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7일 일요일. 춥고도 맑은 날씨


여러 날 하늘이 우중충하고 비가 오더니 오늘은 정신이 번쩍 나게 춥고 눈부시게 해가 빛났다. 휴천재 창밖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한길로 지나다니는 차들을 내려다 본다. 모두 바쁘다는 듯이 힘껏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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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저렇다. 언제, 어디가 종착지인지 생각 않고 무작정 달린다그러다 어느 날 저녁 '참 많이도 달렸네. 그런데 왜 달렸지?' 스스로 묻게 된다. 그러다 또 어느 고비에서는 "이젠 좀 편히 쉬고 싶어. 아니, 낼 아침엔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독백까지 나오게 된다. 하얀 천사의 날개를 달고 영원한 나라로 떠나는 거겠지 생각하면서... 지리산에서 무척 가까이 지내는 지인 한 분이 아프다는 소식에 걱정스럽고 우울한 나날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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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배추 줄기가 까맣게 썩고 잎이 밖에서부터 물러간다. 그게 고갱이까지 닿으면 포기 채 주저앉거나 옆으로 쓰러져 김장 배추 노릇도 못한다. 배추밭에서 스무 포기쯤 뽑아내고 그 중 성한 걸로는 백김치를 담아 맵지 않은 김치를 좋아하는 두어 친구와 나누었다. 나와는 다른 곳에서 모종을 산 드물댁네 배추는 멀쩡했고, 내 것은 농협에서 반값으로 산 배추여서 '씨앗을 나쁜 종자로 모종을 내서 그러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배추는 바깥잎부터 썩어오므로 썩은 겉잎부분을 다 제껴서 뜯어내고, 고랑에 널부러진 잎들도 바이러스가 옮기지 않게 밭두렁 밖으로 들어냈다. 하얀 속잎으로 줄지어선 배추를 보면서 마치 올 김장 망했다는듯 보스코는 '배추 겉껍질을 저렇게 발가벗기면 어떡하느냐?'고 난리인데, 휴천재 옆 볏논을 살피러 올라온 구장님도 "배추한테 깨를 홀랑 베껴버렸구만이라!"하고 웃는다. 참, 남자들 머릿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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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에는 부산에서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 윤신부님이 휴천재를 찾아오셨다. 이명박의 '삽질정권' 하에서 한강 '드물머리'에서 수사님들과 함께 수년간 투쟁하여 한국주교회의의 '4대강 공사 반대' 입장을 이끌어낸 분이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도 수도자장상연합회를 움직여 수년간 진상규명의 투쟁을 끌어간 분이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05


보스코와 윤신부님의 대화를 들으니 함께 나랏일을 걱정하는 두 우국지사의 한숨으로 땅이 꺼진다. 1030일의 G20 회담에서 문대통령의 바티칸 회담이 남북관계에 중대고비로 예상되어 대책을 고민하는 것 같다. 이렇게들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언젠가 남북이 하나가 되는 날이 오겠거니 하면서 나야 열심히 밥이나 해 바치며 마음으로만 응원한다. 무슨 협의가 있었는지 점심 후 두 사람은 갑자기 삼량진으로 송신부님을 뵈러간다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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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스코가 집을 비운 틈을 이용해서 '성삼의 딸들'에게 수세미 열매와 패트 병에 받아둔 수세미물을 갖다 주러 담양으로 달렸다. 때마침 수녀님들의 저녁기도 시간이어서 함께 기도를 바치고 저녁도 얻어 먹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국수녀님 일행이 어떻게 살아가나 늘 걱정하면서도, 하늘에 나는 참새까지 돌보시는 분이 당신 딸들을 굶기기야 하실까 믿고 내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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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삼랑진에서 돌아온 보스코(윤신부님이 밀양에서 모임을 마치고 다시 함양 문정까지 보스코를 태워다주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셨다, 이 야밤에! 참, 남자들이란...)랑 힘을 합쳐 갑작스런 추위에 떨고 있는 부감베리아와 해피불루, 하와이 무궁화, 포인세티아를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면 하룻밤 사이에 얼어죽는다. 이제부터 우리와 식당채에서 동거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잘 살피고 정성을 쏟아야 걔들도 우리 정을 알아 꽃을 피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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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형부네가 임신부님댁에 온다 해서, 주일미사 겸 오랜만에 '은빛나래단' 단합대회를 가졌다. 여덟 모두 백신 2차까지 맞아서 심적 부담은 별로 없었으나 세 명의 팔순 동갑내기(봉재언니, 파스칼 형부 그리고 보스코) 모두 기저질환이 있어 외부에서 식사하기에는 늘 떨떠름하다. 우리가 해코지한 대자연의 경고에 먼저 사죄하고 화해하려는 각성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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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에는 화분 몇 개를 손질하여 집안으로 들이고, 보스코랑 텃밭 덩굴 밑이나 매실나무에 올라가 숨어있던 호박을 땄다. 가지도 많이 땄다. (저녁미사에 오신 수녀님들에게 찬거리로 드렸다.) 


오전에 미사를 보았지만 매달 셋째 주일에 본당신부님이 오시는데 공소 식구가 몇 안 돼 저녁 7시 미사에 다시 참석했다. 공소 공동체가 함께 한다는 데 의미가 있고 신신부님의 진솔한 강론도 좋다. 이 동네에 사는 귀촌인들 가운데 건강한 체구로 수호지에 나오는 '노지심'으로 불리던 이레네오씨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지 어제로 7주기를 맞았음을 그의 아내 실비아씨가 올린 미사지향으로 우리도 기억했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6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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