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3일 일요일. 흐림


비다운 비는 안 오기로 작정한 지리산의 초여름. 고약한 개구쟁이처럼 비오는 날 장독 열기가 모처럼 장독을 여니까 비 한두 방울이 뿌려 사람을 화들짝 놀라게 한다. 그제 금요일엔 비커밍순앱으로 대한민국 땅에 비구름이 한 점도 없는 날이라고 나와 그동안 꾸물하게 마른 이불이랑 호청을 이층 테라스에 모두 내다 말리고 남은 이불호청도 모두 빨아 널었다. 그동안 꺾어다 씻어다 말려서 작두질한 민트잎도 마지막으로 햇볕에 바짝 말려 병병에 넣고, 조리로 일어 말리던 참깨도 한낮의 해바라기로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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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은 함안양반유노인의 첫 제삿날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아들이 사준 전동차를 타고 동네 길을 오후내내 위아래로 돌아다니드만 당신 논배미까지 갈 수 있나 시운전을 하다가 그만 또랑에 거꾸로 박힌 채 일어나지 못했다. ‘접시물에 코 박고 죽는다는 속담이 야속했는데 벌써 일년 세월이 흘렀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기억에서도 사라지는 사람의 운명이다.


젊었을 적에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해 본 분이라 노조가 무엇인지도 알고 문재인 변호사가 자기네를 위해 무슨 활동을 해주었는지 기억하고 선거철이면 이 동네에서 진보편에 투표하는 유일한 영남인이기도 했다. 꽃을 좋아해서 층계에 장미 아치를 올리고 그 아래 앉아 스스로 대견한 미소를 짓던 유노인이 그립다


이렇게 가냘픈 사연을 남기고 하나둘 떠나고 나면 언젠가 이 동네는 텅 비리라. 대처에 나간 자식들이야 귀향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으면서 외지인들에게는 땅이나 집을 팔지도 않기 때문에 아래숯꾸지만 해도 어느 새 빈집이 너댓 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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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문하마을 정자 밑에서 수박을 가른다고 안 바쁜 사람들은 정자 그늘로 나오라는 이바구가 돈다. 마을에서 제사가 있으면 이튿날 아침에 동네 어르신들과 젯밥을 나누는 관례가 있는데 유노인 제사를 지내고 자손들이 마을 어르신들에게 제사음식 대신 과일을 대접하는가 보다


모두 혼자 사는 아낙들이라 자손이나 손님이 수박 한 통을 사들고 와도 천신을 못한다. 혼자들 사니 냉장고에는 미쳐 못 먹고 버리기는 아까워 남은 음식들이 가득가득 차 있어 수박 들어갈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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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에 사는 큰손주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9월에는 고등학교 진학이다. 작은손주 시우는 가을이면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 8학년을 맞는다. 그 동네는 졸업식이 따로 없고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종업식날 그 지역 초중고 학생 전부와 동네 밴드,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이 시가행진을 하고 축하식과 축제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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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2015년) 우리도 때마침 그 행사에 참석하여 행렬에 끼었는데 그때는 환경살리기라는 주제로, 금년에는 우주비행을 주제로 각자가 그림을 그리거나 공동으로 만든 가면을 쓰고 행진을 하였다. 우리 큰아들 빵기는 길에서 솜사탕을 뽑아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는데 부모들 역시 행복한 웃음이 얼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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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우리의 로마 유학생활에서 두 아들도 그렇게 지냈지만 두 손주의 스위스 생활에서도 지역사회의 보호를 온통 받으며 자유로이 성장하는 학교생활이 주어져 커다란 행운이다. 과외니 학원이니 치열한 경쟁이니 하는 한국식 긴장이 없고 상호인정과 격려와 협력을 배우는 삶이어서 좋다. 두 손주 다 음악의 취미를 보여 학교나 성당의 음악회에 연주하는 사진을 며느리가 자주 보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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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산보길에 지난 겨울 내내 집터로 닦은 송전길 논밭들을 둘러 보았다. 새로 일군 생땅에는 콩을 심어 뿌리혹박테리아에게 토양개량을 시키는데 거의 참깨를 심었고 새들이 쪼아 먹었는지 씨앗이 유실되었는지 열에 아홉 구멍은 싹이 나질 않았다.


휴천재 아침이면 밤새 창문을 들여다보다 유리창에서 아예 잠들어버린 나방의 자태, 텃밭 고춧잎 뒤에 가지런히 알을 낳아 붙여 놓는 어미벌레의 기술, 몸피에 어울리지 않게 물까치떼의 소란에 옆논에서 쫓겨가는 황새의 날개짓, 밤이 깊어지면 동네 가로등 밑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외등에 부딪쳐 떨어지는 벌레들을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두꺼비를 관찰하면서 만물을 살피시는 창조주의 지혜에 새삼 감탄에 감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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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요일은 본래 임신부님이 공소에 오셔서 미사를 드리는 날인데 미사 없다는 공소회장의 문자만 떠서 우리는 스.선생 부부와 본당 미사를 다녀왔다.


작은손주의 작품: 우주선 창밖으로 보이는 우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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