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2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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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는 친구가 손목이 몹시 불편하다더니 요즘엔 걷는 다리도 편치 않단다. 하나둘 망가져 가는 장난감처럼, 몸의 어느 쪽이 어긋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옆에서도 뻔히 보이니 안타깝기만하다. 처녓적 어머니가 아프시더니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쓰러지시자 큰딸로 네 형제 자매의 모든 책임이 고스란히 넘어오더란다. 실생활에서 먹고 입고 자는 것도 벅찬 일인데, 동생들의 학교 공부와 등록금, 책값 등을 다 건사하려니 처녀의 몸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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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동생들은 바르게 커서 제 몫을 다하고 (누이 눈에는 덜 차겠지만) 잘들 살아가고 있단다. 그러나 그 모든 고생이 끝났다 생각할 즈음, 온몸에 진이 빠져 쓰러지기 직전이라 지리산 우리 동네로 들어왔다. 노고할매가 주는 기운만이 자기를 소생시킬 것 같더란다. 주변에서 모두 말렸지만 이곳에 황토집을 마련하고 텃밭 농사로 흙과 친해지며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그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따순 밥 챙겨 먹이는 게 전부이지만 그것으로나마 그미가 다시 건강해지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어제 함께 점심을 먹고 점심 후에는 윗동네로 해서 산복도로로 해서 황선생 집터를 둘러보고서, 돼지막길로 내려왔다. 우리에게는 이 동네에서 제일 많이 가는 산봇길인데 그미에게는 처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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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막 아래 한길가에는 우리가 고백성사 안 봐도 되는 복숭아밭이라고 부르는 과일 밭이 있다. (너무 맛이 없어 몰래 따 먹고서도 죄책감이 안 들더라는 뜻.) 주인이 전지가위를 들고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여보, 저 복숭아들은 크고 때깔은 참 좋지만 그렇게나 맛이 없으니 정직하지 못해요. 그러니 서리해 먹은 사람이 아니라 복숭아나무가 성당 가서 고백성사를 봐야 해요. 생김새와 달리 맛이 없다구요!내 억지에 보스코가 크게 웃는다.


저런 나무들이라도 봄철을 앞두고 저렇게 정성 들이는 주인을 보니 못난 자식이라도 성의껏 키우는 부모 같아 기특해 보인다. 이럴 경우, 우리 같은 못난이 인간들도 똑같은 자비로 돌보시는 하느님도 우리한테서 동정을 받으실 만하다. 


더구나 하필 어제 3.1절날 일본 총리가 하는 3·1절 기념사를 대행한 듯한 윤가,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이완용: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구한국이 힘이 없었기 때문이며, 세계적 대세에 순응하기 위한 유일한 활로였다!”)느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선언한 인물(세례명: '암브로시오'로 바로 잡습니다)을 참고 견뎌야 하는 국민은 ("하느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노래 가사 때문에도) 하느님께 심심한 동정을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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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봇길에 우리가 알던 동네사람이 잠든 무덤이라면 우린 걸음을 멈추고 그분의 영면을 위해 주모경을 바친다. 며칠 전 동구앞 옥구영감(어람양반) 무덤 앞에서 기도를 하고 돌아서니, 우리를 지긋이 지켜보던 검은굴댁이 맞은편 멀리 언덕의 소나무 두 그루를 가리킨다. “쪼개가 우리 영감 무덤이야.” 남편이 죽기 얼마 전 그 자리를 가리키며 나 죽으면 여게 묻어줘.”라고 하더란다. 이정규씨는 얼마 뒤 경운기 사고로 휴천재 바로 윗길에서 돌아가셨다. 어제 셋이서 화정골 언덕을 내려오다 검은굴댁이 일러준 소나무 두 그루 옆 검은굴양반묘앞에서 주모경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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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10. 실상사에서 지리산 종교연대’ 2023년 정기총회 겸 모임이 있었다. 작년 미루네서 모임을 갖고 거의 다섯 달 만에 실상사에서 만났다.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4개 종단(불교, 신구교, 원불교) 종교인들이 마음을 열고 형제자매로 서로를 받아들인다. 중창단도 있어 노래는 못하지만 ‘4대종단 합창단이라는 비쥬얼 효과로 함께 노래도 하고 생명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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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임에서처럼 회원 각자의 어려움도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고 남이 처한 근황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등, 지리산이기에 가능한 넉넉한 모임이어서 언제 만나도 좋은 사람들이다. 둥지가 되어주는 실상사는 언제 가도 따뜻한 곳. 오늘도 주지 승묵스님은 차와 과일을 미리 준비해서 회의 전에 다과를 나누며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실상사 모임에서는 언제나 점심공양을 대접하므로 소박한 절간음식을 먹는 것도 기쁨이다. 점심 후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과 차를 들며 간담회도 갖고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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