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9일 목요일. 흐림


서울집에서도 음식물 쓰레기는 마당의 나무 밑에 묻곤 하는데 까많게 기름진 흙이 되어 있다흙 속에 참으로 부지런한 일꾼들이 있어 휘적휘적 일을 해 놓게 만드신 창조주의 배려에 놀라울 뿐이다. 사람의 몸을 비롯해 흙에 묻힌, 생명 있던 모든 것이 유익한 거름으로 변한다.


어제 68일은 엄마의 첫 번 기일. 곧 돌아가실 듯하다가도 다시 살아나길 몇 번이나 하셔서 양치기소년처럼 5남매를 주변에 불러 모으시던 엄마가 더는 깨어나지 않으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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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오늘, 엄마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던 둘째 호천이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이 넘어갔다 돌아오다를 반복하시다 우리 부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고 우리가 도착한 후 두 시간 만에 영원으로 떠나셨다, 몸부림이나 괴로운 신음 하나 없이


마지막을 스스로 갈무리하고 떠나간 모습은 정말 개성 깍쟁이조정옥의 모습 바로 그대로였다. 스스로 음식과 물까지 끊으시고 보름을 넘기시며 당신의 100년 생애를 스스로 매듭지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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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실버타운 유무상통의 별채 하늘의 문에는 30여년전 돌아가신 이모부도 포천에서 옮겨와 이모 곁에 안장되어 계셨고, 이모의 저승 이웃으론 우리 문섐 아버지가 웃고 계셨다. 근엄하고 멋쟁이셔서 양복은 물론 와이셔츠도 요일마다 바꿔 입으신 멋쟁이셨다는데... 결국 죽음은 인간 말년을 어린아이처럼 하향 평준화시켜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거두어가시니 하느님의 유머는 대단히 교육적이다.


그 맑은 지성도 치매(癡呆)라는 유치함으로 돌아가고, 갓난이처럼 주변에서 음식을 떠먹여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보살펴야 한다.  이탈라이에선 치매를 rimbambito(아기로 돌아갔다)라는 사랑스러운 단어로 표현한다. 과연 "하늘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 때문에 우리 모두 어린이로 돌아가 삶을 마치는 것일까? 수년간 치매 걸린 아내를 손수 돌보다 떠나보내신 홍해리 시인은 아내의 치매를 致梅(‘매화梅花의 경지에 이르는 순례’)로 승화시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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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문'에 네 자녀 부부가 모여 막내 전호연 장로의 사회로 추도예배를 보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라는 기도문이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이어준다오빠와 호연이는 연속 훌쩍이며 눈물을 찍어 내는데 반해 마지막까지 효성을 다한 호천이는 후회가 없는지 연신 벙글거린다. 순행이네가 참석치 않아 아쉬웠는데, 오라비들은 둔해선지 별로 찾지도 않는다. 엄마 생전에 큰딸인 나보다 엄마에게 훨씬 살갑던 작은딸이 내 눈에 밟히는 걸로 미뤄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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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에 휴천재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나는 플래시를 켜들고 텃밭에 내려가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 엄마 없는 애들이었다. 금년 감자 농사는 망해 있었다. 드물댁 말대로 가뭄으로 누렇게 말라서 누워버린 이파리 밑에서 포기당 솔방을 만한 알이 두어 개나오더란다. 채마는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는 얘기는 진리다. 상추도 가물어 윤기 없이 꺼칠하다. 말라서 스러지거나 씨조차 눈을 뜨지 않은 빈 땅도 있다. 다닥다닥 열렸던 자두도 다 떨어지고 남은 건 이슬을 흘리며 모조리 병들어 있었다. 작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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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일찍부터 보스코는 배밭에 내려가 조랑조랑 달려 키재기를 하는 배를 솎고, 나는 서울에서 사온 열무로 얼갈이김치를 담갔다. 간동맥의 파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구장네 논에는 황새가 날아와 먹이를 찾는 모습에서 구장의 혼령을 보는 착시가 보였다. 


오늘 오전에 보스코의 동창 행두씨의 부고가 날아왔다. 약사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오른팔이 마비되어 수술한 것이 루게릭병을 가져와 병상에서 고생하던 참이었다. 가장 친한 석정씨가 사흘 전에도 문병을 갔는데 갑작스런 부고를 어젯밤에 받았단다. 막차로 서울 가도 밤에는 영안실을 열지 않고 내일 새벽에 발인을 한다니 보스코는 문상을 포기하고 빵고신부에게 최행두(베드로)를 위한 연미사를 부탁하는 것으로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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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우리 동네 '토마스2'의 모친이 소천하셨다는 부고가 떴다. 10여년 요양원에 계시다 울 엄마와 제삿날을 맞추어 떠나셨다. 조용하고 따스하던 그분의 미소가 떠오른다어제 실버타운 마당에서 만난 문섐 어머니도, 엄마의 이전(李專) 동창 박근동 아줌마도 눈에 띄게 쇠약해져 계셨다이제 우리 모두 앞서거니 뒷서거니 저승으로 함께 걷는 동행(同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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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3년만에 느티나무독서회모임을 읍에서 갖고 상견례를 나누었다. 기나긴 역병으로 지칠 대로 지친 기존회원들이 사라진 자리에 새 회원 3명이 들어와 여섯 명으로 독서회는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15년이 넘는 이 느티나무에게 더 좋은 책으로 더 튼실하게 생기를 불어넣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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