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6일 일요일 날씨 맑음

 

주일 공소는 항상 만원이다. 글라라씨 고모(밴쿠버로 이민 갔다가 귀국하였단다.)와 여동생도 참석하였다. 견불에 별장을 짓고 산다는 진주 여교우가 남편과 함께 공소예절에 참석하였는데 몇 해 전에 왔을 때는 사람이 몇 안 되었는데 지금은 방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서 매우 기쁘다는 인사말을 했다. 강회장이 자기네 본당에서 공사를 하다가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얘기도 하면서 그의 처지를 묻기도 하였다. 강회장의 어머니가 그의 근황을 알려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함양 본당의 어느  교우가 들려준 말대로는, 과거에 우리 공소는 거의 폐쇄적인 느낌을 주었다고 한다. 본당과 무슨 행사를 하자고 해도 "우리는 따로 한다."고 대답했고, 동네분들을 위해서 본당 신자들이 무슨 방문을 하겠다고 해도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서 본당 교우들이 공소와 마을에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는 분위기더라는 말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아주머니 서너 사람 외에 마을 교우가 없고, 동네사람들이 공소를 대하는 태도는 냉담하고 소원하기에  이를 데 없다.

 

해거름에는 어제 지리산마트에서 얻어온 박스를 보스코가 뜯어서 배추밭 고랑에 깔았고(절반만) 대자가 공소 내려오면서 가져다 준 배추모로 말라 죽은 모종 자리를 채웠다. 피트에 심겨진 것을 뿌리채 드러내 심어야 하는데 보스코가 일부는 모종 목아지를 당겨 뽑아 심은 탓에 열댓 폭이 말라 죽었다.

 

저녁을 먹고서는 아까 심다남은 배추모를 들고 도정에 걸어올라가 스테파노씨네한테 드렸다. 그리고 그 집 테라스에 앉아서 수박 대접을 받으면서 외등을 끈 채로 별 이야기, 산 이야기, 정다운 이웃들 이야기를 하다가 내려 왔다(보스코는 "두 분이서 성무일도 바치고 주무세요."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보름이 이틀이나 지났는데 달은 여전히 온달이고 한 길은 온통 환하여 둘이는 손을 잡고 산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