위로 얼어버려 빛을 잃었는데, 골짜기 단풍은 촉촉하고 붉은 빛으로 가을을 보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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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웃 고구마밭에서 걷어낸 줄기를 따고고추밭에 버려진 채 아직도 푸른 고추와 고춧잎을 거둬들였다무서리가 내리면 하룻밤 새 물러져버릴 푸성귀들도 아직 생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사람이나 짐승을 위한 먹거리가 되어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고춧잎을 추리면서 내 삶도 작은 일에 성실하고, 좋은 일에 기뻐하며타인을 위한 작은 발걸음에도 의미를 두기로 마음 먹었다, 우리에게 남은 날들이 적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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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안신부님이 보스코에게 전화하셔서 그래도 당신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보좌주교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어 반갑다는 소식을 알려 오셨다. 교구장으로 뽑히면 4,5년 임기가 아니라 수십년씩 그 자리를 차지하니,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교회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보스코나 나나 성직자로서의 거룩한 덕성은 물론, 교회 지도자가 현대세계와 한국사회에 사회복음(社會福音)’(예를 들어 "정의구현이 복음선포다"라는 1973년 가톨릭 세계주교시노드의 결의)을 얼마나 용기 있고 지혜롭게 펴느냐에 점수를 주기 때문에 나도 우선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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