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5일 맑고 무더웠음

 

어제 저녁 가밀라 아줌마(김봉선씨)의 큰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에 찾아갔다. 일년전에 벌초하러 산에 갔다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꼬박 일년을 투병하다가 이제 세상을 버렸단다. 사위, 손녀(29세), 손자(25세) 셋을 두고 가는 그 발걸음이 어디 쉬웠겠느냐며, 사위로서는 딸이 장애자로서라도 살아만 있어 달라고 헸지만 가밀라 아줌마는 벌써 마음을 접었노라고 털어놓았다.

 

온 몸에 욕창이 나고 목을 뚫어 호스로 음식을 먹이기 벌써 몇 달, 그 모습을 차마 불 수 없어 안 찾아갔더니만 사위가 딸 죽는다면서 당신만 불러대더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수녀님께 물어온 세례명 안나로 죽어가는 딸에게 임종대세를 주면서 "여태까지는 귀신을 모시고 굿이나 했지만 이제 하느님의 딸로 마지막 길을 가거라."라며 위로해 주었단다. 그게 할 말 전부였단다.

 

어떻게 알았던지 동네 심술궂은 여자들이 "[에미가] 절에 다니다 성당엘 가서 그런 일이 났다."고 입방아를 찧었고 그 소문이 억장이 무너지는 가밀라 아줌마의 귀에까지 들렸단다. 딸 잃은 설음을 위로는커녕 남의 상처에 고춧가루 뿌리는 심술이다. "내가 마치 딸을 죽인 것 같아서 고개를 들 수도 없고 동네에 나갈 수도 없다."며 가밀라 아줌마는 한숨이다. 사실 저런 비아냥 속에는 문정 공소와 천주교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깊은 반감과 조소가 들어 있다. 그런 공소 분위기를 만들어온 사람들은 주님 앞에서도 책임이 클 것이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힌다고 했다. 그 아픔과 설움이 오직 클까는 당해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상상이라도 할까 보냐. 내가 고작 할 수 있었던 일은 말없이 아줌마의 손을 붙잡아 주고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가밀라 아줌마를 위해서, 주님 안에서 쉬는 안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게 고작이었다. 참으로 그 고약한 동네 사람들을 대신해서, 소식도 몰라 문상도 못간 우리 공소 공동체를 대신해서 정말 가밀라 아줌마에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