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24일 일요일. 비온 후 맑음


작은손주 시우는 섬세하고 자상하다. 곤충이나 동물, 물에 사는 온갖 동물이 걔의 감성에 불을 붙인다. 산봇길을 걷다가 길 난간에 거미줄에 걸린 곤충과 그 곤충에게 접근하는 거미를 바라보며 13인극으로 나를 놀라게 한다. 마치 자기가 거미라도 된 듯 동작하고 거미줄에 걸린 벌레도 되었다는 상상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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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천변을 걷다가 돌다리를 건너다 말고 난 저 물속 물고기를 가까이서 보러 물에 좀 들어 가야겠어요.’ 한다. 아범은 인내력과 배려가 대단하다. 피라미를 따라 깊은 데로 들어가는 아이를 말리지 않고 가만히 지켜본다. 무슨 일에 필이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보스코나 빵기도 마찬가지인데 그 아들 시우도 같은 걸 보니 가족 내력이다.


빵기가 대여섯 살 때 골목끝 가로등에 몰려들다 떨어진 하루살이를 잡아먹는 두꺼비에 정신이 팔려 밤늦게 엄마가 부르러 갈 때까지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스코도 여행 중에 비행기를 바꿔 타러 공항에 기다리는 대여섯 시간을 꼼짝않고 활주로에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걸 보며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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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주운 막대기에 풀잎을 묶어 낚시라며 물고기를 잡겠다고 한정 없이 들어가는 아이를 누구도 말리질 않는다. 아이더러 이젠 그만 집에 가자!’고 소리쳐 정신을 차리게 하는 일도 이 할머니가 해야 하다니. ‘정신 없는 성씨 남자 3한테 행동대장은 언제나 나다!


토요일 아침 일찍 어멈과 큰손주 시아를 데리고 박순용 정형외과에 갔다. 손주는 맨발 축구를 하다 발가락을 다친 듯한테 아물던 발가락이 전날 산봇길에 껑충 뛰어오르다 다시 상한 듯하단다. 의사선생님은 X레이를 찍어보더니 발가락이 부러졌다가 스스로 낫는 중이라면 옆의 발가락과 묶어주며 뛰어오르지만 말란다.


병원에서 돌아오자 빵기네 식구가 청담동 처가집으로 떠났다. 일시 귀국하면 언제나 우리집으로 도착하고 공항으로 떠나는 것도 우리집에서 하니까 베이스캠프가 우리집이다. 아들은 귀국 때마다 본가에 머무는 날수와 처가에 머무는 날수를 정확하게 맞춘다.


아범네가 두고 간 짐을 살펴보니 그야말로 피난민 살림살이’. 우리가 십년 넘게 이탈리아에 지내면서도 그곳은 이방이고 우리가 뿌리내릴 곳이 아니라는 허전함과 더불어, 고국에 와서도 내 땅이니 결국 돌아와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이 안 들어 언제 어디 가나 이방인 같아 서글펐던 적 있다. 이제 지리산에서 농사일로 땅과 소통하면서 그 방랑병이 다 나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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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도 그런가 보다. “우리반에 진짜 스위스 사람은 별로 없어요. 다들 스위스 사람인데도 스페인 스위스인’, ‘일본 스위스인’, ‘프랑스 스위스인이라고 자길 소개해요.” 저 어린 게 급우나 어른들에게 한국 스위스인이에요.”라고 소개할 적에 모종의 격조감을 느끼는 걸까?


아범네를 보내고 빨래를 하는데 수건만 17. 예전에 집집이 여닐곱 식구였는데 세탁기도 냇물도 없던 당시 우리네 엄마들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애들이 가고 나니 깊은 바닷속 같은 정적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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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00

본당에서 토요 특전미사를 보고 오늘 새벽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정확하게 6시에 서울을 떠났다. 오늘 비가 많이 온다는 예고가 행락객들에게 겁을 주었는지 우이동에서 경부고속도로 타는데 30분밖에 안 걸렸고 휴천재에 도착하니 오전1015! 날이 활짝 개어 있었다. 


서울집에서 싸온 것을 점심으로 먹자마자 드물댁이 올라왔다. 날 무척 기다렸다는 얼굴이다. 먹을 김치가 없어 오이소박이를 담그려는데 드물댁이 부추를 다듬어주면서 지난번 심은 열무는 벌레가 하도 먹어 내가 싹 뽑아다 된장국 끓여 먹었다.’ 그래도 배추는 내가 오면 김치라도 한번 담그라고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우리 텃밭에 올라와서 벌레를 잡아줬다며 빨리 김치를 담으라고 성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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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떼와 깔따귀들의 환영을 받으며 텃밭을 더듬으니 토마토, 오이, 단호박, 다른 채소가 한 상자 거둬진다. 내가 배추를 다듬고 손질하는 사이 드물댁은 마늘과 양파를 까준다. 내가 바삐 움직이는 손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며 오이김치, 배추김치를 뚝딱뚝딱 담가 절반씩 담아주니 너무 좋아한다


오후 해거름에 보스코는 배밭에 허수아비 독수리를 세워 올리고 내가 건네준 붉은색 원피스 세 벌을 나무 밑에 내걸었다. 물까치들이 배봉지를 쪼아내기 시작한 터라 그놈들에게 겁을 주어 쫓아 보내는 일은 안주인 알룩달룩 치마만한 게 없으리라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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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담그는 내 곁에서 드물댁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사랑의 고백! 내가 없으니 동네가 텅 비더라고, 날마다 저녁 다섯 시면 우리 부부가 산보 가는 길을 마을회관에서 건너다 보는 일이 그렇게 좋더라고 ,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기 집 앞을 우리가 지날 즈음이면 '아줌마!' 부르며 내가 마당에 들어서기를 고대고대하고 있다고, 나 없는 동안도 그 소리가 들릴 것 같아 조마조마 창밖을 내다보게 된다고 했다. 드물댁의 순애보가 참 고맙고 사랑스럽다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기다려 본 적 있었나?’ 더듬어 본다


평소에도 그미는 휴천재 식당채 곁을 오르내리며 내가 부엌에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는 게 컴퓨터 모니터가 놓인 서재 동쪽창에서 내려다보는 보스코의 귀뜸이다. 내가 알아채고 불러서 니약니약 얘기를 나누면 그렇게나 좋아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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