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3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집안에서도 내가 하루 종일 바쁠 수 있다는 게 보스코에게는 신기하단다(핸드폰에 의하면 하루 최소한 5천보 이상을 걷고 지리산 휴천재에서라면 7천보는 걷는다). 그야말로 역사에도 남지 못할 가사 일로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쳇바퀴를 돌리는 주부로서의 모습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지 때로는 나 스스로가 의문이 든다. 이럴 때 '신학적으로' 나를 위로해 주는 게 보스코다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예컨대 쌀 한두 컵, 무 한 개, 고기 한 덩이를 쟁반에 덜렁 담으면 아내는 그것으로 따뜻한 쌀밥과 맛있는 소고기 무국을 끓여 밥상에 올리고 온 가족이 그것을 먹고 힘을 얻어 실생활을 해내는 원동력이 되게 성변화(聖變化)를 일으킨단다. 모든 주부, 모든 엄마가 날마다 하루 세 번 '성찬의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란다. ('오식이 보스코'는 두 번의 간식을 포함해서 이 여사제가 하루 다섯 번 이 성사를 집전하게 만드는 셈이다)내가 어수룩한지, 그가 영리한지 그런 격려를 받고는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행복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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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책상앞을 지킨 그를 오후 산봇길로 데려나가는 것도 내 중요한 일과다. 어제는 약초원길로 내려가다 단추공장옆길로 올라가 보았다. 누가 집을 내놓으면 대부분 덕성여대에서 사들여 집을 헐고는 그 자리에 텃밭을 일구거나 잡초가 수북한 공지로 남겨두었다(이 대학은 사립대학 중에서 첫째가는 땅부자로 소문나 있다).

이번 L.H에서 추진하는 ‘3080개발사업에 찬성하는 동네 가구 수는 73%에 달했는데도 덕대가 미적거리는 바람에 대지 50%가 확보되지 않아 아파트 살고 싶은 주민들이 애를 태운다. 그래도 덕성여대 캠퍼스 덕분에 오늘날까지 우이동 우리 동네쪽 골짜기가 아파트라는 괴물에서 보호받았다며 보스코는 고마워한다.


덕대가 도봉구청에 임대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빌려준 한 평 농장에서 올려다 본 북한산 자락과 노을이 너무 곱다. 개발 않고 소박하게 물가에 노니는 한 쌍의 원앙이나 청둥오리처럼 살다 가면 안될까?


토요일 오전에는 서울 시내에서도 지리산 속처럼 핸드폰이 안 터지는 우리 집에 SK에서 '증폭기'를 달아주러 왔다. 그 기사가 '이러면 전화가 전혀 안 됐을 텐데 어떻게 버티셨어요?' 라고 기사가 묻는다.' '그러려니 하고 마당에 나와서 전화했어요.' 우리가 무던한지, 미련한지 그는 한심스럽다는 눈으로 우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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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라 모처럼 하루 쉬는 빵기가 아빠 점심을 차려드리고, 보훈병원에서 CT 찍으러 모셔가고 모셔오고 하는 동안, 나는 한목사와 만나 한강 선유도 잔디광장에서 개최된 '이주여성과 함께 변화를 위한 걸음' 행사에 다녀왔다


엽렵한 한목사가 선유도가 섬인 줄 깜빡하고 한강둔치에 조성한 한강공원을 돌고 돌았다. 하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강물을 간지르는 버드나무의 유연한 춤사위도 실컷 보았고 가을의 상징 코스모스의 찬란한 어울림에 넋도 빼앗겨 다리가 아픈 것도 잊고 풍경을 만끽했다. 생전 처음 간 한강공원이 정말 아름다웠다. 선유도는 폐정수장에서 생태공원을 만든 특이한 경우여서 정수장의 옛 모습을 유지하며 그곳에서 물을 살리는 식물들의 기특한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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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를 찾은 시민들과 다문화에 대한 바른 인식을 일깨워주기 위한 다양한 퀴즈와 게임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이주여성들과 아이들 그리고 가족이 함께 모여 맘껏 뛰노는 모습에서 한국에서 받았던 이주민으로서의 시름을 조금이라도 내려놓는 시간이었기를 기대한다.

스위스에서 소피아씨가 왔다. 아무리 만날 시간을 맞춰 보아도 안되어, 오늘 그미 가족의 유해가 성당부속 납골당에 모셔진, 구파발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11시 미사에는 9명의 새 신자가 영세를 받는 행사도 있어 오랜만에 두 시간 가까운 미사에 참여하여 영세를 받는 이들을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는데 내 자신도 새로워지는 느낌이었다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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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고통의 신비 5)

모든 어미들의 피에타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0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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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피아씨와 세 자매막내 남동생을 만나 그것만으로도 기뻤다성당 제단 뒤에 30년간 저렇게 모셔질 특전을 누릴 수 있으니 고인들도 큰 복이다각자 오후 프로그램이 바빠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성당에서 보스코의 외대 교수 시절의 제자도 만났다. 부인이 내 일기를 읽는 독자여서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해왔다. 


우리의 소피아네 방문(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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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네 우리집 방문(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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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으로 돌아와 으아리와 주목을 성가시게 하는 단감나무를 가지치기를 하고서 호천네와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 모래내로 갔다. 빵기가 내일부터 23일간 묵을 호텔 옆 식당에서 빵기가 삼촌 내외한테 저녁을 대접했다. 우리 부부가 유럽에서 장기간 체류할 적마다 호천이 부부가 빵기 빵고 형제(대학 시절)를 고아처럼 거둬주었다


아들은 연수회가 있을 호텔 앞에 내려주어 작별을 하고(연수회가 끝나고 바로 인천공항으로 간단다) 호천네는 북가좌동에다 내려주고 아반테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니 밤 10. 이렇게 해서 은행나무 끝에 걸린 '고단한 서울의 달(반달)'과 숨 가쁜 이번 일정도 끝났다. 내일이면 지리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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