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6일 화요일 현충일. 맑음


월요일 아침 5시. 앞마당 화단에 세운, 두더지 쫓는 팔랑개비의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아래층 진이네는 바로 코앞에서 따르륵 거리는 저 소리를 들어야 하니 어지간히 신경 쓰일 게다. 그래서 어제 어쩌냐?’고 진이엄마에게 물으니 물론 시끄럽죠!’라고 짤막하게 대답한다. 하기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어서 "기차길 옆 오막살이"에서도 "아기 아기 잘도 잔다" 하지 않던가그런데 소음을 정말 못 견디는 사람은 보스코다. 노년의 집필활동을 위해서 도회지의 소음을 피해서 이 산속으로 왔다는 말이 맞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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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에게 1997~98년 로마에서의 안식년은 소음으로는 최악이었다. 산칼리스토 카타콤바 수위실. 700년 된 2층집을 친구 신부님이 손을 봐서 우리가 이태를 살게 해주었는데, 바로 쿼바디스 성당앞이었다. 비아 아피아(Via Appia)와 비아 아르데아티나(Via Ardeatina)가 만나 로마 시내로 들어가는 삼거리인데 밤낮으로 그 삼각지를 지나는 차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더구나 비아 아피아는 산페뜨리니(sanpetrini) 라는 네모진 조각돌을 촘촘히 박아 만든, 유럽 최초의 포장도로였다. 차가 지나가면 '드르륵 드르륵' 소리에 집과 함께 심장까지 진동하였다.


그 무렵 보스코는 때마침 서강대 안식년을 맞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번역하던 중이어서 그 소음을 못 견뎌 낮에만이라도 조용히 공부할 집을 구해야겠다고 나섰다. 한 울타리 안 수도원에 계신 쟌카를로 신부님(C.N.O.S FAP 경리)과 의논하니 멀리 갈 것 없이 당신 공동체 사무실 2층에 빈 방이 있으니 거기 와서 공부를 하라셨다. 그 커다란 사무실에서 만2년간 번역 주석 작업을 했고 2004년 분도출판사에서 벽돌 석 장 크기로 나온 책은 그 해 서우철학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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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던 작은집(붉은색)과 텃밭지기 쟌카를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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쟌카를로 신부님이 세 해 전 폐렴으로 급작스레 돌아가셨고, 베니스의 오랜 친구 폰타나 부부도 돌아가시고 그 뒤 알프스의 마리오가 코로나로 저세상 사람이 되자 이젠 더 이상 이탈리아를 찾아가려는 마음이 없어졌다, “그대가 있기에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그대 때문일러라.”는 노랫말 그대로.


어제 보스코는 심하게 적성병이 걸린 배나무에, 이번에는 예방약 아닌 치료제를 분무기로 뿌렸다. 근처에 상나무들이 많아 피할 길 없다. 나는 마당 잔디에 아직도 남은 잡초에게 마지막 보약을  뿌려 주었다, 천국으로 가라고. 돈대 밑에 심은 영산홍도 잡초를 뽑기 싫어 아예 부직포로 빙 둘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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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병곡까지 차로 가서 거금을 들여 배봉지 한 상자(2000)를 사왔다. 5년은 족히 쓸 봉지다. 배나무에 칠 약값에 배봉지 값에... 차라리 배를 한 상자 사서 먹는 게 낫겠지만, 내 땅에 내 손으로 농사를 짓고 내 손으로 따먹는다는 재미는 얼마나 짜릿한일인가! 조생종이어서 초가을 추석에 먹는 원앙은 여간 달고 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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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시인의 "평화로 가는 길은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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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 참석한 종교연대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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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6월 6일 현충일하동 악양면 매계마을에서 '지리산종교연대'와사단법인 '숲길'에서 주최하는 현충일 행사를 가졌다해마다 6월이면 지리산종교연대는 (주로 25일에) 이 땅에서 좌우 이데올로기로 희생 당한 겨레의 영령을 위로하고평화로 나아가자는 순례의 기도회를 바쳐왔다. 지리산 천도제와 보스코의 인연은 2001년으로 올라간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590935

전국에서 악양으로 모인 참석자들이 동네 한 바퀴를 침묵 중에 돌며 마을의 번영을 빌어주고마을 광장에서 추모 기도회를 갖고 창원에서 온 김유철 시인이 추모시를 낭독하였다. 


이어서 그 마을 강당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요즘 화제에 오른 정지아 작가(1990년에 빨치산의 딸을 썼다)가 북토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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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빨치산 활동과 그 연좌제로 어려서부터 이데올로기 대립을 온 몸으로 살아야 했던 작가가 이념에서 해방될 평화로운 삶을 스스로 묻던 경험을 담담하게유머러스하게 얘기했다정지아 작가는 무려 한 시간 반을 그 책을 쓴 이유쓰고 난 후의 주변의 반응을 얼마나 재미있게 풀어가는지 평소에 (정작가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남자라는) '멍청한 데다 성실하고 착하기까지 한' 남자요 오늘 청중 가운데 제일 나이가 많은 보스코는 정신줄을 놓고 입이 딱 벌어졌다.


더구나 보스코가 좋아하는 환경운동가, 구례 사는 윤주옥씨(최근에 '박영숙 살림이 상'을 받았다)를 만나 축하하고, 더군다나 서울 우리 주치의 김옥련씨(그미의 결혼을 보스코가 주례했다)마저 위령제와 정지아 작가의 북토크에 참석하러 서울에서까지 내려온데다, 지리산종교연대의 착실한 회원 셋째딸 '귀요미' 미루도 왔으니 그의 입은 벌어질 대로 벌어진 채 도무지 다물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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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 목사 부부, 김호열 목사, 실상사 수지행과 카풀을 해서 악양에서 돌아오는 길. 지리산 자락에서도 길이 험한 '회남재'를 넘어 '하동호를 지나고 '청계호'를 지나며 노고할메의 넉넉한 품을 골골이 맘껏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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