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9일 수요일 날씨 맑음

 

함양으로 마중나가다 확인하니까 11시에 도착한다던 쉼터 식구들이 차를 놓쳐 1시 반에나 도착한단다.  집에 들어갔다 오기도 그렇고 해서, 서상 김인식 베로니카씨 댁에 갔다.

 

얼굴이 몹시 지치고 퉁퉁 부어 있었다. 여름내 민박을 했는데 그 돈으로 겨우 감동(멋있게 지어진 별관이다.)의 지붕과 홈통만 하면 일이 끝난다는 얘기였다. 힘은 힘대로 들고 별소득은 없고 사는 게 재미없단다. 그 "재미없다"는  말마디가 하도 절망적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집주변으로는 구절초며 들양귀비며 안개꽃, 금송아 등등을 피워놓고서 흐뭇해 하는 표정을 보면 베로니카씨는 아직도 힘이 여전하다는 느낌이다.

 

두시쯤 상림에서 이문자선생, 금효, 순재, 순옥을 만났다. 내가 마련해간 옥수수와 포도로 점심을 대신했다. 1997년도 집들을 나와 어렵게 우이동의 쉼터에서 지내면서 나와 정이 들었어서 모두들 무척이나 반가워하고 살가워했다. 남편들의 무능력, 의처증, 폭력에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애착, 그 모든 것 때문에 힘들었지만 지금은 이혼을 하거나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서 잘 헤쳐나가는 모습들을 보면 기특도 하다. 요리, 청소, 뜨개질, 퀼트까지 솜씨가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금효는 정수기 장사를 하는데 잘 되는 것 같고, 순재는 종이공예, 무궁화 재배와 보급, 연극감독으로 바삐 산단다(그의 폭력 남편은 가끔 "내가 오늘은 기분이 나쁘다. 그러니 내 기분 풀릴 때까지 너 좀 맞아 줘야겠다."면서 문을 걸어잠그고 아내를 두들켜 패는 고달픈 삶을 살게 만들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상림 숲을 거닐면서 이문자 선생은 일동에게 보스코가 비폭력 남편의 샘플이라고 소개하였다. 그 말에 일행은 우리 보스코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순재는 쉼터에서 깔끔이로 살림살이와 정리의 여왕이었는데, 몸이 좀 수척해 보여서 가슴이 아렸다. 순옥은 다시 집에 들어가서 무능한 남편 잘 달래면서 산다니 마음 놓인다. 이문자 선생은 흰머리에 노인 같은 걸음걸이가 예전 같지 않다.

 

 상림 숲에서 오도재를 거치면서 지리산을 관망하였다. 강건너 진이네 팬선에서 밤을 주우라고 일행을 내려놓고 왔는데 주울 밤이 별로 없었던지 금방 집으로들 왔다.

 

저녁 식사후 서재(보스코는 일찍 자러 들어갔다.)에서 순재가 보여주던 서울역 막장인생들을 묘사하는 단막극은 그들에 대한 순재의 삶의 서글픔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밤 한시까지 그동안의 얘기를 들으면서 웃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