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18일 목요일.


5.18! 광주사람들은 이날이면 오늘 오고 있는 비처럼 마음속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녹아내린다오늘 새벽부터 내리는 비는 밤이 늦도록 멈출 줄 모른다그렇다고 속 시원하게 주룩주룩 내리는 것도 아니다근대에만도 동학운동으로, 제주 4.3과 여순항쟁으로 민족혼을 살리려 봉기했던 호남의 정기가 저 빗물로 한반도에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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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 심경도 마찬가지다. 특히 가톨릭 교회 안에서 글을 써온 그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공식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애도하지 않은 일을 늘 개탄하고 있다. 군사반란자 박정희는 불교신자였음에도 김재규에게 사살당하자 한국천주교 주교단이 명동성당에서 공식 추도미사를 거행했으면서도 말이다. 요즘처럼 사람 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아직도 남한 땅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세상에 뜻있는 사람들이 어찌 마음 편하기를 바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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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겨울옷이 다락방 옷장 속으로, 옷 상자 속으로 들어가고 여름옷이 나왔다. 해마다 가을과 봄철로 반복하는 연중행사다. 두 늙은이에게 옷이 너무 많다. 여벌의 옷들은 사실 헐벗은 이들의 몫을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셈인데 주변에 나눌 사람도 찾기 힘들다


휴천재 뒤꼍에 심은 오죽(烏竹)에 꽃이 피었다. 정송오죽(正松五竹)이라는 말이 있지만, 보스코가 정성을 들이던 휴천재 뒤안의 대나무들이 5월달임에도 모조리 생기를 잃고 지저분하게 생긴 꽃송이(?)만 무성하게 돋은 채 시들어간다


대나무는 꽃을 피우면 죽는다고 '개화병(開花病)'이라 부른단다대나무가 꽃이 핀다고 병은 아니다벼과에 속한 식물(나무 아닌 풀)이어서벼가 꽃을 피우고 쌀을 맺어 여물면 시들어 마르듯이꽃을 피운 대나무도 죽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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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烏竹)40~50년이면 수명을 다한다는데 휴천재를 지은 1994년이 30년 전으로, 그 당시 열살 짜리 대나무를 옮겨다 심었다면 지금쯤 제 수명을 다했을 수도 있겠다. 한 단지의 대나무가 한꺼번에 죽는 것은 같은 뿌리에 연결된 한 몸이어서란다.


"여보, 서울집 시누대도 꽃을 피우면 좋겠다." 이웃 살던 정선생댁에서 한 줌 뽑아다 심은 시누대 뿌리가 집안 전체에 실핏줄처럼 깔려 퍼져나간다. 엊그제 전목사가 섬초롱 캐 간 자리에 패랭이를 심으려고 땅을 뒤집어 퇴비를 섞는데 호미가 걸렸다. 흙속에 마치 서울 지하철 9개 노선처럼 대뿌리가 얽혀 있었다


마당에 시누대 옮겨 심은 일을 두고 30여년간 후회하며 시간만 나면 호미를 들고 뿌리를 캐내지만 걔가 뿌리 뻗는 속도를 내가 따라잡을 수가 없다. 보스코는 조선시대 '노론파'에서 시작하여 끈질기게 이 나라 기득권을 장악하고 외세에 붙어 겨레를 괴롭히는 무리를 연상하곤 한다. 그러니, 서울집 시누대를 향해서는 '부디 꽃을 피우시라. 그리고 찬란한 생을 마감하시라!' 빌 뿐이다. 그러면서도 휴천재 오죽 죽어가는 일은 그렇게나 안타까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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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일만에 휴천재에 내려오니 마당에 작약꽃이 한참인데 오늘 비에 풀이 죽어 있다. 지난 달 비에 한참 예쁘던 영산홍 화려한 꽃을 며칠 안에 망쳐 버리더니, 이번엔 작약과 코스모스 장미들이 그 심술을 당하고 있다. 그래도 텃밭에 지난달 옮겨 심은 옥수수와 들깨는 어깨를 들썩이며 신이 났다. 세상사가 다 양지와 음지가 있는 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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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바깥 일은 못하니, 서울서 싣고 온 장식장을 아래층 화장실에 달았다. 보스코가 드릴로 구멍을 뚫어 벽에 고정시켰다. 그 화장실에 잔뜩 늘어놓은 세면도구들과 갖가지 화장수 병들, 드릴 작업으로 폭탄이 투하된 자리처럼 더럽혀진 바닥은 내 몫. 내가 걸레를 들고 '폭탄처리반'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참 좋겠다. 이렇게 비 내리는 산속의 날은 저문다.


어제는 함양읍으로 가까운 지인에게 병문안을 갔다. 인생의 마지막을 여행이나 하면서 한가로이 지내도 되는 처지인데, '상록수'처럼 고향에 돌아와 시골 일에 힘든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살던 모습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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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도착해보니 통증을 가라앉히는 뜸을 뜨고 있었는데, 쑥 연기에 알 수 없는 설음이 확 끼쳤다. 동자승처럼 박박 깎은 머리통이 잘 생겼다. 머리칼이 없으니 그미의 순수함이 더 선명해 보인다. 구태여 머리를 가리지도 않는 것은 그미가 불자여서 일 게다.


바깥 음식은 통 못 먹겠어서 뒤안이나 뒷산에서 뜯은 취나 머우대를 쪄서 생된장에 싸먹으면 넘어간단다. 도인이 다 됐다. 보스코도 작년 초가을 수술 직후엔 모든 음식이 역겹게 달아서 한 달 가까이 음식을 못 먹던 기억이 난다. 작은 올케가 해다 준 낙지죽에 처음으로 입맛이 돌아와, 음식을 먹기 시작하더니 8킬로나 빠졌던 몸무게가 이젠 평소로 돌아왔다


지금은 자기가 폐암 수술을 받았다는 기억도 없단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픈 사람도 많고, 회복되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잘사는 사람도 많고, 어느 날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사람도 많다. 우리가 그만한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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