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3일 목요일 맑음


202222. 연초가 되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마 일년에 한두 번 목소리 듣는 것으로 내가 아직 살아있고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는 연례 행사랄까?


젊어서 막 결혼하고서는 친정이나 내 쪽 지인들과 오갈 처지가 못 되어 주로 남편 친구와 그 가족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 중에도 여러 남녀가 수도생활의 경험을 거친 다섯 쌍이 사는 형편도 고만고만, 가치관도 비슷비슷하여 한 동아리처럼 서울에 살고 있어 우리와도 친하게 오갔다. 여자들이 모두 전업주부였는데 그 중 한 부인만 직장을 가져 살림이 조금 나았다. 나머지는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킬 돈도, 사교육 시킬 열정도 없어 사교육은 강남 사는 정신 나간 여자나 하는 짓'이라고들 생각하는 듯했지만 그 집은 남달리 자녀들 교육에 정성이 컸다는 기억이 난다.


40년 전의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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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그 집 남편이 갑자기 위암에 걸려 우리 중에 제일 먼저 세상을 떠났고, 몇 달 후 그와 제일 가깝던 친구도 현장 감독으로 일하다 공사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중 착하디착했던 남자도 신장투석을 하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났다. 도밍고도 일찍 병사하였고. 7, 80년대 오순도순 지내던 다섯 쌍 중에 네 여인이 남편을 앞세우고서도 하늘의 섭리를 믿고 억척스레 자녀를 키워냈다. 여인들은 정말 강하다, 특히 어머니는!


그런데 '미망인'으로 어렵사리 가정을 꾸며가던 루치아도 십여 년 전 뇌졸증으로 쓰러졌다시간이 흐른 지금은 아무도 몰라보는 처지다. 그리고 최근에는 다섯 쌍 중 제일 먼저 남편을 여인 부인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그 집 딸(빵고  또래)과의 통화에서 자기 엄마가 말도 못하고 음식은 식도로 연결한 채 누워서 살아간다고 했다. 유일한 소통은 왼손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일이라 해서 간단한 인사만 문자로 나누었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자녀들은 훌륭히 성장하여 좋은 대학 나오고 가정을 이루어 아픈 엄마들에게 효성을 다하고 있다는 소식이 내 가슴을 쓸어 내리게 만든다특히 입양아들에게서 손주를 보고 효성을 받는 두 엄마는 그래도 복이 많은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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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산보라도 가려고 나서니 찬바람이 너무 불어 도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점심을 잘 먹었던 보스코가 갑자기 힘이 빠지고 가슴이 벌렁거린다 해서 급히 혈압을 재보니 16090! 평소 우리 둘 다 혈압과 당뇨가 없다고 믿었는데... 주변에서 봐서 뇌경색으로 하루아침에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얼른 우황청심환을 먹였다


두상이서방님에게 전화로 상담하니 반신욕을 하면 혈압이 떨어질 거라면서 반신욕을 권한다. 보스코가 워낙 목욕을 싫어해서 집안 욕조를 다 뜯어낸 처지라 당장은 우황청심환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읍내의 약사는 우황청심환이 뇌경색에는 좀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부정맥에서 오는 혈압 상승엔 과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단다. 우리 시아버님이 심장에는 우황청심환!’이라는 신앙을 갖고 계셨던 분이라 아들에게도 대물림하셨는지 모르지만 두어 시간 후에는 보스코의 혈압이 12075로 정상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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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엄살이 심해서 나는 "정신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을 샘플처럼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보스코를 놀려왔지만 저렇게 한참을 남편 일로 휘둘리다 보면 사실상 정신이 반쯤 나가는 사람은 아내인 나다. 어제 그렇게 소란스럽던 그가 오늘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책상을 지키고 있다. 내가 행여 건드리면 무슨 일이라도 다시 일어날까 두려워 오늘은 곁에서 숨죽여 하루 종일 책을 보았다


어려서 아이들이 아프면 밤잠을 못 자고 곁에서 지켜 앉아 졸던 생각이 난다. “쟤들이 다 커서 떠나면 별일 없을까?” 하다가도 “그런데 나 없는 데서 아프면 쟤들을 누가 돌보지?” 생각하면 차라리 엄마 곁에서 아픈 애들이 더 귀하고 더 고마웠다. 지금도 "빵기야 며느리가 나보다 더 지극 정성으로 보살필 게고... 그런데 수도원의 빵고는?" 거기에 생각이 미치면 큰일났다!’ 싶다가도, 형제들이 같이 사는 수도회니까 서로 돌 봐주겠지싶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휴천재 창밖에서 들여다본 마룻방 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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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자가 어미가 되고 나면 자기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탯줄은 두고두고 멀리멀리 연줄처럼 풀려나가긴 하지만 거기 매달린 어미의 근심걱정은 결코 끊이지 않는다빵고야 당신께 내어놓은 자식이니 성모님이 어련히 살펴 주시겠나 하면 내 근심은 괜한 걱정이 된다. 그리고 이제는 오로지 팔순 남편의 걱정. 이런저런 근심걱정을 하다 보면 백발된 내 세월도 가고 어느 날 나도 걱정 없이 그분께 가 있겠지?


휴천재 현관의 성인상(맘마말가리타와 보스코와 도메니코사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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