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3일 추분, 이른 아침에 약간의 비, 하루 종일 날씨 맑음

 

오늘 등산은 새벽부터 시작한 비로 계획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9시경 날이 들기 시작해서 밭일을 시작했다. 집에 있는 날은 나갈 때보다 훨씬 일이 많다. 금요일부터 한 주간 가량 집을 비우므로 손바닥만한 밭농사 "단도리"를 해 둬야 한다.

 

비가 내려 보드라와진 밭에 잡초를 뽑고, 배추 한 구덩에 둘씩 자라는 몇 포기, 하나씩 뽑아 죽은 자리에 옮겨 심고(저녁에 보니 결국 둘 다 죽었다.), 아욱은 모를 떠서 잘 크게 자리잡아 주고, 고추 익은 것 따서 말리고, 가지와 호박은 따서 썰어 말리고, 들깨 부각은 바짝 말려서 밀봉하여 냉장고에 넣고, 진이네가 우리 몫으로 할당해 준 계단 옆 대추나무(전부 세 그룬데 이 나무에 열리는 대추가 제일 맛 있고 제일 많이 열렸다. 진이 엄마한테는 비밀인데...) 초벌로 털고, 부추는 잘라서 부추김치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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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덩이에 방석 붙이고 배에는 캉가

  루 앞치마를 두르고 고추를 따고 고

  춧닢을 땄다.옮겨심은 아욱에 물주

  려고 물뿌리개를 든 내 모습이 우스

  꽝스러웠던지 보스코가 카메라에 담

  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게

  신나고 나조차 놀랍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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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코 생일에 마당 원탁에서 저녁들을 먹었는데

그때 떨어진 수박 씨에서 새순이 나오고 수박이 열렸다면기하지 않겠는가?

(수박은 아래텃밭에서 혼자 딩구는 것을 따다가 넝쿨 곁에 살짝 놓았음)

 

  사부인이 어제 보낸 택배를 받았다고 전화해 왔다. "정겹게 시골이 상자 하나에 가득 담겨 온 듯하여 반가웠다."는 말씀. 보내드린 애호박으로 새우젓 넣어 자작하게 나물했더니 사돈이 "시장에서 산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야." 하시더라나.... 호박잎 쌈도 하신다니 우리네 식탁과 비슷해지네?

 

이러다 일기를 쓰기 전에 만보기를 열어 보니 9837보를 걸었다. 보스코는 아마 하루 종일 1000보나 걸었을까?  그래서   저녁식사후는 남편 운동시키는 시간(이기자는 보초서는 강아지들 아침에 한번씩 운동시킨다고 했다).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니 2200보.

 

하루 종일 부시럭 거리다 보면 힘은 들지만 보스코와 함께 저녁 해질녁 산과 소나무 숲에 걸린 초승달을 바라보면서 하는 산보는 하루의 힘든 삶을 모조리 보상받는 기분을 준다. 산보길에 러시아 민요(심수봉이 불렀다.) "백만송이 장미"의 가사를 얘기하고,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를 함께 염송하노라니 인생의 여정을 이렇게 한 사람과 지겹지도 않게 밀착해서 걸어갈 수 있다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하루가 나날이 반복되는 듯해도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내일 해가 뜬다면 그건 오늘 진 해와 똑같은 해가 아닌 내일의 해일 테니까... 꽃잎 하나 들풀 하나 나무 한 그루와 벌레 한 마리가 제각기 다르다. 다른 얼굴이다. 그 다른 것들을 보고 또 보고, 감탄하고 미소짓고 쓰다듬고 하는 사이에 지리산의 아름다운 세월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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