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23일 화요일. 맑음


우리 함양의 특산품 중 '솔송주'라는 증류주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명절에 귀한 인사들에게 선물했던 술이라고들 한다. 보스코나 나야 밀밭에만 가도 취하는 사람이니 술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지만 우리집 유일한 애주가 빵고신부의 평에 의하면 '아주 맛 좋은 술'이란다.


[크기변환]20230522_113646.jpg


우리와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5년 동안의 공무를 마치고 귀국한다기에 이왕이면 우리동네에서 생산된 선물을 하고 싶어 월요일에 지곡에 있는 솔송주 본사엘 찾아갔다. 그런데 그 술을 만든 명인이 본당 교우여서 우리 지인에게 자기가 선물을 하겠다고 해서 염치 없이 받아왔다. 그 친구가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이 향기로운 솔향의 한 잔으로 풀면서 한국에서의 5년을 기억하기 바란다.


어제 오후 230분에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금서초등학교'에서 작은 음악회가 있었다. 바이올린 김미영씨와 기타 김정열씨의 Duo A&U 콘서트로, 방곡 사는 이한기교수 부부가 주선한 음악회였다. 그 두 음악인의 '찾아가는 콘서트'10여년 전 구례 성당에서 박홍기 신부님의 초대로 시작됐다는 얘기를 듣고 더 반가웠다. 박신부님은 우리의 친구이기도 하다.


Duo A & U(듀오에이앤유) https://music.bugs.co.kr/artist/80152112

[크기변환]20230522_160439.jpg


[크기변환]20230522_142547.jpg


[크기변환]20230522_143415.jpg


초대 받아온 청중은 이교수 부부의 주변 인사들로 대부분 귀촌하여 사는 분들이기 때문에 가치의 세계가 독특하고 선명한 사람들이며 만나보면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학교 전교생도 초대되어 맨 앞줄에 앉았다


학생은 전교생이 16명인데 21명의 어른(교직원)들이 함께 산단다. 이럴 때 쓰는 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한때는 수백 명 어린이가 다녔을, 100년 넘은 학교인데... 시골 인구는 비고 아이들은 없어 면에 하나씩 남은 초등학교 중에서마저 세 군데가 최근에 폐교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


어린이들은 클래식 음악 생연주를 끝까지 열중해서 잘 듣고 있었다. 파가니니나, '타이스의 명상곡'이 애들의 취향에 맞았을까? 스페인 쪽 경쾌하고도 애잔한 음악도 애들은 잘 소화했다. 음악이 끝나고 질문 시간이 시작되려는 순간 "피자와 콜라가 기다린다"는 주최측 멘트에 즉시 대열이 흐트러지는 모습이 더 어린이다워 웃음이 났다.


[크기변환]20230522_161841.jpg


[크기변환]20230522_161430.jpg


[크기변환]20230522_163737.jpg


이한기교수 덕분에 좋은 음악도 듣고, 좋은 사람도 만나고, 식사도 함께 했다. 지리산 생활은 이웃 덕분에 마냥 행복하다. 미루네 부부도 초대 받아 참석해서 음악연주회와 저녁식사 사이에 금서 골짜기에 있는 '구형왕릉'도 함께 방문했다. 웃음이 적은 보스코도 셋째딸만 보면 환해진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강마을'에 있는, 지리산 일대에서 제일 아름다운 정원을 둘러 보러 들렸다. 2천평 땅에 빼곡이 들어선 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나무마다 주인의 손길이 묻어난 흔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을 경탄하는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60대 중반을 넘어가는 주인이 정원을 안내하다 "이제는 지친다. 아들은 아비의 이 일을 물려 받을 생각이 절대 없고..."라며 탄식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크기변환]20230522_183454.jpg


[크기변환]20230522_183340.jpg


우리 마을 휴천강 건너 '자연의 향기'라는 펜션 주인도 '서강대 연수원' 간판이 걸렸던 토지와 건물을 사들여 10여 년 온 정성을 기울여 가꾸고 심고 근방 토지를 사들이더니 어느 날 문득 우리 앞에서 고백하였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거의 나타나지도 않고 '자연의 향기'는 늘 닫혀 있다


한 남자가 귀촌 또는 귀농하여 수십 년 가꾼 땅과 정원과 사업을 손 뗄 나이에 이르면 절실해질 허탈감이 가슴에 와 닿는다. 해거름 나이에 든 우리 부부도 인생은 '하루 걷는 둘레길'임을 절감한다. 


노대통령의 기일을 맞으니 그 '하루걸음'도 역사적으로 깊은 여운을 울리는 삶들을 떠올리며 고마움을 품게도 된다. 정치검찰이라는 범죄집단을 과감히 척결하지 못한 고인의 '신사도'를 유난히 아픈 마음으로 회상해야 하는 오늘이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61175


[크기변환]20230523_082722.jpg


오늘 아침 일찍 휴천재 계단을 쿵쿵 올라오는 소리는 드물댁이다. 며칠 전 그미에게 상추 한주먹만 달랬더니 '작은딸이 토요일에 가지러 와서...'란다. 그래서 한동댁에게 달라 했더니 상추를 한 자루나 뜯어 주었다. 올라오는 길에 날 기다리던 드물댁이 상추 봉지를 내민다. 자기한테 내가 상추씨를 사다 준 일이 생각났던가 보다. "한동댁한테 얻었으니 그건 아줌마네 드셔요."라고 그냥 올라왔는데 내가 삐졌다고 생각해서 마음에 걸렸던지 오늘 아침 자기 텃밭에서 솎은 열무와 상추를 들고 왔다. '김치 많아서 안 담는다'니까 우물가에서 손수 다듬어 물에 담가 두고 갔다.


오늘 오전 보스코는 모처럼의 뙈약볕을 받으며 축대 정리를 마저 하고나는 영산홍을 김매고저녁 나절엔 김치를 담갔다어제 상추 줄 때 그냥 받아올껄... 괜히 사양했던 일을 밤 9시까지김치가 통 속에 들어갈 때까지 후회해야 했다. "저 김친 또 누구를 주지?"


[크기변환]20230523_123617.jpg


[크기변환]20230523_123607.jpg